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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8〉 이집트 선왕조(Predynastic) 시대. 기원전 3500∼3100년 그릇. 높이 30cm. 〈사진89〉 빗살무늬토기. 서울 강동구 암사동. 높이 20.8cm.
 〈사진88〉 이집트 선왕조(Predynastic) 시대. 기원전 3500∼3100년 그릇. 높이 30cm. 〈사진89〉 빗살무늬토기. 서울 강동구 암사동. 높이 20.8cm.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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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와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린 뭉게구름

〈사진88〉은 이집트 선왕조시대(기원전 5500∼3100) 신석기 그릇이다. 이 그릇에서 눈여겨봐야 할 곳은 하늘 아래 '반타원형 구름'이다. 반타원형 구름 사이로 삼각형 구름 띠무늬가 있고, 그 아래 야생 염소 아이벡스처럼 보이는 네 발 짐승이 있다. 또 그 아래 삼각형 구름 띠무늬가 있다. 이 삼각형은 산(山)이 아니다.

가장 아랫부분 무늬는 사람이 살아가는 '들판'인데, 이 무늬는 두 발 짐승과 산과 들과 새싹을 한곳에 뭉뚱그려 표현했다. 가장 아래 두 발은 새와 사람을 비롯하여 두 발 달린 짐승을 뜻하고, 산과 산 사이는 들판을 뜻하고, 거기에서 덩굴손 같은 새싹이 피어나고 있다. 그릇에 있는 무늬를 모두 아울러 해석하면 이 세상 모든 만물이 구름과 비에서 태어난다는 우운화생(雨雲化生)으로 볼 수 있다. 여기서 우운(雨雲)은 '물(水)'을 뜻한다.

〈사진89〉는 〈사진88〉과 무늬가 상당히 비슷하다. 특히 하늘 속, 반원형 구름, 빗줄기가 그렇다. (하늘 속을 보면 왼쪽과 오른쪽 깊이가 다른데, 이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연재글 마지막에서 다룰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에서 자세히 밝힐 것이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암사동 그릇은 경계(파란 하늘)를 뚜렷이 하고, 땅속으로 흘러드는 물(水)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

〈사진88〉 이집트 그릇처럼 신석기 시대에 우운화생(雨雲化生)을 그릇에 새긴 곳으로는 유럽 이베리아반도의 신석기인 이베리아인을 들 수 있다. 그 뒤로는 이탈리아 풀리아 그릇을 들 수 있다. 21세기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옛 세계관인 우운화생을 바구니와 그릇에 표현하고 있다. 우리 한반도 사람들에게 우운화생은 청동기시대 유물에서 간혹 볼 수 있고 삼국시대에 꽃을 피운다. 신라의 '토우장식 항아리'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진90〉 《육서통》의 수(水) 글자. 〈사진91〉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38.1cm. 국립중앙박물관
 〈사진90〉 《육서통》의 수(水) 글자. 〈사진91〉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높이 38.1cm. 국립중앙박물관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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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한자와 한반도 신석기인의 세계관

〈사진90〉은 중국 청나라 초 민제급이 편찬한 전각 글자 <육서통(六書通)>(1661)에 나와 있는 수(水) 글자 가운데 하나다. 암사동 빗살무늬토기를 공부하기 전 나는 이 글자를 온전히 읽어낼 수 없었다. 가장 아래 강줄기는 알아볼 수 있었지만 그 위부터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 글자를 내보이는 까닭이 있다. 중국 한자 갑골·금문·전서·육서통에서 상하(上下), 하늘(天), 구름(云), 기(气), 땅(土), 바람(風), 용(龍), 말(馬), 물(水), 비(雨), 령(霝), 입(口) 같은 글자는 암사동 신석기인의 세계관이 전제되지 않으면 온전히 해석할 수 없다는 점이다.

한자를 처음 공부할 때 시라카와 시즈카가 쓴 <한자 백 가지 이야기>(황소자리)는 아주 중요한 입문서인데, 그는 이 책에서 갑골이나 금문을 보면 구(口)를 사람의 입으로 풀이할 수 있는 글자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말(言)과 소리(音)를 보기로 든다.

