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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오후 7시.

애들 엄마의 어린이집 엄마 단톡방 알림음이 수시로 울린다. 유치원 선발 결과 발표 시간이다. 이미 애들 엄마는 컴퓨터를 켜놓고 대기 중이었다. 전국의 모든 엄마들이 '처음학교로' 홈페이지에 접속하는지 홈페이지 접속이 계속 되지 않는다.

건너편 아파트 민이(가명) 엄마가 우리 동네에서 경쟁률이 가장 치열한 공립단설유치원 합격 소식을 전해 왔다.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대화창에 줄줄이 달린다. 주이(가명) 엄마는 1순위 공립단설유치원과 2순위 사립유치원 모두 탈락이라는 비보를 전해 온다.

드디어 우리 집 컴퓨터가 '처음학교로' 홈페이지 접속에 성공했다. 화면이 떴다.

애들 엄마는 11월 한 달 동안 10군데 정도의 국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 설명회를 다녔다. 국공립유치원을 가고 싶은 마음은 강렬했으나 떨어질 확률이 높았으므로 사립유치원도 사전에 정보를 알아야 했던 것이다.

최근 불거진 사립유치원의 불미스러운 사태로 인해 국공립유치원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대학입시야 본인 실력만 출중하면 눈치 작전 없이 합격을 기대할 수 있지만 이놈의 유치원 전형은 순전히 '운빨'이라 합격 여부를 가늠할 수가 없다.

애들 엄마는 우리 집 옆에 있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공립단설유치원 입학을 무척이나 바랐다. 유치원 시설과 교육 과정은 차치하고 일단 교육비가 전액 무료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 바람은 높아만 갔다. 
  
아내가 가고싶었던 국공립유치원은 떨어지고 대기번호 33번이었다. 가능성은 거의 '0'이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면 되지만 첫째는 어쩔수 없이 사립유치원에 가야한다.
▲ 유치원 전형결과 아내가 가고싶었던 국공립유치원은 떨어지고 대기번호 33번이었다. 가능성은 거의 "0"이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면 되지만 첫째는 어쩔수 없이 사립유치원에 가야한다.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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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유치원 탈락의 슬픔

1순위에 지원한 공립단설유치원은 대기번호 33번의 실질적인 탈락 소식을 모니터에 띄웠다. 아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약 2분 후 아내의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흐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상식적인 표현이 지금 이 상황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침묵과 침통함을 일부러라도 깰 필요가 있어 내가 한마디 했다.

"2순위 00유치원(사립) 합격했네. 자기 여기 환경도 좋고, 교육 과정도 충실해서 좋아했잖아. 잘 됐네."

아내는 조용히 거실을 떠나 화장실로 갔다. 울음을 참는 소리가 거실까지 들렸다. 아이들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엄마 울지 말라고 함께 운다. 집안 전체가 통곡의 현장이다. 

애들 엄마뿐 아니라 우리 동네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공립단설유치원을 1순위로 지원했다. 공립단설유치원이 안 되면 공립병설유치원에라도 입학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국공립 단설, 병설유치원의 원아 수용률은 턱없이 모자랐다.

국공립유치원에 떨어진 아이는 어쩔 수 없이 사립유치원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주이 엄마처럼 1순위, 2순위 모두 떨어진 사람은 다시 한 번 유치원을 알아보기 위해 동네에 있는 유치원을 떠돌아다녀야 한다. 
  
국공립유치원을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립유치원은 일년에 들어가는 비용만 330만원이 넘는다.
▲ 사립유치원 교육비 국공립유치원을 떨어지고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사립유치원은 일년에 들어가는 비용만 330만원이 넘는다.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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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단설유치원에 떨어지고 그나마 운 좋게 합격한 사립유치원의 교육비를 살펴보았다.

입학금이 15만 원, 물품비가 연 13만 원, 현장체험 학습비가 연 12만 원, 교재비가 연 40만 원, 월 교육비가 11만 원, 월 교통비가 2만 원, 월 급식비가 4만 원, 방과 후 교재비가 간식비를 포함해서 월 4만 원이 든단다.

어쩔 수 없이 사립유치원생 부모가 된 나는 1년에 총 332만 원의 비용을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달로 계산하면 월 28만 원 가까운 돈이다. 

국공립유치원에 집중된 교육부 정책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국공립유치원 확충 및서비스 개선 방안 발표를 위해 참석해 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6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교육부에서 국공립유치원 확충 및서비스 개선 방안 발표를 위해 참석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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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6일 내년에 국공립유치원을 1천학급 이상 늘려 기존보다 원아 2만 명가량을 더 수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직접 전했다. 또한 국공립유치원의 하원 시각이 너무 이르다는 지적 등을 고려해 맞벌이 가정 자녀 등을 대상으로 학기 중 오후 돌봄과 방학 돌봄을 강화하고 통학버스도 운영할 거란다. 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중심으로 하는 '국공립유치원 신·증설 세부 이행 계획 및 서비스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발표는 전부 국공립유치원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고 지원이다. 한 해, 한 해 국공립유치원의 원아 수용을 늘려간다는 소식은 대환영이다. 하지만 나같이 재수 없는 사립유치원생 부모를 위한 정책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최근의 사립유치원의 비리와 한유총의 최근 행태를 두둔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다만 국공립유치원의 수와 수용 인원이 턱없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립유치원에 가야 하는, 그로인해 한 달에 30만 원 가까이 지출해야 하는 나 같은 학부모의 상황은 정부가 왜 조금도 헤아려주지 않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애들 엄마의 단톡방은 환희와 통곡, 그리고 위로와 축하의 메시지가 쉴 새 없이 오고 갔다. 누구나 가고 싶어 했던 공립단설유치원에 합격한 민이 엄마가 1, 2순위 다 떨어진 주이 엄마와 아내를 동네 꼬치집에서 만나 위로주를 사기로 했단다.

여전히 우울한 아내를 위로하기 위해 난 조용히 집 앞 편의점에 맥주를 사러 출동한다. 날씨가 춥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한 달에 30만 원을 확보하기 위해 난 또 어떤 지출 항목을 삭제 또는 줄여야 할까?

태그:#국공립유치원, #교육기회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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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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