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이 TV 드라마의 스토리 전개에 영향을 줄 때가 많다. 등장인물의 생과 사에 영향을 줄 때도 있다. 시청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나 제작진 입장에서는 열화와 같은 시청자들의 주문을 무한정 외면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tvN 드라마 <계룡선녀전>의 배경 설화인 '선녀와 나무꾼'에도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나 가치관이 투영된 것이다. 최초의 버전에서 벗어난 새로운 버전들이 생겨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결혼의 당사자는 두 사람뿐만이 아니다. 부부의 금슬이 좋은데도 혼인관계가 파탄되는 경우가 있는 것은, 그 속에 여러 관계들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들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고부 관계다. 고부 관계에서는 동지적 관계도 나타나고 갈등적 관계도 나타나지만, 아무래도 후자가 더 인상적으로 기억된다.
 
선녀와 나무꾼 설화 역시 결혼에 관한 이야기다. 이 설화를 접한 옛날 사람들 중에 '이것도 결혼 이야기인데 고부 갈등이 빠져서야 되겠나?' 하며 시어머니 이야기를 집어넣은 이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시어머니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버전이 탄생한 것은 그런 '시청자들'의 개입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숙 평택대 국문과 교수의 논문 '나무꾼과 선녀 설화의 민담적 성격과 주제에 관한 연구'는 시어머니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버전을 C 유형으로 분류했다. 이 버전에서는, 도망간 선녀를 찾아 하늘로 올라간 나무꾼이 어머니를 뵈러 땅에 잠시 내려왔다가 다시 못 올라가게 된다.
 
A 유형은 선녀가 아이들만 데리고 승천하는 버전, B 유형은 '기러기 아빠'가 된 나무꾼이 '비행기 티켓'을 끊고 하늘에 올라간 뒤 아내·아이들과 함께 새 삶을 사는 버전이다. 3대 유형으로 분류하는 김대숙 교수의 접근법은 이 분야 학자들인 배원룡·최상수·조희웅·권영철의 분류법과 맥을 같이한다. C 유형을 설명하면서 김대숙 교수는 재미있는 말을 했다.
 
"A 유형과 B 유형만 있다면, 이 설화는 조금 덜 현실적이다. C 유형이 있어서, 나무꾼 설화는 정말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된다. C 유형은 남녀가 만나 부부가 되어 사는 일이 비단 두 사람의 관계만은 아니라는 현실을 기가 막히게 풀어놓고 있다."
- 국어국문학회가 2004년 발행한 <국어국문학> 제137권에 실린 논문.
 
 <계룡선녀전>.

<계룡선녀전>. ⓒ tvN

  
이 설화는 선녀의 이해관계가 시어머니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장면까지 보여줌으로써 좀더 현실적인 스토리가 될 수 있었다. 김대숙 교수의 설명을 좀더 들어본다.
 
"하늘에 올라가 옥황상제의 막내 사위가 되어 살아도, 집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가 그립고 염려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남자들의 마음인 것이다. 어머니는 남자에게는 꿈에도 잊을 수 없는 존재이고, 시어머니는 기혼 여성에게는 인생의 가장 큰 난제다. 이 세상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의 철학자도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아내라는 이 삼각관계는 풀지 못하였다."
 
A 유형에서는 며느리가 자녀만 데리고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A 유형을 들은 옛날 사람들은 지상에 남게 된 남편의 처지를 소재로 상상력을 보탰다. 그래서 B 유형이 등장했을 것이다. 뒤이어, 남편이 어머니를 놔두고 아내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B 유형을 들은 옛날 사람들은 홀로 남은 시어머니의 처지를 소재로 상상력을 좀더 보탰다. 그래서 C 유형이 나왔을 것이다.
 
지난주 화요일까지 4회분이 방영된 <계룡선녀전>에는 시어머니가 등장하지 않았지만,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나마 시어머니를 출연시켜 선녀 선옥남(문채원·고두심 분)의 처지를 다각도로 헤아려 본다면,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조금은 더해질 수 있을 것이다.
 
C 유형을 들은 옛날 사람들 중에는, 고부 간에 있었을 수 있는 갈등을 음미해보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시어머니와 선녀 사이에 있었을 갈등 구조에 대한 상상력이 전신재 한림대 교수의 논문 '나무꾼과 선녀의 변이 양상'에서 이렇게 전개된다.
 
