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연맹 긴급 이사회 열려 13일 오전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한국배구연맹 긴급 이사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배구연맹 긴급 이사회 열려 13일 오전 서울 장충동 그랜드 앰배서더 호텔에서 한국배구연맹 긴급 이사 간담회가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전력 남자 프로배구단의 '외국인 선수 추가 교체 허용' 여부 논란으로 배구계가 뜨겁다.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비판도 들끓고 있다. 원칙과 규정을 파괴하고, 특정 구단에 특혜를 주는 데 대한 반발 때문이다.

또한 사태의 발단이 된 '한국전력 15연패'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구단 단장과 감독이 별다른 책임도 지지 않고, 외국인 추가 교체만 요구하는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13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긴급 프로배구단 단장 간담회에서도 '불가 결론'이 나왔다.

한국배구연맹(KOVO)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오전에 단장 간담회를 개최하여 한국전력이 요청한 외국인 선수 추가 교체 허용 여부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며 "이 자리에서 단장들은 일부 구단의 외국인 선수 부재에서 오는 파급 영향은 충분히 공감을 하나, 시즌 중간에 규정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고 밝혔다.

KOVO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단장 간담회 결과에 대해 "한국전력의 요구는 불가한 것으로 사실상 결론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단 원칙과 규정은 지켜졌지만, 이번 사건으로 한국전력과 KOVO가 여러 면에서 패착을 뒀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구계와 팬들의 비난을 자초한 것도 아픈 대목이다.

이미 외국인 선수 교체했는데... 원칙 깨지면 리그 운영 더 꼬일 수도

현행 KOVO 규정은 V리그 정규리그 개막 전까지는 외국인 선수를 자유롭게 교체할 수 있지만, 일단 리그가 시작된 이후에는 단 1번만 교체가 허용된다.

한국전력은 V리그 정규리그가 개막한 이후인 10월 17일 이미 외국인 선수 교체를 단행한 바 있다.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에서 선발한 사이먼 히르슈(27세·206cm·독일)를 아텀(26세·203cm·러시아)으로 교체했다. 때문에 한국전력은 올 시즌에는 더 이상 외국인 선수를 교체할 수 없다.

그러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한 아텀도 복근 부상으로 15경기 중 고작 5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기량과 팀 기여도도 기대에 밑돌았다. 결국 지난 11월 18일 삼성화재와 경기 이후 코트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12월 초 계약을 해지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런 상황에서 KOVO는 13일 오전 각 구단 단장들이 모여 긴급 간담회를 갖고, 규정과 다른 외국인 선수 추가 교체 허용 문제를 논의했다. 한국전력 구단이 KOVO 측에 공문을 보내 공식적인 요구를 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과 일부 구단이 내세우는 명분은 '연패가 길어지면 팬들의 흥미를 반감시키고, 리그 흥행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한국전력은 현재 개막 이후 15연패를 기록 중이다.

그러나 여론은 매우 부정적이다. 외국인 추가 교체 허용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관련 기사 등에서 이를 비판하는 의견이 급속히 확산됐다. 특정 구단을 위한 특혜를 주면서 원칙을 깨뜨리면, 또 다른 규정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떤 규정과 원칙도 무너질 수 있고, 리그 운영은 더욱 꼬이게 된다.

외국인·국내 선수 집단 이탈... '예견된 참사' 단장·감독 책임은?

또 다른 비판도 많았다. 한국전력 연패에 가장 책임이 큰 사람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특혜만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국전력의 연패에는 배구단을 운영·관리하는 구단 단장과 감독의 책임이 적지 않다. 이번 연패가 시즌 개막 전부터 사실상 예견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삼성화재 경기 모습(2018.11.18)... 한국전력 외국인 선수 아텀(15번)은 이 경기 이후 복근 부상 등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한국전력-삼성화재 경기 모습(2018.11.18)... 한국전력 외국인 선수 아텀(15번)은 이 경기 이후 복근 부상 등으로 출전하지 못했다. ⓒ 한국배구연맹


 
올해 FA인 전광인 선수를 붙잡지 못하면서 큰 전력 누수가 생겼다. 이어 KOVO컵 대회에서 출중한 기량을 선보인 외국인 선수 사이먼과 일부 국내 선수가 감독의 훈련 방식에 대한 의견 충돌로 V리그 개막 전인 10월 초 팀을 이탈한 사태가 발생했다. 대체 외국인 선수로 고른 아텀도 허무한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를 2번이나 선발했지만, 한 명은 관리 잘못으로 한 명은 기량 미달과 부상으로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외국인 선수의 선발과 관리는 전적으로 감독과 구단의 몫이다. 감독과 외국인 선수의 의견 대립과 기싸움도 비단 한국전력에만 있는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구단이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한국전력처럼 외국인 선수가 짐을 싸서 고국으로 돌아가는 일은 극히 드물다. 감독과 선수가 긴장과 타협을 해가며 맞춰가기 때문이다. 그걸 잘 해내는 것도 감독과 단장의 역할이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전력은 전광인의 FA 보상 선수로 현대캐피탈의 주전 세터인 노재욱을 지명해 데려왔다. 특급 공격수가 빠져 나간 상황에서 공격수 대신 세터를 지명한 것부터 패착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문제는 데려와서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지난 11월 10일 우리카드로 다시 트레이드했다. 그러나 노재욱은 현재 우리카드 주전 세터로 맹활약하며 팀 상승세의 주역이 됐다. 반면 노재욱을 내주고 데려온 최홍석은 여전히 부진한 상황이다. 선수 운영 면에서도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한국전력 단장과 감독은 여러 면에서 관리 능력 부족을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팀이 15연패가 계속 되는데도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KOVO 측에 외국인 선수 추가 교체라는 특혜를 요구하고 나섰다. 팬들로부터 비판이 쏟아지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자업자득인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간담회 열 사안 아니다"... KOVO도 비판 받아

또 다른 문제는 설사 외국인 선수 추가 교체를 허용해 준다고 해도 한국전력의 경기력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지금 상태에서 수준급의 대체 외국인 선수를 구하기도 어렵다. 성적 부진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인데, 외국인 선수만 바꾼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무겁게 들린다.

한국전력의 요구에 따라 단장 간담회를 연 KOVO의 처신도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 프로구단 관계자는 "애초부터 KOVO가 이런 사안을 가지고 단장 간담회를 소집한 것부터 잘못"이라며 "너무 비상식적인 안건이다. 단장들만 비난 여론의 덤터기를 쓰게 됐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프로배구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팬들이 배구계를 바라보는 수준도 높아졌다. 비판의 강도도 과거와 판이하게 다르다. 그럼에도 일부 구단은 아직도 구시대적이고 안일한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 번 무너진 원칙은 또 다른 예외를 낳게 되고, 이는 프로 리그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혼란만 가중시킨다. 특히 상식과 형평성에 어긋나는 조치는 사회적 반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한국전력과 KOVO가 이번 사건으로 어떤 교훈을 얻고 조치를 취할지 주목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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