이 두 글자의 옛글자를 찾아보면 둘 다 천문(天門)에서 비롯한 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이 두 글자에서 '천문(天門)'을 읽어내지 못한다. 더구나 구(口)의 옛글자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지 못한다. (옛글자에서 구(口)의 기원은 '그릇'이다) 이는 그의 한자 풀이 바탕이 처음부터 불안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진9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3〉 용(龍) 금문. 〈사진94〉 말(馬) 육서통. 〈사진95〉 천(天) 육서통. 신라와 마한 사람들은 용과 말의 기원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구름’에서 찾은 듯싶다. 이는 신라와 마한의 ‘서수형토기’와 황남대총 남·북분에서 나온 말갖춤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천마도〉에 그린 것은 기린(麒麟)이 아니라 말(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도 그렇듯 용과 말의 갑골과 금문을 보면 모두 다 머리는 하늘, 꼬리는 땅 쪽으로 뻗어 있다. 〈사진95〉 천(天)의 육서통을 보면 사람 또한 그 기원을 천문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구려벽화의 천문과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그릇과 뼈그릇 천문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사진92〉 서울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3〉 용(龍) 금문. 〈사진94〉 말(馬) 육서통. 〈사진95〉 천(天) 육서통. 신라와 마한 사람들은 용과 말의 기원을 천문(天門)에서 나오는 ‘구름’에서 찾은 듯싶다. 이는 신라와 마한의 ‘서수형토기’와 황남대총 남·북분에서 나온 말갖춤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라 〈천마도〉에 그린 것은 기린(麒麟)이 아니라 말(馬)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도 그렇듯 용과 말의 갑골과 금문을 보면 모두 다 머리는 하늘, 꼬리는 땅 쪽으로 뻗어 있다. 〈사진95〉 천(天)의 육서통을 보면 사람 또한 그 기원을 천문으로 보고 있다. 이는 고구려벽화의 천문과 신라 무덤에서 나오는 그릇과 뼈그릇 천문 무늬를 보면 알 수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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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들판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면 들판과 강과 구름과 하늘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이와 관련된 글자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 다시 말해 고대 중국인이 글자로 그린 '세상'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중국 한자를 서양 학자들처럼 상징(symbol, 기호)으로 보고, '상징의 결정체'로 읽는다(55쪽).

하지만 〈사진90-91〉, 〈사진92-95〉를 견주어 보면 한자가 결코 상징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그림)을 아직 온전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빗살무늬를 해석할 때 지금까지 '상징'이란 말을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그린 것이다' 했지 '이 무늬는 뭉게구름을 상징한다'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의 다 뒷말로 읽는 것 같다.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

러시아 역사학자 리바코프(Rybakov, B 1908∼2001), 미국 고고학자 마리야 김부타스(Marija Gimbutas 1921∼1994), 러시아 문양학자 아리엘 골란(Ariel Golan 1921∼ )은 그릇 아가리 쪽에 있는 반원·타원 무늬를 '구름'으로 본다. 이것은 아주 정확히 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신석기인이 구름을 '처음에' 왜 반원·타원형으로 그렸는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들은 고대 무늬에서 곡선이 꺾인 선으로 바뀌듯 반원·타원이 삼각형으로 변한다고 한다. 이 또한 정확하기는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그들이 신석기 무늬를 볼 때 그 무늬의 내력(또는 실제 대상)을 설명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불충분한 까닭은 신석기인이 그린 무늬를 '상징(기호, symbol)' 또는 '추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상징'을 모르겠으면 '추상'이라 하고, 그 앞에 '기하학'을 붙여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한다. 하지만 세계 신석기인이 그릇에 일부러 '추상 무늬'를 새겼을 리 없고, 더구나 이 무늬는 '기하학'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사실 '기하학적 추상무늬'란 말은 'I don't know!'와 같은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기원전 9천년부터 1천년까지 한반도 신석기인이 빚었던 빗살무늬토기 무늬를 '기하학적 추상무늬'라 하고, 그 시대를 '빗살무늬토기 문화'라 해왔다(국립중앙박물관 도록, 2005). 이 말은 우리 한반도 신석기인들이 8천 년 남짓 기하학적 추상 무늬를 새기고, '추상 미술'을 해왔다는 말이다.