"나무꾼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다시 내려오는 목적은 단지 어머니를 만나보는 것이다. ······ 선녀는 나무꾼에게 시어머니를 모시고 하늘로 올라오라고 말하지도 않고, 지상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라고 말하지도 않으며, (하늘에서 타고 간) 말에서 내리지 말고 다시 하늘로 올라오라고 말한다."
- 강원대 강원문화연구소가 1999년 발행한 <강원문화연구> 제18집.
 
어머니를 모시고 오라는 말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머니 얼굴만 보고 얼른 돌아오라고 선녀가 말하는 대목. 이 설화에는 시어머니와 선녀가 표면상으로 다퉜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선녀의 태도를 보여주는 이 대목은 두 사람 간에 은근한 갈등이 있었음을 보여줄 만하다.
 
이 대목을 접한 옛날 시어머니들 중에는, 착할 선(善)으로 들릴 수도 있는 선녀(仙女)의 '선'을 다른 글자로 바꿔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을지 모른다. 자기도 자식 키우는 입장이면서 시어머니의 아들 사랑을 어쩌면 저렇게 몰라줄까 하고 생각했을 시어머니들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강원도 강릉시의 김시습 기념관에서 찍은 선녀.

강원도 강릉시의 김시습 기념관에서 찍은 선녀. ⓒ 김종성

   
며느리의 태도에 화난 시어머니들인지 아니면 반전의 묘를 노리는 이야기꾼들인지는 알 수 없지만, C 유형을 만들어낸 이들은 하늘에 올라갔던 나무꾼이 결국에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함께 산다는 쪽으로 결말을 맺었다.
 
물론 C 유형보다는 B 유형으로 끝나는 버전이 해방 이전에 더 많았다. B 유형을 지지하는 대중이 더 많았던 것이다. C 유형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시어머니들의 입장에 공감을 표시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 버전이라 할 수 있다.
 
C 유형에서 막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인물은 시어머니다. 그는 본의 아니게 아들을 지상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해 전신재 논문은 다음과 같이 해설한다. 아래 첫 문장의 '금기'는 '말에서 내리지 말고 얼굴만 보고 얼른 오라'는 선녀의 경고를 가리킨다. 이 금기를 어기면 다시 승천할 수 없게 돼 있었다.
 
"나무꾼도 이 금기를 지키려 한다. (지상으로 내려간) 나무꾼은 말 위에서 (어머니가 준) 박국을 먹는다. 나무꾼은 자기 의지로 말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말이 펄적 뛰어서 말에서 떨어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자기 의지로 나무꾼에게 박국을 주고 그 박국의 뜨거움 때문에, 즉 자신에 대한 어머니의 뜨거운 사랑 때문에 나무꾼은 말에서 떨어져서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다."
 
결국 C 유형은 나무꾼이 아내와 떨어져 어머니와 함께 사는 것으로 결말을 본다. 아들이 자기보다는 아내·아이들과 함께 사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어머니가 몰랐을 리 없다.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 살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 그의 몸을 움직였다. 말에 올라타 있는 아들한테 무의식적으로 뜨거운 음식을 먹여 아들이 낙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손익을 따질 사안은 아니지만, 굳이 따진다면 C 유형의 피해자는 어찌 보면 며느리이지만 또 어찌 보면 그렇지 않다. 그는 남편은 잃었지만, 자기 자식들은 잃지 않았다. 아이들은 여전히 선녀와 함께 산다. 전신재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나무꾼과 선녀의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으로 진행되는 이 설화는, 결국 하늘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있고, 땅에서도 어머니가 자식을 품고 있는 구도로 끝난다."
 
C 유형은 지상의 시어머니와 하늘의 며느리가 각각 자기 자식을 품는 것으로 끝난다. 지상에서건 천상에서건 모성이 이긴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결국 딱하게 된 것은 나무꾼뿐이다. 그는 아내를 결국 잃고 말았다. 자식들마저도 함께 잃었다. 결국 고부갈등의 최종적 피해자는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아닌 나무꾼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 낀 남자의 처지에 대해 옛날 사람들도 지금 사람들과 비슷한 인식을 갖고 있었던 모양이다. 고부갈등에 대해 옛날 사람들도 꽤나 깊이 생각했음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게 C 타입 설화다.
계룡선녀전 선녀와 나무꾼 나무꾼과 선녀 고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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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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