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삼국-무영자> 포스터

영화 <삼국-무영자> 포스터 ⓒ 조이앤시네마,일레븐엔터테인먼트

 
삼국시대 중국, 패국의 장군 도독(덩차오 분)은 몇 해 전 경주를 놓고 적국의 장수 양창(후준 분)과 벌인 싸움에서 지며 심한 부상을 입었다. 도독은 자신을 견제하는 왕 주공(정개 분)으로부터 권력을 지키고 복수를 꾀하기 위해 외모를 빼닮은 '그림자(덩차오 분)'를 내세워 모두를 속인다. 도독이 그림자를 통해 양창에게 다시 결투를 청하자 전쟁이 일어나는 걸 두려워한 주공은 동생 청평(관효동 분)을 첩으로 팔아서라도 막으려 한다.

양창에게 복수하며 왕위까지 노리는 도독은 아내 소애(손려 분)와 함께 그림자에게 무공을 전수한다. 도독에게 복종하던 그림자는 점차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에 의문을 품지만, 경주를 수복하면 어머니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양창과 결투에 나선다. 무능하게만 보이던 주공이 도독의 속내를 눈치채면서 도독, 그림자, 소애의 운명은 끝을 알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든다.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일레븐엔터테인먼트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의 '5세대'를 대표한다.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국 영화는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마오쩌둥 사망 이후 다시 문을 연 북경영화학교를 졸업한 감독들을 일컫는 5세대는 영화의 활용에서 다른 인식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국두> <붉은 수수밭> <귀주 이야기>의 장이머우와 <황토지> <현 위의 인생> <패왕별희>의 천 카이거 등 5세대 감독들은 역사와 문화, 민중의 삶에 파고들었고 광선과 색채를 적극 활용하는 연출을 선보였다.

'중국 블록버스터'를 대표하는 감독 또한 장이머우다. 2003년 공개한 <영웅: 천하의 시작>은 21세기 중국의 대형 영화의 전환점을 마련한 작품이다. 이후 장이머우의 중국 블록버스터 필모는 <연인> <황후화> 등을 거쳐 할리우드와 손을 잡은 초대형 프로젝트 <그레이트 월>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장이머우가 거대 영화에만 눈을 돌린 건 아니었다. <천리주단기> <산시나무 아래> < 5일의 마중 >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붉은 수수밭>부터 <그레이트 월>까지 지난 30여 년간 중국 영화의 다른 이름은 장이머우였다. 많은 사람이 장이머우가 권력의 입김이 강한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낸다. 반면에 여러 장르에서 활동하는 모습에 주목하는 평자도 적지 않다.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 5일의 마중 >을 보고 "5세대 영화인들 가운데 장이머우만이 여전히 예술적 기운을 잃지 않고 있다. 많은 이들이 그의 타락을 비난하지만, 중국에서 상업 주류영화를 만드는 이들 가운데 장이머우 만큼 격을 지키는 감독이 또 있을까 싶다"(2014년 12월 2일 한겨레 신문 기고 '누군가가 돌아오길 기다려본 적 있다면…')고 평가했다.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일레븐엔터테인먼트


장이머우의 신작 <삼국-무영자>는 총 5년의 제작 기간과 489억의 제작비를 투입한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다. 영화는 삼국 시대를 배경으로 권력과 목숨을 지키기 위해 자신과 닮은 자를 대역으로 내세우며 벌어지는 음모와 인물들이 깊숙이 감춘 욕망을 다룬다.

도독, 그림자, 소애, 주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바둑 또는 체스 게임을 연상케 한다. 인물들은 줄곧 속내를 숨긴다. 영화는 각자의 음모를 겹겹이 쌓아가며 인물의 이중적인 얼굴을 드러낸다. 누가 누구의 미끼인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가?

<삼국-무영자>의 원제는 그림자를 뜻하는 '영(影)'이다. 영어 제목도 < Shadow >다. 영화 속엔 대역을 의미하는 '그림자'가 나온다. '그림자'는 인간의 숨겨두었던 본성을 담은 제목이기도 하다. 극 중에서 "대체 전 누굽니까?"란 그림자의 외침은 자신에게 던진 정체성의 혼란이자 상대방을 향한 "대체 당신은 누굽니까?"란 의문이다. 이런 설정에 대해 장이머우 감독은 사람은 착함과 악함으로 단순히 나눌 수 없는, "다양성과 복잡성이 매력적"이라고 설명한다.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일레븐엔터테인먼트


색의 사용은 음모와 욕망으로 얽힌 서사를 강화한다. 장이머우 감독은 <영웅: 천하의 시작> <연인> <황후화> <그레이트 월>에서 화려한 색감을 뽐낸 바 있다. 그러나 <삼국-무영자>의 색채는 다르다. 영화는 하얀색, 검은색, 회색으로 뒤덮인 무채색의 세계를 보여준다. 욕망의 대가인 피와 음모를 감춘 얼굴에만 색이 주어졌을 따름이다.

흑과 백의 사용은 영화를 그림자 연극처럼 보여줌과 동시에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하는 느낌을 자아낸다. 장이머우 감독은 "중국의 전통 예술은 잉크와 물의 우아함을 강조한다"며 "오랫동안 이 기법을 영화 속에 녹이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흑백은 빛과 그림자, 음과 양, 진실과 거짓 등 대립항을 한층 강조한다. 나아가 회색은 흑과 백으로 구분할 수 없는 모호함으로 발전한다.

<삼국-무영자>는 무협 영화답게 액션 시퀀스를 촘촘히 배치했다. 영화는 도독과 소애가 그림자를 훈련시키는 장면, 강철날로 만들어진 우산과 중국의 전통적인 창의 대결, 도독의 부대가 양창이 지키는 경주를 침공하는 대목 등 창의적이고 스릴 넘치는 액션 시퀀스가 가득하다.

후반부의 전투 장면은 비 속에서 펼쳐진다. 장이머우 감독은 잉크가 물에 번지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빗물이 흩어지는 장면을 영화에 담길 원했다고 한다. 영화의 고유한 분위기를 완성하기 위해 인공 비가 아닌 실제 비를 담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구슬비, 장대비 등 다양한 우천 촬영을 감행했다는 후문이다.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영화 <삼국-무영자>의 한 장면 ⓒ 조이앤시네마,일레븐엔터테인먼트


장이머우 감독은 <삼국-무영자>에서 색과 액션을 조화와 통일을 강조하는 도교의 음양에 바탕을 두어 사용한다. 그는 대립항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다. 셰익스피어의 파멸극 <맥베스>와 구로사와 아키라의 그림자 영화 <카게무샤>의 영향 아래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삼국-무영자>는 <영웅: 천하의 시작>과 유사한 듯 다른 영화이기도 하다. 색의 사용도 그렇거니와 조화와 통일에 뿌리를 둔 전개도 그렇다. 그러나 왕을 바라보는 태도는 상반된다. 이것은 <영웅: 천하의 시작>으로부터 15년이 흐른 뒤에 바뀐, 장이머우의 생각을 담은 정치적 텍스트일까? 아니면 단순히 영화적 재미를 위한 음모극에 불과할까?

여러모로 <삼국-무영자>는 <영웅: 천하의 시작>의 '그림자'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중국 블록버스터에서 5세대의 고민을 담고자 하는 장이머우의 고심을 느낄 수 있다. 정치적인 해석을 떠나 색의 사용과 액션 장면만으로도 올해 베스트인 영화다. 13일 개봉.
장이머우 덩차오 손려 정개 후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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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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