나는 서구 문양학자들과 달리 세계 신석기인이 새긴 무늬는 실제 대상에서 왔고, 직선으로 바뀌는 것 또한 실제 대상과 닮은 어떤 구상과 작업 과정에서 왔을 것으로 본다. 문제는 무늬의 상징이 아니라 그 무늬의 '구상'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찾는 일이다.
 
〈사진96〉 서울 강동구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7〉 채색 바리. 샤오허옌문화(小河沿文化). 기원전 3500∼2000년. 높이 12.2cm. 한반도 신석기 유적 가운데 반원·타원형 구름무늬가 나온 곳으로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인천 운서동,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 유적을 들 수 있다.
 〈사진96〉 서울 강동구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조각. 〈사진97〉 채색 바리. 샤오허옌문화(小河沿文化). 기원전 3500∼2000년. 높이 12.2cm. 한반도 신석기 유적 가운데 반원·타원형 구름무늬가 나온 곳으로는 서울 강동구 암사동, 인천 운서동,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황해북도 봉산군 지탑리, 함경북도 웅기 송평동 유적을 들 수 있다.
ⓒ 국립중앙박물관·한성백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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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사동 신석기인과 중국 샤오허옌 신석기인

중국 샤오허옌 신석기인이 빚은 그릇(〈사진97〉)을 보면 〈사진89, 91〉 암사동 세모형 빗살무늬토기처럼 아가리 쪽에 경계(파란 하늘)를 짓고 그 위에 '하늘 속'을 그렸다. 하늘 속에 '반원형 구름'이 위아래로 있고 그 사이마다 빗줄기(雨)를 그렸다.

그들은 하늘 속에 구름과 비를 아주 그려 넣은 것이다. 그에 견주어 암사동 신석기인은 구름싹 또는 수분(水)을 짧은 빗금(〈사진89, 91〉)으로 새기거나 위 〈사진96〉처럼 그믐달 모양 무늬를 찍었다. 이 구름싹이 천문(天門)을 통해 나와 우리가 눈으로 보는 구름이 되고, 그 구름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다(〈사진92〉 참조).

나중에 다시 자세히 다루겠지만, 중국 신석기인 또한 한반도 신석기인이 그랬던 것처럼 그릇에 무늬를 그릴 때 먼저 경계(파란 하늘)를 짓고 '하늘 속'과 파란 하늘 아래에 구름과 비를 그리거나 새겼다.

이러한 중국 신석기 그릇으로는 씽롱와(興隆窪, 기원전 6200∼5400), 앙싸오(仰韶, 기원전 5000∼2000), 마지아야오(馬家窰, 기원전 3500∼2000), 씨야지야디앤(夏家店하층, 기원전 2000∼1400) 문화를 들 수 있고, 청동기 시대로는 신뎬(辛店, 기원전 1500∼1000) 문화를 들 수 있다.
 
