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이(188cm·IBK기업은행)

어나이(188cm·IBK기업은행) ⓒ 박진철

 
또 꼴찌 순번에서 대박이 터졌다. 프로배구 IBK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 어나이(23세) 이야기다.

그는 지난 5월 실시된 V리그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에서 맨 마지막 순번(6순위)으로 IBK기업은행에 지명됐다. 만약 IBK기업은행이 지명을 하지 않았다면, 올 시즌 V리그에서 볼 수 없는 선수였다.

어나이는 2라운드가 진행 중인 19일 현재 V리그 여자부 전체 선수 중 단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기량도 출중하지만, 팀 기여도에서도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록이 증명해준다. 어나이는 여자부 득점 부문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까지 7경기를 치른 가운데 221득점을 기록했다. 2위 박정아(203득점), 3위 알레나(185득점), 4위 톰시아(182득점)보다 넉넉하게 앞서 있다. 더군다나 8경기를 마친 박정아, 알레나, 톰시아보다 1경기를 덜 치른 상태다.

어나이는 경기당 평균 득점이 31득점으로 유일하게 30득점을 넘어섰다. 공격성공률도 41.2%로 4위에 올라 있다. 퀵오픈에서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어나이의 진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레프트 공격수로서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선보이고 있다. 서브 리시브의 안정감과 디그의 순발력이 수준급이다.

나이가 어려 체력적인 부분에서도 강점이다. 6개 구단의 외국인 선수뿐만 아니라 국내 선수를 포함해서도 어린 편에 속한다. 어나이는 1996년생이다. 한국 나이로도 23세에 불과하다. 신장은 188cm로 레프트 공격수로서는 장신이다. 어리고 장신이면서 공격과 수비력까지 좋은 '완성형 레프트 공격수'라고 평가할 수 있다.

'어린 유망주는 어렵다'는 편견을 깨다

어나이는 V리그가 생애 첫 프로 무대 진출이다. 지난해까지 미국 대학 리그 강호인 유타(Utah) 대학의 주 공격수로 맹활약했다. 유타대 시절 3년 연속 500득점 이상을 기록했고, 지난해는 미국 대학 랭킹 1위에 올랐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이 풍부한 유망주였다.

실제로 지난 5월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도 국내 프로구단 감독들이 사전에 매긴 선호도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높은 가능성을 인정 받은 것이다.

그러나 막상 드래프트 당일에는 대부분의 감독들이 어나이를 외면했다. 프로 경험이 없고, 나이가 어려 V리그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맨 마지막 순번인 IBK기업은행의 차례가 올 때까지 누구도 어나이를 지명하지 않았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순간 당황했다. 어나이를 뽑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자신의 순번까지 밀려 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염두에 두고 있던 또 다른 선수 헤일리 스펠만(28세·202cm)까지 지명을 못 받고 남아 있었다.

고민에 빠진 이 감독은 즉시 진행 측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그리고 어나이를 최종 낙점했다. 헤일리의 경험보다 어나이의 가능성에 승부를 건 것이다. 이 선택은 지금 최고의 결과로 이어졌다(관련 기사 : 여자배구 외국인 선수 지명, '뜻밖 횡재'에 웃은 두 감독).

물론 어나이 성공에는 이 감독의 안목과 선택 때문만은 아니다. 어린 장신 유망주가 기량이 만개할 수 있도록 비시즌 동안 잘 육성했고, 팀 문화와 프로 무대에 빠르게 녹아들 수 있도록 관리를 잘한 측면도 크기 때문이다.

어나이, 데스티니 후속작 될까... 메디와도 흡사
 
 지난 5월 실시된 2018~2019 V리그 트라이아웃 당시 어나이

지난 5월 실시된 2018~2019 V리그 트라이아웃 당시 어나이 ⓒ 한국배구연맹

 
어나이의 장점은 또 있다.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송사 배구 해설위원 등 전문가들도 어나이가 경기를 거듭할수록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어나이의 종착역은 미국 국가대표팀에서 활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어린 나이에 V리그 활약을 바탕으로 미국 성인 대표팀에 발탁된 사례가 여럿 있었다. 그 중에는 세계 정상급 선수로 이어진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선수가 데스티니 후커(32세·195cm)다. 데스티니는 지난 2009~2010 V리그에서 시즌 중간에 GS칼텍스의 대체 외국인 선수로 영입됐다. 그리고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데스티니 합류 전까지 GS칼텍스는 2승 10패로 최하위에 허덕였다. 그러나 데스티니 영입 이후 14연승이라는 V리그 여자부 역대 최다 연승 신기록을 세웠다. GS칼텍스는 불가능해 보였던 플레이오프(PO)까지 진출했다.

이후 데스티니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의 주 공격수로 맹활약하며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4~2015시즌에는 또다시 V리그로 복귀했다. 당시 IBK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며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재는 브라질 리그 오사스코(OSASCO)에서 주전 라이트로 활약 중이다.

