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성인이 된 이후 부모님, 그 중에서도 엄마와 '대화'를 해본 적이 있나요?

직장인 평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는 회수는 1년에 37통이라고 한다. 한 달 평균 3통이니 열흘에 한 통인 셈이다. 아니 회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통화를 해봐야 3분을 채우기가 버거운 게 현실이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른이 되고 나면 점점 더 부모님과의 대화가 어색해지는 상황이다.

12일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는 부모님, 그 중에서도 언제나 '엄마'란 자리에 머물렀던 그들을 '한 사람의 인생'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들여다보는' 주체는 다름 아닌 어느덧 '엄마'가 되어버린 자식이다.

시작은 엄마들의 팟캐스트 방송이다. 45개월, 36개월 고만고만한 아이를 둔 엄마들이 모여 새삼 깨닫게 된 '엄마'를 이야기하며 다큐의 물꼬를 튼다. 김주강씨는 자신이 아이의 생물학적인 엄마이긴 한데, '정말 엄마일까'라는 회의가 든다 말한다. 그도 그럴 것이 워킹맘인 그녀는 아이를 낳기만 했을 뿐 키우는 일은 전적으로 어머니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새삼 드는 생각이 '우리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다.

박경아씨 또한 다르지 않다.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반찬이 김과 미역국뿐이라는 그녀에게 '엄마'는 '불가능한 존재'처럼 보인다. 물론 그 반대도 있다. 박신애씨의 어머니는 다혈질이셨다. 박씨는 어렸을 적, '왜 우리 엄마는 맨날 화만 내나'라고 답답해 하며 자랐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시절 엄마는 아빠에게, 그리고 아이들을 키우며 받은 스트레스를 그렇게 푸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제 엄마가 된 엄마들은 입을 모은다. 이제 와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니, 지금 나 같았던 엄마는 어떻게 사셨을까? 물어본 적 없는 엄마의 삶이 새삼 궁금하고 애달프다.

마흔 아홉에 떠난 엄마가 개그맨 이홍렬에게 남긴 말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그래도 물어볼 수 있을 때가 좋다. 취미가 가족 촬영인 개그맨 이홍렬씨지만 정작 어머니 모습은 찍을 수 없다. 마흔 아홉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추억 속 카세트테이프로 그에게 남아있다.

혼자서는 도저히 못 듣는다는 테이프 속 어머니는 자신의 18번인 오기택의 '충청도 아줌마'를 부르신다. 그리고 돌아가실 즈음 남기신 말, "엄마가 죽어도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야 돼". 이제 어머니보다 훌쩍 더 나이를 먹은 아들은 닿지 않을 답을 한다.

"엄마 나 꿋꿋하게 살았지?"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딸들이 출동했다. 어느덧 엄마처럼 네 아이를 둔 워킹맘이 된 개그우먼 김지선씨는 평소 남편이 "정말 친엄마가 맞냐"고 할 정도로 무심한 엄마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엄마를 만나러 간다.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가난한 남편과 결혼하여 네 아이를 두고도 보험 설계사 일을 하느라 늘 바빴던 엄마. 그래서 김지선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자기 실내화를 빠는 건 물론, 소풍 때 김밥도 스스로 싸서 갔다. 그래서 혼자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가 털어놓은 그 시절은 엄마에게도 쉽지 않았다. 엄마는 "라면과 김밥과 설렁탕이 싫어질" 정도로, 무엇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허기만을 때우며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단다.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쁜 날들, 집에 돌아와 밥도 못 먹고 자는 막내의 모습이 마음이 아팠던 시절, 그렇게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는 자식들이 무얼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살아온 그 시절이 그저 안타깝다.

스물다섯 살에 홀로 된 어머니 슬하에서 "아버지가 안 계시니 다른 애들보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썼다. 독한 시집살이 아래서 가난한 집안 살림을 책임지느라 자식들을 보듬어 줄 수 없었던 것을 이제야 딸에게 전한다. 힘들게 살아왔던 날들이지만, 그래도 엄마는 "다시 태어나면 기꺼이 지선의 엄마가 되겠다"고 두말 않고 답한다.

칠순 넘어 한글 배우기에 푹 빠진 엄마

정아영씨의 어머님과 아버님이 하는 가게는 아영씨의 고등학교 시절 별명을 따서 만든 '아땡이네'다. 10년 전 분식집을 연 어머니는 이제 나이 쉰 살을 넘겨 중반에 다다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장원에 다니던 중, 착해보이던 스물아홉 살의 아빠를 만나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다.

정씨의 아버지는 앙금 빵에 우유를 앞에 두고 통장을 건네며 엄마에게 청혼했다. 그렇게 만난 신랑과 신부는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해 자신들이 하던 미용사 일과 그림 그리던 일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해가 쨍 한 여름에도 뜨거운 튀김 기름과 씨름하며 삶의 최전선에 서 있다. 분식집 주방의 엄마에게서 그 시절 예뻤던 '여자 사람'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버지는 엄마의 고운 손을 지키고 싶었다지만, 엄마의 손은 주방 일에 거칠어진 지 오래다.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스페셜 > '엄마와의 인터뷰' 한 장면 ⓒ MBC


최규자씨의 어머님 유한순씨는 살아가느라 무심해진 딸에게 "엄마는 잘 있다, 아무 일 없다"라며 먼저 전화를 한다. 그렇게 적극적인 어머니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신다. 알파벳도 배우셨다.

'다라이 공장 억순이', '농약 공장 똑순이'. 최씨의 엄마가 쓴 시에서 당신이 정의 내린 당신의 모습이다. 최씨 엄마는 학교 들어가던 해 전쟁이 나 한글을 배울 기회를 놓쳤고, 결혼 전에는 오빠와 동생들 뒷바라지에, 결혼하고서는 굳이 글을 안 배워도 철 따라 씨 뿌리고 거두는 농사일을 하느라 배울 기회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틈만 나면 책상으로 달려가 숙제도 하고, 일기도 쓴다. 딸은 그런 어머니의 학구열이 새삼스럽고 경이롭다. '저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분이셨나' 싶다.

그렇게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머니가 글을 몰라 제일 서러웠던 적은 대학에 입학한 아들에게 등록금을 부치러 우체국에 갔는데 창구에 적힌 글을 몰라 이리저리 헤맸던 때다. 하지만 정작 어머니에게 가장 아픈 상처는 자신보다 먼저 둘째 딸을 떠나보낸 일이다. 끓어오르는 슬픔을 동물의 울부짖음처럼 토해내던 어머니는 그 딸이 다니던 교회의 성경을 며칠 만에 필사를 해내며 그리움을 달래셨다. 그럼에도 "딸이 하나 밖에 없어 서운치 않냐"는 큰 딸의 말에 어머니는 행여나 딸이 서운할까 "생각해 봤자 내 마음만 아프다"며 다독이신다.

"다시 태어나면 내가 엄마가 돼 엄마를 돌봐줄게"

다큐는 이제는 엄마를 한 여자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제는 엄마가 된 딸의 시선으로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고자 한다. 평범했지만 엄마로 살아냈기에 찬란했던 그 삶을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반추한다. 태어나기는 한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며 '여자', 그리고 '엄마'가 되었던 분. 이제야 딸은 말한다.

"엄마만큼만 했으면 좋겠어. 다시 태어나면 내 엄마가 아니라, 내가 엄마가 되어 엄마를 돌봐줄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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