국내에서 아직 함서희의 아성을 넘볼 여성 파이터는 없는 분위기다.

로드FC 아톰급 챔피언 함서희는 15일 서울 그랜드 힐튼 호텔에서 열린 로드FC 051 XX 대회 아톰급 타이틀전에서 '몬스터 울프' 박정은을 3라운드 종료 만장일치 판정으로 꺾고 2차 방어에 성공했다. 지난해 6월 일본의 구로베 미나를 3라운드 KO로 제압하며 로드FC 아톰급 초대 챔피언에 오른 함서희는 진 유 프레이와 박정은을 차례로 꺾고 아직 아톰급 내에서는 적수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도전자 박정은은 타이틀전을 앞두고 함서희에게 "저에게 져도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라고 도발했다. 9살이나 어린 후배의 도발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던 함서희는 14일에 열렸던 계체 행사에서 "후배들이 바른 인성과 겸손함을 배우며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케이지에서의 '참교육'을 예고했다. 그리고 함서희는 자신의 예고대로 한 수 위의 기량으로 완승을 거두며 챔피언의 위용을 과시했다.
 
 박정은(오른쪽) 경기 전 함서희를 여러 차례 도발했지만 함서희는 케이지 위에서 실력으로 챔피언의 자격을 증명했다.

박정은(오른쪽) 경기 전 함서희를 여러 차례 도발했지만 함서희는 케이지 위에서 실력으로 챔피언의 자격을 증명했다. ⓒ 로드FC

 
아톰급 없는 UFC에 진출해 체격의 한계를 깨달은 함서희

함서희는 2004년부터 킥복싱을 배우면서 격투기 선수의 꿈을 키웠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여성부를 운영하는 격투 단체는커녕 여성 격투기 선수조차 거의 없었다. 결국 함서희는 남자 선수들과 섞여 훈련을 받았고 3년의 힘든 훈련 끝에 일본의 격투 단체 Deep을 통해 프로 파이터로서 공식 데뷔했다. 함서희는 2014년까지 킥복싱과 종합격투기를 오가며 활약했다.

2011년까지 10승5패를 기록하던 함서희는 2013년 5월 스기야마 나호를 판정으로 꺾고 딥 주얼스 아톱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여성 선수임에도 '도끼 살인마' 반더레이 실바처럼 화끈한 경기를 펼친다는 뜻으로 '함더레이 실바'라는 별명도 얻었다. 함서희는 2014년 11월 이시오라 사오리전까지 일본 무대에서 파죽의 6연승을 달렸고 딥 주얼스 아톰급 2차방어까지 성공했다.

함서희가 세계적인 경량급 여성 파이터로 두각을 나타내자 세계 최고의 종합 격투기 단체 UFC에서도 함서희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UFC에는 함서희의 체급인 아톱급(48kg)이 없었지만 프로 파이터라면 '꿈의 무대'라 할 수 있는 UFC 도전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다. 결국 함서희는 2014년 11월 UFC와 계약하면서 아톰급보다 한 단계 위 체급인 스트로급(52kg)에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함서희는 옥타곤 데뷔전에서 신장 168cm의 조엘 칼더우드를 만나 판정으로 패했다. 칼더우드는 현재 스트로급보다 높은 플라이급에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스트로급 내에서도 체격이 큰 선수다. 157cm의 단신에 아톰급 경기에 익숙해 있던 함서희에게 체급 증량에 따른 핸디캡은 생각보다 컸다. 리치가 긴 상대들에게는 함서희 특유의 전진 압박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함서희는 지난 2015년 11월 UFC 서울대회에서 신장 170cm의 코트니 케이시를 판정으로 꺾고 옥타곤 첫 승을 올렸고 파이트 오브 더 나이트 보너스까지 탔다. 하지만 체격적인 불리함은 끊임없이 함서희를 괴롭혔고 함서희는 벡 롤링스와 다니엘 테일러에게 판정으로 패하며 1승3패의 전적으로 UFC 생활을 마감했다. 함서희는 한 번도 피니시 패배를 당하지 않았을 정도로 근성을 보였지만 스트로급에서 활약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했다.

자신을 도발했던 박정은에게 실력으로 챔피언의 위용 보여준 함서희

함서희가 UFC 생활을 마치고 무적 상태가 되자 국내의 종합 격투기 단체 로드FC에서는 발 빠르게 함서희를 영입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딥 주얼스 챔피언 구로베 미나와 함서희의 아톰급 타이틀전을 성사시켰다. 그리고 함서희는 약 3년 만에 나선 로드FC 경기에서 구로베를 3라운드 KO로 꺾고 초대 아톰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챔피언에 오른 함서희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면서 관중들을 향해 "아름다운 밤입니다"라고 외쳤다.

함서희는 작년 연말에 열린 로드FC 045 XX 대회에서도 진 유 프레이를 1라운드 KO로 꺾고 1차 방어에 성공했다(함서희에게 패한 진 유 프레이는 7개월 후 미국 여성 격투기 단체 인빅타FC의 아톰급 챔피언에 등극했다). 함서희는 이 경기에서 왼쪽팔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지만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며 2경기 연속 KO승리를 만들었다. 재활을 하느라 2018년 들어 경기에 나서지 못한 함서희는 올해 마지막 대회를 통해 2차 방어전에 나섰다.

함서희의 2차 방어전 상대 박정은은 함서희를 만나기 전까지 류 샤오니와 박나영, 박시우를 차례로 꺾고 3연승의 상승세를 탔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절대적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대선배에게 다소 거친 도발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함서희는 묵묵히 훈련에 집중하며 경기를 준비했고 경기 전날 박정은을 향해 "겸손을 배우라"며 일침을 날리는 것으로 설전을 최소화했다.

그리고 함서희는 말보다 '실력'으로 케이지 위에서 박정은에게 '참교육'을 선보였다. 1라운드 함서희의 안면에 유효타를 적중시키며 선전한 박정은은 2라운드부터 함서희의 노련한 경기운영에 말려 고전했다. 특히 함서희는 3라운드에서 무리하게 큰 기술을 시도한 박정은에게 테이크다운을 성공시킨 후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상위 포지션에서 박정은의 안면과 복부에 파운딩을 퍼부었다. 굳이 판정 결과를 들을 필요도 없는 함서희의 완승이었다.

함서희는 일방적으로 판정승을 거뒀음에도 경기 후 인터뷰에서 자신의 경기가 불만족스러웠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실제 함서희의 경기 내용은 도전자 박정은에게 최소한의 반격기회도 허용하지 않았을 만큼 완벽에 가까웠다. 함서희는 평소 자신보다 뛰어난 한국의 후배 파이터에게 챔피언 벨트를 물려 주고 싶다는 뜻을 밝혀 왔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에 겸손함을 겸비한 함서희보다 뛰어난 여성 파이터가 등장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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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격투기 로드FC 051 XX 함서희 박정은 함더레이 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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