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거침없는 총격에 놀라 얼어붙은 사위 폴 커시

장인의 거침없는 총격에 놀라 얼어붙은 사위 폴 커시 ⓒ (주)더쿱

 
텍사스의 어느 마을. 오늘 딸의 시신을 아내의 무덤 옆에 묻어 준 남자가 있다. 그리고 아내의 시신 옆에 딸의 시신을 묻게 될까 봐 걱정하는 남자가 있다. 그렇게 장인과 사위는 서글픈 마음으로 농장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밀렵꾼들을 목격한다. 도망가는 그들을 향해 거침없이 총을 쏘던 장인은 사위에게 말한다.

"정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직접 지켜야 해. 경찰은 다 끝난 다음에 나타나거든."
  
시카고는 요즘 그림 리퍼(사신)의 등장에 연일 논쟁이 뜨겁다. 밤에 여성을 납치하고 차를 털려던 3인조 주차 강도가 후드를 쓴 거구의 남성의 총격으로 죽게 되자, 과연 사적 심판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찬반 논란이 인 것이다.

납치될 뻔한 여성에게 그는 '수호천사'였으나, 우연히 창밖을 보다 해당 영상을 촬영한 여성에게 그는 그저 '사신'일 뿐이었다. 치안이 부재한 듯한 시카고의 거리에는 사적 심판이 계속된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분노에 찬 킬러에게 과연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40여 년 만에 부활한 <데스 위시>... 왜 지금인가
 
 마이클 위너 <데스 위시>(1974)와 일라이 로스 <데스 위시>(2018> 포스터

마이클 위너 <데스 위시>(1974)와 일라이 로스 <데스 위시>(2018> 포스터 ⓒ (주)더쿱

  
마이클 위너 감독의 1974년작 <데스 위시>가 40여 년 만에 일라이 로스 감독의 <데스 위시>로 부활했다. 3인조 강도로 인해 아내가 총에 맞아 죽고 딸이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밤거리의 무법자들을 청소하기 시작한 폴 커시(찰스 브론슨)의 이야기는 이후 1982년, 1985년, 1987년, 1994년까지 20년에 걸쳐 네 편의 속편이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무표정임에도 슬픔과 분노가 느껴지는 찰스 브론슨의 표정 연기도 훌륭하지만, 아무래도 '총잡이 자경단의 활약'이라는 매우 논쟁적인 이슈임에도 대리만족과 보상심리의 쾌감은 거부할 수가 없기 때문이리라.
 
 총격으로 실려온 경관의 수술을 맡았던 외과 의사 폴 커시.

총격으로 실려온 경관의 수술을 맡았던 외과 의사 폴 커시. ⓒ (주)더쿱

  
브라이언 가필드의 원작 소설 <데스 위시>(1972)의 주인공은 평범한 회계사였고, 마이클 위너 감독의 <데스 위시>(1974)의 폴 커시는 건축설계사, 그리고 일라이 로스 감독의 <데스 위시>(2018) 폴 커시의 직업은 외과의사이다.

직업만 바뀔 뿐 골격은 유지된다. 오프닝에서 뉴스로 전달되는 시카고라는 도시는 무슨 무법지대 같다. 총격으로 급히 이송된 경관이 수술을 받기도 전에 죽고, 그를 쏜 범죄자를 수술하러 가는 폴 커시에게 분노한 동료 경찰이 항변한다.

"내 동료를 쏜 짐승을 살리겠다는 겁니까!"
"살릴 수 있다면요."


의사로서의 본분을 다 하는 능력 있고 성실한 의사 폴 커시의 집은 시카고 북부 미시건 호 근처의 부유촌 주거지에 있다. 시카고로 통근이 가능한 교외의 안전한 주택가에 최근 강도가 들기 시작한 것은 경찰만 아는 비밀. 평화로운 고급 저택도 3인조 강도의 습격을 피할 수 없다.

15년 공부 끝에 박사학위를 따게 된 아내가 총에 맞아 죽고, 대학 입학을 앞둔 딸이 의식불명 상태에 이른다. 법을 성실히 지키며,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는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아내의 비명횡사와 딸의 의식불명. 범죄의 예방도 범인의 검거도 경찰력을 믿고 기다리면 과연 해결되는 것일까.

과도한 총기 소유? 치안의 부재?
 
 투싼의 동료가 선물한 권총을 손에 쥔 폴 커시.