니콜(33세·193cm)도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3년 연속 V리그 한국도로공사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그리고 2016 월드그랑프리에서 미국 대표팀에 발탁돼 좋은 활약을 했다. 니콜도 현재 브라질 리그 덴틸(DENTIL) 팀에서 뛰고 있다.

맥마혼(26·197cm)도 2015~2016시즌 V리그에서 IBK기업은행이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부상을 입어 챔피언결정전에 뛰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이후에도 독일 리그의 드레스드너 팀에서 주 공격수로 활약했다. 그리고 2017 월드그랑프리에서 미국 대표팀에 선발됐다.

메디(26세·184cm)는 V리그에서 활약하는 도중에 미국 성인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는 2016~2017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2년 연속 IBK기업은행의 외국인 선수로 맹활약했다. 2016~2017시즌에는 IBK기업은행을 챔피언결정전 우승으로 이끌고 MVP를 수상했다. 강력한 공격 파워와 체력, 공격과 수비력을 겸비한 완성형 레프트로서 자신의 가치를 유감없이 증명해 보였다. 이를 바탕으로 2017 월드그랑프리에서 미국 대표팀에 선발됐고, 주전 레프트로 맹활약했다. 현재는 중국 리그 베이징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메디도 어나이와 흡사한 면이 많았다. 지난 2016년 4월 실시된 V리그 트라이아웃에서 '꼴찌 순번(6순위)'으로 IBK기업은행 이정철 감독에게 지명을 받았다. 포지션도 어나이와 같은 레프트 공격수다.

팬아메리칸컵 미국 대표팀 출전... 1군행 '예비 코스' 밟다

어나이도 올 시즌 V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이어갈 경우, 메디의 뒤를 이어 미국 성인 대표팀에 발탁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어나이는 올해 7월 도미니카에서 열린 2018 팬아메리칸컵 대회에서 미국 성인 대표팀에 발탁돼 활약한 바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1군 주전 멤버가 모두 빠진 2군 팀이었다. 비록 2군이었지만, 어나이가 차세대 미국 성인 대표팀 자원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셈이다(관련 기사 : V리그 새 외국인 '어나이', 미국 대표팀 활약 '눈에 띄네').

팬아메리칸컵 대회에서도 어나이는 공격 스윙이 간결하고 빨랐다. 무엇보다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에도 적극 가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미국 대표팀이 세대교체가 시급한 상황이라는 점도 어나이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지난 10월 일본에서 열린 2018 세계선수권에서 미국은 4강 진출마저 실패했다. 2014년 세계선수권 우승 팀이었던 미국은 이번에 5위로 주저앉았다.

30대 위주로 구성된 주전 선수들의 하향세, 젊고 강력한 주 공격수의 부재가 주 요인으로 꼽힌다.

이정철 감독 "미국 대표팀 된다면, 메디보다 나을 수 있다"

일각에선 어나이의 성장 가능성이 메디보다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정철 감독도 17일 한국도로공사와 경기 직후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어나이의 미국 성인 대표팀 발탁까지 염두에 둔 발언을 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어나이가 더 성장을 해서 미국 대표팀에 간다면, 내가 봐서는 메디보다 못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미국 대표팀에서 활약한) 메디와 어나이의 장점은 각각 다르다"며 "메디는 파워가 강하다. 다만 공격 타점은 낮은 편이다. 반면 어나이는 타점도 더 높고 공격 스윙이 괜찮고 부드럽다"고 촌평했다. 그는 "블로킹 능력과 높이에서도 어나이가 메디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특히 어나이의 서브 리시브 능력과 안정감에 대해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서브 리시브는 어나이가 메디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어 "어나이는 서브 리시브를 할 때 팔을 공에 갖다 대는 터치감이 겁도 안 먹고, 강한 볼이 와도 몸이 흔들리지 않는다"며 "다만 리시브 자세를 좀 더 이쁘게 잡으라고 얘기를 해주고 있다. 그래야 볼을 더 잘 만들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공격 부분에서도 상대의 블로킹이 완벽하게 들어왔을 때는 길게 보고 밀어치거나, 사이드 블로킹을 최대한 활용해서 볼 회전을 좌우로 깎아 때려야 한다"며 "그렇게 해서 블로킹에 맞고 튀게 하는 테크닉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어나이도 이날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라면 미국 대표팀이 되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 문화도 배워보고 싶다"면서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된장찌개"라고 말했다.

지금도 최고의 활약을 하고 있지만, 미래가 더 기대되는 어나이. 그의 앞날이 주목된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프로배구 V리그 어나이 IBK기업은행 KOVO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비록 모양이 틀려도 왜곡되지 않게끔 사각형 우리 삶의 모습을, 동그란 렌즈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