〈사진98〉 스페인 이베리아 옹관. 기원전 6-5세기. 〈사진99〉 발렌시아 올로카우(Olocau) 단지. 기원전 3-2세기. 〈사진99〉를 보면 몸통 위로 경계(파란 하늘)를 두르고, ‘하늘 속’에는 비(雨)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한 무늬와 그 비가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몸짓(運動)을 지그재그로 그렸다. 그리고 경계 아래로는 반원형 구름과 빗줄기를 그렸다. 〈사진98〉 뼈 항아리는 옹관이기 때문에 손잡이가 별 소용이 없는데도 겹으로 반원형 구름 모양으로 달았다. 만물생성의 기원인 구름(水)에서 태어났으니 구름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이다. 이 같은 내세관은 한반도 청동기 옹관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사진98〉 스페인 이베리아 옹관. 기원전 6-5세기. 〈사진99〉 발렌시아 올로카우(Olocau) 단지. 기원전 3-2세기. 〈사진99〉를 보면 몸통 위로 경계(파란 하늘)를 두르고, ‘하늘 속’에는 비(雨)가 차곡차곡 쌓여 있는 듯한 무늬와 그 비가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몸짓(運動)을 지그재그로 그렸다. 그리고 경계 아래로는 반원형 구름과 빗줄기를 그렸다. 〈사진98〉 뼈 항아리는 옹관이기 때문에 손잡이가 별 소용이 없는데도 겹으로 반원형 구름 모양으로 달았다. 만물생성의 기원인 구름(水)에서 태어났으니 구름으로 돌아가 다시 태어나라는 염원이다. 이 같은 내세관은 한반도 청동기 옹관과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다.
ⓒ 스페인 발렌시아선사시대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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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96〉을 보면, 암사동 신석기인은 '하늘 속 물(水, 수분)'을 그믐달 모양으로 표현했다. 우리 신석기학회에서는 이 무늬를 보통 '조문(爪文 손톱조·무늬문)'이라 하고, 암사동 신석기인이 정말 손톱으로 찍어 무늬를 냈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수도 있지만 〈사진96〉의 '하늘 속 물'과 '반타원형 구름' 점무늬를 보면 새기고자 하는 무늬에 따라 무늬새기개를 따로 만들어 새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늬 한두 개는 손톱으로 새길 수 있지만 이 많은 무늬를 손톱으로 일일이 새기기는 힘들다. 또 자세히 보면 손톱으로는 이런 무늬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조개껍데기 뾰족한 곳을 뭉툭하게 갈아 찍었을 것이다.
 
〈사진100〉 해바라기무늬 수막새. 지름 15cm. 중국 전국시대. 〈사진101〉 신라 금관총 금관. 이 수막새 무늬에 대해서는 앞글(빗살무늬토기의 비밀5)에서 육서통의 기(?) 자를 통해 밝혔듯이 천문(天門)에서 구름이 나오는 도상으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설명글에는 ‘규문(葵文 해바라기규·무늬문)’이라 나와 있지만 천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큰 구름 사이로 작은 구름싹(노란 동그라미 부분)이 보인다. 이 구름싹의 기원은 암사동 신석기인이 ‘하늘 속 물’에 새긴 그믐달 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사진96〉 참조). 이 구름싹의 3차원 입체가 바로 곡옥(옥룡)이다(〈사진101〉). 옥룡의 기원이 구름싹이라면 용의 기원은 구름싹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연재글 말미에 금관의 비밀과 용의 기원을 다루면서 아주 자세히 밝힐 것이다.
 〈사진100〉 해바라기무늬 수막새. 지름 15cm. 중국 전국시대. 〈사진101〉 신라 금관총 금관. 이 수막새 무늬에 대해서는 앞글(빗살무늬토기의 비밀5)에서 육서통의 기(?) 자를 통해 밝혔듯이 천문(天門)에서 구름이 나오는 도상으로 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설명글에는 ‘규문(葵文 해바라기규·무늬문)’이라 나와 있지만 천문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큰 구름 사이로 작은 구름싹(노란 동그라미 부분)이 보인다. 이 구름싹의 기원은 암사동 신석기인이 ‘하늘 속 물’에 새긴 그믐달 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사진96〉 참조). 이 구름싹의 3차원 입체가 바로 곡옥(옥룡)이다(〈사진101〉). 옥룡의 기원이 구름싹이라면 용의 기원은 구름싹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연재글 말미에 금관의 비밀과 용의 기원을 다루면서 아주 자세히 밝힐 것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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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말의 기원은 구름싹

