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1.13 10:59최종 업데이트 18.11.13 11:59
날카로운 통찰과 통통 튀는 생동감으로 가득차 있는 2030 칼럼 '해시태그 #청년'이 매주 화요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곰팡이가 아닌, 한 사람의 이야기 : 한동대학교 학생 부당징계 사건의 피해자 지민

지난 1년간 지민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네, 자료 보내드리겠습니다"였다. 각종 언론사로부터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사건 관련 자료를 요청받고, 인터뷰하고, 기자회견장에 나가고, 성명서 내고, 1인 시위를 하느라 지민의 노트북에는 '한동대 사건 폴더'가 차곡차곡 쌓였다.


같은 작업을 되풀이하면서 지민에게는 몇 가지 기술이 생겼다. 기자들이 요청한 자료 골라 보내기, 악플에 의연하려고 노력하기, 글과 말로 자신을 해명하기. 서울과 포항을 오가면서 학교 측과 싸우는 1년 사이 지민에게는 여러 수식어가 붙었다.

"한동대 학생징계 사건 피해자, 난교하는 문란한 영, 기독교 대학을 무너뜨리려는 악의 세력, 빵에 핀 곰팡이."

2017년 겨울, 한동대에서 페미니즘 강연이 열렸다. 학교 측은 페미니즘이 동성애를 옹호한다며 강연을 제지했고, 강연 이후 어떻게든 관련 학생들을 징계하려고 이유를 찾았다. SNS에 강연 후기를 남겼다는 이유로 징계 대상에 포함된 학생도 있었다. 그만큼 무분별하게 이뤄진 표적 수사였다.

그중 강연을 주최한 지민이 폴리아모리(비독점 다자연애)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이 그들의 레이더에 걸렸고, 2018년 2월 28일 지민은 졸업을 1년 앞두고 무기정학을 통보받았다. 한동대 총장은 지민을 '본보기'로 잘랐다고 말했다. 더는 페미니즘 이슈가 학내에서 퍼지지 않도록, 다른 방식의 존재(성소수자)와 관계가 드러나지 않도록.
 

2017년 5월, 한동대에서 '동성애 바로 알기' 특강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동성애 혐오 문화 확산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강의실 앞에서 복도에서 피켓을 들었다. ⓒ 정광준


'한동대 학생 부당징계 사건'이 사회적으로 알려지자 한동대를 비롯한 보수 기독교는 '영적 전쟁'이라며 지민의 성적 지향을 비난하고 나섰다. 지민의 실명을 언급하며 전국 교회에 기도문을 가장한 비난 메시지를 돌렸고, 유튜브와 블로그를 통해 가짜뉴스를 유포했다. 인터넷에 이름만 검색해도 지민의 삶이 1년 전 그날에서 멈춘 것 같은 수식어가 가득하다. 마치 지민은 원래 폴리아모리였던 것처럼, 지민은 원래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비난을 듣거나 버틸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자리 지어졌다.

대학 졸업장은 필요 없다고 여기면서 지민은 무기정학을 별일 아니게 여기려고 노력했지만, 사회에서 무기정학은 별일이었다. 대학에서 쫓겨난 지민은 학자금 대출 2800만 원과 일상을 지탱하기 위해 한 보습학원에서 수학 강사를 하고 있다. 지민은 학원 원장에게 어떻게 자신을 설명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대학원 준비 중이라고 둘러댔고, 4년제 졸업생이 아닌 지민은 자격 미달로 기존 강사료보다 적은 금액을 받았다.

그마저도 4대 보험이 적용되고 조건 좋은 학원은 '재학 증명서'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민에게는 지금의 조건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지민이 가장 두려운 건 학생들이 "선생님 이름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라고 했다. 혹시라도 학생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고 검색해서 지민에 대한 온갖 왜곡된 정보를 보게 될까 봐, 일자리를 잃을까 봐 두렵다고 했다.

한동대 사건이 있기 전에도 지민은 수학 강사였다. 한동대에 다니던 4년 동안 학원에서 꾸준히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때 지민은 경력에 맞춰 임금 협상도 꼬박꼬박 요구할 만큼 당당했다. 지민은 그때와 지금의 차이를 '내 이름 하나 검색하면 언제든 사회에서 지워질 수 있는 아슬아슬한 존재가 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성소수자를 공간에서 쫓아내는 기독교의 집단적인 공세는 단지 학교에서만의 삭제가 아니라 사회에서의 삭제와 같았다.

"그러게 왜 기독교 사립학교에 들어갔냐?" 지민에게 가장 많이 쏟아진 비난은 단지 지민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장신대에서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는 의미로 무지개 퍼포먼스를 한 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고, 호신대는 동성애자 입학을 제한한다고 공표했다.

장애인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성적 지향'을 이유로 발생한 차별을 구제하는 법은 없다. 지금도 한동대를 비롯한 사회 곳곳에서 쫓겨나고, 자리를 잃고 투쟁하는 지민'들'이 존재한다.

드러내는 순간, 당신은 추방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무기정학 되기 6개월 전, 지민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학교 인트라넷에 이름이 올라갔다. tvN에서 방영한 <대학토론배틀7>의 우승자가 된 직후였다. 학교는 토론대회 우승을 알리며 지민을 '자랑스러운 한동인'으로 광고했고, 몇몇 학생들은 "우리 학교, 이 사람한테 상 줘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지민의 존재를 학교의 자랑으로 여겼다. 그때 지민은 한동대의 인재였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그때도 지민이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를 탄압하며 하는 말, "퀴어 축제 하지 말고 너네끼리 조용히 해. 티 내지 마." 이 말은 언제든 티를 내는 순간, 너를 추방할 수 있다는 의미와 같다.

학교를 상대로 한 지민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편안한 학교 교수실에 앉아, 교실과 교회의 강단에서 아무런 자리이탈 없이 가짜뉴스를 유포하며 공포를 조장하지만, 지민은 공간에서 쫓겨나 새로운 터전에 발붙이지 못하고 싸우고 있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 독재를 조장한다고? 차별금지법은 지민과 같이 단지 무엇이라는 이유로 쫓겨나고 일상을 위협받는 모든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주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반대할 자유를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가 차별받는다'라고 말하기 전에 적어도 지금 당신들이 서 있는 위치를 보고 말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자신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아는 주제 파악이 먼저다.

지민은 중학생 때 비보잉을 했다. 처음 지역의 한 행사에서 돈을 받고 공연을 했을 때, 지민과 친구들은 3만 원의 공연료를 받았다. 그 돈으로 지민과 친구들은 뜨끈한 국수를 사 먹었다. 그 국수의 맛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지민은 노래와 춤을 즐기고, 자신이 모르는 세계를 배우는 과정을 사랑한다. 사건이 있기 전, 지민이 자주 했던 말은 "밥 먹을까?"였다. 요리를 좋아하는 지민은 레시피를 보면서 채식 음식을 만드는 걸 즐겼다.

지민은 '악의 세력'이나 '곰팡이'가 아니라 자기의 이유로 살아가는 구체적인 한 사람이다. 한동대 측은 이를 '영적 전쟁'이라고 하지만, 틀렸다. 이건 소수자를 지우려는 기득권의 일방적인 폭력이고, 그에 대항하는 한 사람의 생존 투쟁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