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한 청원 글이 올라왔다. 인천의 한 교회의 목사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으로 사건의 피해자가 올린 글이었다. 피해자는 김 목사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성폭행을 했다고 주장했고, 김 목사 측은 단순한 치정사건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지난 14일 방송된 KBS2 <추적 60분>에서는 이에 대한 취재 내용을 담았다.
 
"'이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겠다' 약간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 당시 만 17세
"나는 김 목사의 여자로서 성도들한테 친절을 베푸는 것들을 질투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은연 중에 그게 사모의 덕목이라고 강조를 했었던 것 같고." - 당시 만 14세
"한 부모 가정이고,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서 저의 그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더 가까워졌던 것 같고 부모님과 따로 살았으니까 항상 했던 말이 '내가 너의 부모다' 그런 이야기들을 수도 없이 많이 했어요." - 당시 만 17세

 
증언들을 듣고 있자니 화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거기다 피해자가 1명도 아니었다. 현재까지 피해를 주장하는 아이들은 12명이나 된다. 게다가 피해 당시 연령대가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았던 피해자까지 있다. 무려 10년가량 지속된 성폭행 의혹. 아직 수사 과정에 있다고는 하지만 목사가 미성년자를 상대로 사랑을 운운하며 성관계를 수차례 맺어온 것도 용납하기 어려운 일로 보인다.
 
인천의 한 교회, 신뢰 받는 목사에 관한 폭로
 
 목사는 협박 등은 없었지만 피해자를 길들였다고 보여지고 있다. 이를 그루밍이라고 한다.

목사는 협박 등은 없었지만 피해자를 길들였다고 보여지고 있다. 이를 그루밍이라고 한다. ⓒ KBS2

 
방송된 내용에 따르면, 평소 김 목사는 신도들에게 친절하고 아이들을 살뜰히 챙기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한다. 한 피해 여성의 어머니 증언에 따르면 목사가 생일 선물부터 졸업식까지 잘 챙겨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고 한다. 또한, 딸이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직접 차로 데려다주거나 기숙사의 이불을 선물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고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딸에게 들은 사실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중학교 졸업 선물이라며 입술에 키스를 하고 이후에는 성관계까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 김 목사 측의 입장은 어떨까. 방송 내용 중에 김 목사가 나오는 일은 없었지만, 친척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성폭력성 없습니다"라며 의혹에 대해 부정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유혹하고 꼬드겼다"며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A를 사귀다가 김 목사가 B의 유혹에 못 이겨 만나게 된 부끄러운 치정문제일 뿐이지, 사회가 들썩들썩할 문제는 아니'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또한, 2명만이 피해자이고 나머지는 소문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혹자는 김 목사를 아이돌에 비유하듯 인기가 많았고 많은 신도들이 그를 따랐다고 증언한다. 몇몇 신도들은 정말 착하고 잘해주던 사람이기에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도 보인다. 심지어 피해자의 어머니 역시 그가 온유하고 부드러웠다고 이야기한다. 예배가 끝나면 차량 운전부터 간식이나 저녁까지 잘 챙겨주는 그였기에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1인 기도실이 있는데 거기서 3명이서 같이 자자고 했어요. 그때는 고등학교 1학년이니까 아무것도 모르고 같이 잤죠. 자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들어오더라구요, 옷 속으로. 막 더듬거리고 엉덩이에 손을 올려놓고 있거나 가슴 위에 손을 올려놓고 있고 살까지 계속 만졌어요. 그런데 무서워서 저는 계속 잠든 척하고 있었죠." - 당시 만 16세
"저는 중학교 1학년에서 2학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당했던 것 같아요. 김 목사가 코 수술을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다 같이 병문안을 갔었는데 다시 병원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이 보면 안 된다고. 그래서 집에 갔다가 다시 병원에 갔는데 성관계를 요구했는데... 병원에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막 입으로 하라고 그러더라구요. 강제로 하란 식으로." - 당시 만 14세

 
증언들로 돌아본 목사의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정말로 그가 친절하고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좋아하는 아이들이 생겼던 것이며, 김 목사는 그저 유혹에 넘어갔을 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너무 안일한 생각은 아닐까. 김 목사의 행동이 이렇게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가 미성년자들을 상대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무려 10년 정도를 들키지 않고 이 같은 일들을 해올 수 있었다.
 