구름싹 무늬는 이로부터 4500년이 지나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다. 암사동 신석기인이 그릇 평면에 새긴 구름싹을 신라인이 3차원 입체로 만든 것이 바로 곡옥(曲玉 굽을곡·옥옥)인 것이다. 요즘은 곡옥이란 이름이 '조문(爪文 손톱조·무늬문)'처럼 무늬의 형태만 말해 줄 뿐이라면서 '옥룡(玉龍)'이라 한다. 신라 금관에 수없이 달려 있는 곡옥(구부러진 옥)을 용의 원시 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름 또한 적절하다고는 할 수 없다. 중국 전국·진·한대의 수막새(〈사진100〉)와 고구려신라백제 수막새를 보면, 천문(天門)에서 〈사진96〉 '하늘 속 물'과 똑같은 구름싹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연재글 말미에 자세히 다루겠지만 고대 중국인과 한반도 사람들은 용과 말을 천문에서 나오는 구름, 그 구름의 3차원 입체 형상으로 보았다(〈사진93, 94〉 참조). 그렇다면 신라 금관의 옥룡은 용의 원시 형상이기 전에 '구름싹'(또는 빗방울水)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뭉게구름

다시 〈사진89, 96〉을 보면, 암사동 신석기인은 하늘 아래 점점이 점을 찍어 반원·타원형 무늬를 새겼다. 이 무늬를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무지개무늬'라 하고, 신석기학회에서는 '중호문(重弧文 겹칠중·활호·무늬문)'이라 한다. 활 대 무늬가 겹쳐(重) 있다는 말이다.

이 무늬 이름 또한 조문처럼 무늬의 형태(겉모습)만 알려줄 뿐 이 무늬가 정작 무엇을 새긴 것인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나는 반원·타원형 무늬를 '뭉게구름(적운, 층적운)'으로 본다. 그리고 점점이 찍은 점은 구름 속의 수분(水)으로 읽는다. 이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암사동 신석기인뿐만 세계 신석기 그릇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구름무늬이기도 하다.
 
〈사진102〉 황해북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4000년대 후반기. 이 그릇의 몸통 구름무늬가 조금씩 바뀌어 고구려벽화,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의 구름무늬가 된다. 이 구름은 층적운이다. 〈사진103〉 2018년 10월 2일 광주대학교에서 찍은 구름 사진. 이 구름 또한 층적운(층쌘구름)이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많이 볼 수 있다. 〈사진104-106〉 다섯 살 여자아이가 그린 구름 그림. 어린아이들이 그리는 구름은 거의 다 이런 뭉게구름(적운, 층적운)이다.
 〈사진102〉 황해북도 봉산군 문정면 지탑리 빗살무늬토기. 기원전 4000년대 후반기. 이 그릇의 몸통 구름무늬가 조금씩 바뀌어 고구려벽화,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의 구름무늬가 된다. 이 구름은 층적운이다. 〈사진103〉 2018년 10월 2일 광주대학교에서 찍은 구름 사진. 이 구름 또한 층적운(층쌘구름)이다. 늦여름이나 초가을에 많이 볼 수 있다. 〈사진104-106〉 다섯 살 여자아이가 그린 구름 그림. 어린아이들이 그리는 구름은 거의 다 이런 뭉게구름(적운, 층적운)이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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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암사동과 부산 동삼동 편 빗살무늬토기 사진 자료 474장과 179장에서 반원·타원형 구름과 삼각형 구름을 살펴봤다. 암사동 474장 사진 자료에서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92점, 삼각형 구름무늬는 201점이다. 동삼동 사진 자료 179장에서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는 1점, 삼각형 구름무늬는 118점이었다.

삼각형 구름무늬(〈사진91〉)가 월등히 많은 까닭은 반원·타원형 구름무늬보다 새기기가 편하고, 실수를 하더라도 표가 덜 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원에 가까운 그릇에 반원·타원형보다는 삼각형 구름무늬가 더 잘 어울려서이기도 할 것이다.