투싼의 동료가 선물한 권총을 손에 쥔 폴 커시. ⓒ 파라마운트사

  
1974년 원작 영화에서 폴 커시는 도시의 주거지를 설계하는 건축설계사로 등장한다. 사건이 있은 후, 그는 투싼의 황무지에 대단위 주택을 설계하러 떠나는데, 그곳에는 거친 서부영화의 촬영지였던 스튜디오가 있다. 서부영화의 클리셰를 딴 '건 파이트' 공연이 펼쳐지고, 악당의 포악질과 보안관의 제압과 소탕에 환호하는 관광객들 사이로 폴 커시의 상기된 얼굴이 비친다.

사냥꾼의 아들이며, 숙련된 사격술의 소유자였지만, 아버지가 다른 사냥꾼의 실수로 죽자, 그날 이후 총을 내려놓았던 폴 커시. 치안 부재의 도시에서 건너 온 범죄 유가족에게 있어 서부영화의 '자경(self defense)'는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현재 미국에선 그 어떤 시기보다 더 잦은 총기 난사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11월 19일에는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머시 병원'에서, 콜로라도 주 덴버의 '헬스메디컬센터'에서 하루에 두 건의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연기한 폴 커시의 상황, 즉 총을 소지한 강도에게 가족을 잃은 이 상황의 핵심이 과도한 총기 소유에 있을까, 치안의 부재에 있을까? 집에 쳐들어온 강도를 총으로 쏴 죽이지 못한 아내와 딸의 잘못인가? 모두가 총을 소지했다면, 그로 인한 사건 사고를 다 막을 수 있는 치안이란 게 과연 가능할 수 있을까?
 
 건강을 회복한 딸을 뉴욕의 어느 대학에 데려다 주고 돌아선 폴 커시. 뉴욕의 거리에도 역시 존재하는 무법자를 향해 빈총 액션을 날려주며 영화는 끝난다. 속편의 암시일까.

건강을 회복한 딸을 뉴욕의 어느 대학에 데려다 주고 돌아선 폴 커시. 뉴욕의 거리에도 역시 존재하는 무법자를 향해 빈총 액션을 날려주며 영화는 끝난다. 속편의 암시일까. ⓒ (주)더쿱


2015년 트럼프는 오리건주 대학의 총기 난사로 9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을 두고 '교수나 학생들이 모두 총을 갖고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러면서 찰스 브론슨의 빈총 액션 제스처를 모방하기도 했다고. 과연 그럴까. 모두 총을 갖고 있었다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더 큰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방어용 총기 소유 옹호론자인 트럼프가 대통령인 지금 이 영화가 리메이크된 것은 우연의 일치인 것일까.

물론, 2007년에 제임스 완 감독의 <데스 센텐스>라는 조금 변형된 리메이크작이 나왔고, 2008년 리암 니슨의 <테이큰> 이후 아버지의 복수극이 거대한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이런 플롯의 시조나 다름없는 <데스 위시>의 리메이크는 그리 이상할 것도 없다.

<데스 위시> 오리지널에서 찰스 브론슨은 52세에 분노에 찬 아버지 역을 맡았고,<데스 센텐스>에서 케빈 베이컨은 50세에, <테이큰>의 리암 리슨은 56세, 지금 브루스 윌리스는 63세로 스타트가 다소 늦지만 '다이 하드'의 영웅인데 뭐 어떠리.

<데스 위시>의 세상은 아직도 변한 것이 없다

총기 소지의 문제는 아니지만, 우리나라 역시 치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 날로 커지고 있다. CCTV 설치 지역이라도 범죄는 일어나며, 모든 범행이 끝난 후 경찰은 나타나며, 범인은 일정 기간 감금될 뿐이다. <데스 위시>의 세상은 아직도 변한 것이 없다.

1970년대 뉴욕의 밤거리에도 누군가 폭행을 당하는데,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며, 2018년 현재 시카고의 밤거리에도 역시 누군가 주차 강도를 당하는데 집에서 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려 조회 수 올릴 생각을 하는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비록 이번 리메이크작은 지난 10월 11일에 국내에서 개봉해 총 7915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개봉 2주일도 못 채우고 소리 소문 없이 극장에서 내려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쉬운 영화이다. 우리 세계와 닮아 있는 거울임을 상기하는 <데스 위시>는 여전히, 충분히, 앞으로도 논쟁적이다.
데스 위시 일라이 로스 브루스 윌리스 찰스 브론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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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화를 봐도 성경이 떠오르는 노잼 편집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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