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영주> 포스터

영화 <영주>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주(김향기)는 삶이 힘겹다. 엄마와 아빠는 교통사고로 죽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매일 말썽인데다가 유일한 친척인 고모는 그녀와 동생을 가족이 아니라 짐짝 취급하며 가슴 아픈 말들을 내뱉는다.

이제 열아홉. 또래들이 학교와 학원을 다니며 대학 입시 준비에 열중할 시기에 영주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미 무거울 대로 무겁고 버거운 삶은 잔인하게도 그녀를 더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원망 않고 씩씩하게 살아오던 영주는 이제 한계에 다다른다.

무작정 부모를 차로 치어 죽인 가해자, 상문(유재명)을 찾아간 영주. 앙갚음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그녀는 자신만큼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가는 그와 그의 아내 향숙(김호정)을 보게 된다. 영주는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그들이 운영하는 두부가게에서 일하며 원망이 아닌 위로와 따뜻함을 느끼는데. 

참으로 오랜만에 진심어린 미소를 짓게 된 그녀는 과연 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그들과의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영화 <영주>의 한 장면

영화 <영주>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영화는 어느 곳 하나 기댈 데 없는 열아홉 소녀가 자신의 부모를 죽게 한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섬세하고 인내심 있게 그리고 있다. 영화는 영주가 향숙과 상문에게 느끼는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고 설득력 있게 묘사한다. 그렇지만 '과연 (부모를 죽게 한 사람을 좋아할 수) 그럴 수 있을까'의 어려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는 데 있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이야기를 몰고 가버린다. '그럴 수도'가 아닌 '그럴 수밖에'라는, 보다 쉬운 결론을 짓게 된다는 점은 아쉬움을 남긴다. 

'알고 보니 나쁜 사람들이 아니었어'가 아니라 누가 봐도 상문과 향숙은 좋은 사람들이다. 졸음운전으로 사람을 치었다는 죄책감에 상문은 몸이 상하도록 술을 마셔대고, 술에 취해서도 스스로를 탓하는 것 말고는 그 흔한 주사를 부리지도 않는다.

향숙은 그런 남편을 동정하고, 잘 알지도 못하는 영주에게 마치 친딸인 것처럼 무한한 애정과 믿음을 준다. 게다가 성실한 이들 부부에게는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는 아들이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도 이들은 원망이 아니라 늘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5년 동안 가장 노릇을 해온 열아홉 소녀가 이들에게 위로와 따뜻함을 느끼는 것이 (설사 부모를 죽인 사람들이라 해도) 의외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화 <영주>의 한 장면

영화 <영주>의 한 장면 ⓒ CGV 아트하우스

 
영주도, 상문과 향숙도, 모두 불쌍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뿐 그 아픔에 처절하게 공감할 수는 없다. 그들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 다루기 까다로운 플롯을 완성하기엔 너무도 얌전하고 안전하게 그려지고 있어서 관객의 감정 이입을 끌어들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클로즈 업과 롱 테이크가 유난히 많은 영화는 집요하게 영주를 따라다니며 그녀의 감정에 집중하지만 카메라와 호흡을 맞추기가 어려운 관객의 집중력은 배우들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연기에도 불구하고 산만해지기가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영주의 현실과 가슴 아픈 상문 부부의 현실이 진실을 감춘 채 서로를 위로하는 영화 <영주>가 보여주는 감정의 파동은 보통의 우리가 느끼는 연민과 만나 잔잔하게 오래도록, 그리고 멀리 퍼진다. 과연 이 위로는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뜻하지 않은 상황이 인생에 닥쳤을 때, 그 후에 다가오는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들에 대한 무거운 고민을 보여준 <영주>는 22일 개봉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영주 김향기 개봉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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