〈사진104-106〉은 다섯 살 여자아이가 그린 구름 그림이다. 세계 어린이, 특히 초등학교 2학년 아래 어린이들은 구름을 그릴 때 거의 〈사진104〉처럼 그린다. 구름 가운데 이런 구름을 층적운(또는 적운)이라 하는데, 사실 층적운(〈사진103〉)을 보면 꼭 이렇게 생기지도 않았다.

어떤 구름이든 아이들이 이렇게 그리는 까닭은 입체(3차원)의 평면화(2차원)라 할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실제대상을 평면에 그릴 때 2차원 x축과 y축 가운데 어느 한 방향에서만 본 것을 그린다. 거기에는 음영도, 원근감도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석기인과 청동기인이 그린 그림도 그렇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 같은 것을 들 수 있겠다.

〈사진104〉를 수평으로 나누면 〈사진105〉가 된다. 이 구름을 그대로 경계(파란 하늘)에 붙이면 〈사진89, 102〉의 '반원·타원형 구름'이 되는 것이다. 신석기인은 이 구름에 점점이 점을 찍어 그 안에 비의 씨앗 물기(또는 수분)가 있다는 것을 표현했다. 이 또한 세계 신석기 그릇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102〉의 반타원형 구름무늬는 암사동 신석기인의 구름무늬에서 표준이라 할 수 있고, 그 뒤 여기서 실타래 모양, 삼각형, 반호띠 구름무늬로 변형이 이루어진다.

아이들이 그린 구름을 보면 〈사진106〉처럼 그린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구름 속에 비(또는 수분)가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어떤 아이는 구름 속에 점점이 점을 찍어 놓기도 한다. 아이들의 '직관'이라 할 수 있다. 신석기인이 그린 무늬는 어린아이들이 그린 평면화와 아주 닮아 있고, 그 무늬는 추상이나 상징이라기보다는 실제 대상(구상)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우리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이다.
 
〈사진107〉 일본 신석기 후기 조몬토기. 〈사진108〉 미국 신석기 미시시피 밸리 알칸사스 토기. 〈사진109〉 덴마크 청동기 시대 그릇. 〈사진110〉 이란 모르타르 그릇. 기원전 3세기. 〈사진111〉 중국 신석기 앙싸오 채색토기. 기원전 5000년∼2000년. 세계에서 이름난 선사시대 박물관에 들어가 위와 같은 그릇(pottery·ceramic·vessel)을 검색해 설명글을 읽어보면 거의 다 기하학적 무늬(geometric pattern) 또는 추상적 디자인(abstract design)이라고만 할 뿐이다. 이 무늬를 ‘구름무늬’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 세계 신석기·청동기인이 그린 반원·타원형 구름 〈사진107〉 일본 신석기 후기 조몬토기. 〈사진108〉 미국 신석기 미시시피 밸리 알칸사스 토기. 〈사진109〉 덴마크 청동기 시대 그릇. 〈사진110〉 이란 모르타르 그릇. 기원전 3세기. 〈사진111〉 중국 신석기 앙싸오 채색토기. 기원전 5000년∼2000년. 세계에서 이름난 선사시대 박물관에 들어가 위와 같은 그릇(pottery·ceramic·vessel)을 검색해 설명글을 읽어보면 거의 다 기하학적 무늬(geometric pattern) 또는 추상적 디자인(abstract design)이라고만 할 뿐이다. 이 무늬를 ‘구름무늬’로 읽지 못하는 것이다.
ⓒ 김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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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광주드림에도 보냅니다.


태그:#빗살무늬토기의 비밀, #김찬곤, #반타원형 구름, #반원형 구름, #우운화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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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말에는 저마다 결이 있다. 그 결을 붙잡아 쓰려 한다. 이와 더불어 말의 계급성, 말과 기억, 기억과 반기억, 우리말과 서양말, 말(또는 글)과 세상, 한국미술사, 기원과 전도 같은 것도 다룰 생각이다. 호서대학교에서 글쓰기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고, 또 배우고 있다. https://www.facebook.com/childk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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