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서울에서 열린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MVP로 선정된 두산 김재환이 정운찬 KBO 총재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있다. 2018.11.19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서울에서 열린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MVP로 선정된 두산 김재환이 정운찬 KBO 총재로부터 트로피를 받고 있다. 2018.11.19 ⓒ 연합뉴스

 
팀을 정규 시즌 우승으로 이끈 '외국인 에이스' 린드블럼도, '돌아온 홈런왕' 박병호도, '리그 최고의 포수' 양의지도 아니었다.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별 중의 별로 등극한 선수, 바로 두산 베어스의 김재환이었다. 김재환은 19일 오후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르메르디앙 서울 다빈치볼룸에서 열린 '2018 신한은행 MY CAR KBO 시상식'에서 올 시즌 KBO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기록만 놓고 본다면, MVP급 활약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넓은 잠실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는 타자임에도 44개의 홈런을 쏘아올리며 정규 시즌 홈런왕을 차지했고, 133타점을 기록하면서 타점 부문에서도 타이틀 홀더가 됐다. 그러나 '금지약물 복용 전력'이라는 꼬리표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고, 어떤 활약을 펼치더라도 많은 야구 팬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었다. 역시나 올해 시상식을 앞두고도 MVP 주인공을 놓고 양의지를 비롯한 다른 선수들에게 초점이 맞춰진 상황이었다.

이미 김재환은 KBO가 주관한 시상식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외야수 부문에서 한 자리를 차지했는데, 사실 그 당시에도 김재환은 차가운 반응을 얻어야 했다. 그 이후에도 야구 팬들 사이에서는 금지약물 복용 전력 선수의 수상 자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질 않았지만, KBO에서는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다. 제도적으로는 김재환의 수상에 여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태다.

금지약물 복용 전력에도 MVP 수상... 한일 최초 사례를 만든 투표인단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서울에서 열린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MVP로 선정된 두산 김재환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2018.11.19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르메르디앙서울에서 열린 2018 KBO리그 시상식에서 MVP로 선정된 두산 김재환이 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2018.11.19 ⓒ 연합뉴스

 
MVP 투표는 1위부터 5위까지 차례대로 8점, 4점, 3점, 2점, 1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투표인단이 투표 과정에서 자율적으로 순위를 정한다. 선수 개인별로 얻은 점수를 합산했고, 총점이 가장 높은 선수가 MVP로 선정되는 방식이다. 투표인단 111명 중에서 76명의 기자들이 김재환에게 표를 던졌고, 51명은 그에게 1위표를 줬다. 그렇게 총점 487점을 획득한 김재환이 MVP로 결정됐다. 반면, 수상이 유력했던 린드블럼은 2위, 김재환과 함께 홈런왕 경쟁을 펼친 박병호는 3위, 양의지와 후랭코프는 각각 4위와 5위에 그쳤다.

투표인단은 그저 성적만 봤을 것이다. 51명, 즉 전체 투표인단에서 절반 가까이 되는 인원은 김재환에 가장 많은 점수를 부여했다. 반대로, 5위표마저 주지 않은 나머지 35명의 기자들만 그의 금지약물 복용 전력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리그를 위해서 좋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지만, 과거의 잘못을 계속 반성하고 있는 김재환을 생각하더라도 바람직한 결과로 보이지 않는다.

MVP 수상 소감에서도 과거의 잘못을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수상소감으로 "(약물 논란은) 제가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 같은 것이다. 무겁게 가지고 가겠다"고 사과의 뜻을 밝혔으며 이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단 하루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털어놨다(<연합뉴스> 2018년 11월 19일 최고의 순간에 치부 꺼낸 김재환 "약물 문제, 매일 후회했다"). 한 시즌을 정리하는 시상식에서 리그 최우수선수가 됐다면 기뻐하는 게 당연하지만 김재환은 그럴 수 없었다.

MLB(미국 메이저리그), NPB(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지금껏 금지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선수가 MVP로 선정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다. 금지약물에 대한 팬들의 시선도 곱지 않고, 투표권을 가진 기자들 역시 냉정하게 표를 주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도 2017년까지 없었던 일이엇는데, 올해 김재환의 MVP 수상이 한‧미‧일 3개국을 통틀어 최초의 사례로 남게 됐다. 다만 그러한 결과를 만든 기자들이, MVP로 선정된 수상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다.

야구 팬들은 물론, 언론들까지 김재환의 수상에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다. 지금의 불편한 분위기를 만든 것은 김재환이 아니라 그에게 점수를 부여한 76명의 기자들이 아닐까. 애초에 다른 선수에게 점수를 더 주고, 표를 줬다면 이럴 일도 없었다.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제도 개선(금지약물 전력 선수 수상 금지라거나) 등 본질적인 해결 방법을 의논해야 한다.
 
 김재환은 111명의 기자 중에서 76명의 기자에게 표를 받았다.

김재환은 111명의 기자 중에서 76명의 기자에게 표를 받았다. ⓒ 유준상


또 다시 제기된 문제, 투표인단뿐만 아니라 KBO에게도 책임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다보니 당장 다음 달에 열릴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관심이 모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기준으로 골든글러브 시상식 투표인단은 383명이었고, 이 가운데서 투표권을 행사한 인원은 총 357명이었다. 올해 KBO 시상식 투표인단(111명)보다 3배 이상 많았다. 기자뿐만 아니라 PD, 아나운서 등 미디어 관계자들이 투표권을 갖게 됐지만, 그 때도 투표 결과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타율 부문 2위에 이름을 올린 박건우가 황금장갑을 품에 안지 못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국내 선수들의 강세가 두드러지는 등 많은 야구 팬들이 결과에 불만을 표출했다. 이 밖에도 개인 성적과 관계없이 팀 성적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일명 '팀 성적 프리미엄'도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경우가 많았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서 이제는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광경이다. 지금의 분위기라면, MVP가 되고도 고개를 숙인 김재환은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또 한 번 그런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제도가 바뀌지 않은 상태로 무기명 투표 방식이 유지된다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누가 투표했는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투표 이유를 밝히지 않는 투표에서 공정성을 논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다시 말해서 김재환의 MVP 수상은 기자들의 책임뿐만 아니라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은 KBO도 되돌아봐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굳이 김재환이 아니더라도 어떠한 이유에서든 문제를 한 번이라도 일으킨 선수의 수상 여부 논란은 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수밖에 없다. 잘못을 범한 선수들을 비판할 수도 있고, 선수 스스로도 책임감을 느껴야 하겠지만 제도를 운영해야 하는 KBO와 투표권을 가진 투표인단의 자세가 바뀌어야 비로소 투표의 공정성이 실현될 것이다. 항상 말로만 잘못을 지적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는 야구계 전체가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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