피해자가 의지하던 사람에게 당하는 '그루밍 성범죄'
 
 한 사례로 27살이나 어린 여중생을 상습 성폭행 하고 임신시켰다던 연예기획사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2년, 2심 징역 9년을 선고 받았으나 3심에서 이것이 뒤집어졌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접견한 횟수나 서신을 보낸 횟수, 스티커 등을 사용하며 서신을 작성한 일들로 비추어 볼 때 허위의 감정표현을 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한 사례로 27살이나 어린 여중생을 상습 성폭행 하고 임신시켰다던 연예기획사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2년, 2심 징역 9년을 선고 받았으나 3심에서 이것이 뒤집어졌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접견한 횟수나 서신을 보낸 횟수, 스티커 등을 사용하며 서신을 작성한 일들로 비추어 볼 때 허위의 감정표현을 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 KBS2

 
방송에 출연한 심리상담가는 "너 정말 고생했지? 힘들지? 너 정말 예뻐" 이런 말 한마디에 바로 그루밍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방송에 따르면, 그루밍 성범죄는 6단계로 이루어진다. 먼저 피해자를 물색하고(1단계, 피해자 고르기), 취약점을 노리며 서서히 신뢰를 얻어가고(2단계, 피해자의 신뢰 얻기) 선물 등으로 호감을 얻는 것(3단계, 욕구 충족 시켜주기)이다. 그 다음에는 피해자를 따로 만나는 상황들을 만들어 내고(4단계, 고립시키기) 서서히 성적 접촉을 늘린다(5단계, 관계를 성적으로 만들기). 결국, 성관계를 맺은 이후 가해자의 회유와 협박에 피해자는 이를 오랫동안 숨기게 된다(6단계, 통제 유지하기).
 
방송을 보고 참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 아니었다. 힘든 시기에 다가와 준 사람, 친근하다고 느끼던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었다. 아마 피해자로서는 상황이 힘들었기에 더욱 마음을 주고 의지하게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의 행동이 나를 성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였다니. 나 말고도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니. 그때 느끼게 될 충격을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 앞으로 평생을 누군가를 믿기 어려워하며 지내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루밍 성범죄가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어린 아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이 행위가 제대로 처벌 받기도 어렵다는 현실이다. 현재 피해자들은 비슷한 유형의 판례들을 보며 절망적인 상황을 겪게 된다고 한다. 한 사례로 27살이나 어린 여중생을 상습 성폭행하고 임신시켰다던 연예기획사 대표가 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12년, 2심 징역 9년을 선고 받았으나 3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피해자가 피고인을 접견한 횟수나 서신을 보낸 횟수, 스티커 등을 사용하며 서신을 작성한 일들로 비추어 볼 때 허위의 감정표현을 했다는 피해자의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추적 60분>이 당시 사건 담당 검사에게 문의한 결과 담당 검사는 이에 대해 피의자의 집요하고 이중적인 성격을 제대로 알리는 것과 아동성폭력(그루밍 성폭력)에 대한 특징을 재판부에 이해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밝혔다. 그는 법원에 대한 전문가가 성인지, 아동성폭력 등에 관한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게 질문하는 사회가 되어야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가 만든 작품.

그루밍 성범죄 피해자가 만든 작품. ⓒ KBS2

 
당시 사건을 맡았던 여중생 측 변호사 역시 접견을 갔던 이유나 서신을 보낸 이유는 가해자의 요구였으며, 평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며 전 부인을 미행하는 모습을 보여준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피해자에게 "왜 거절 못했니?" 물어볼 것이 아니라 가해자에게 "왜 그랬나? 너는 무슨 권한(피해자에 대한)을 가지고 있었나?"라고 물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에서 자신의 중학교 선생님을 고소한 어느 피해자는 법정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한다. 피의자 측 변호사는 "나 같으면 그런 성추행, 성폭행 당해놓고 자취방에 오라고 했으면 안 갔을 텐데 왜 갔어요?"라며 몰아붙였다고 했다. 이 말을 듣고 피해자는 울음이 계속 나고 몸이 떨렸다고 한다. 도대체 피해자인 그녀에게 어떻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성폭력은 흔히 '영혼살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는 것을 뜻하는 표현이다. 이런 일을 아직 자신의 성 결정도 제대로 내릴 수 없을 정도의 어린 아이들이 겪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진짜 피해자가 맞는지 물음이 쏟아지고, 피해자의 나이가 13세 이상이라면 보호 받을 수 없다는 안일한 법 제도까지 문제가 된다. 심지어 가해자가 선심을 사기 위해 준 선물이 성매매의 증거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성보호 연령을 올리는 법안은 매년 제대로 통과되지 못하고 재판부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한 부족한 인식으로 가해자의 손을 들어주는 현실. 특히 이런 판례들의 연속으로 또 다른 피해자들이 절망하고 무서워하며 나서지 못할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루밍 성범죄'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때다. 그것만이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루밍 성범죄 관련법개정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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