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텍스트(Text)에는 맥락(Context)이 있습니다.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100% 정치적인 예술이 존재할 수 없듯이, 100% 순수한 예술도 없습니다. 문화 공연을 때로는 인문학적으로, 때로는 사회과학적으로 읽어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태클도 걸어보고, 재미있으면 '우쭈쭈' 칭찬도 합니다. 공연을 철학적으로 혹은 정치·사회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항상 성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시도가 비록 재미(Fun)는 없더라도, 최소한 '뻔'한 리뷰는 쓰지 않으려 합니다.[편집자말]

*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 뛰어난 완성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21회 공연을 위해 배우들은 6개월 간 연습을 해야 했다. 2분 만에 전석 매진된 <베르나르다 알바>는 그 6개월의 땀이 헛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증명했다. ⓒ 우란문화재단


희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을 뮤지컬로 만든 <베르나르다 알바>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한 마을에서 어느 가족이 겪는 일을 묘사한 작품이다. 베르나르다 알바와 그의 다섯 딸들, 치매에 걸린 베르나르다 알바의 어머니, 그 집의 하녀들이 주요 등장 인물들이다. 남편 안토니오가 죽고 시작된 8년상, 자신의 집에서 군림하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강력한 규칙으로 딸들을 통제하고, 딸들은 각자의 욕망을 적당히 표출하고 적당히 숨기며 서로를 파국으로 몰고 간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에서 벗어난 무대는 관객이 앉은 면마다 다른 경험을 하게끔 구성되어 있다. 열정적인 음악은 붉은색 조명과 어우러져 관객을 충분히 1930년대 초 스페인으로 인도한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근 몇 년 동안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는 여성배우, 여성인물, 여성서사에 관한 담론의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등장인물은 대부분 여성이며, 남성 단역이 필요할 땐 중절모를 쓴 배우가 대신한다. 단 한 명의 남배우도 나오지 않는 이 작품은, 여성에게 여성의 이야기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대단히 크다.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특별한 묘사나 연결 없이도, 그저 목소리를 낼 기회를 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여성의 주체성과 여성을 향한 폭력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 매혹적인 플라멩코 10명의 배우가 등장해 플라멩코 안무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 <베르나르다 알바>가 관객에게 주는 즐거움 중 하나가 바로 이 플라멩코이다. 프롤로그 시퀀스부터 이미 압도적이다. ⓒ 우란문화재단

 
하지만 대본의 힘, 메시지가 품는 함의 등을 제쳐두고라도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는 경배해 마땅한 작품이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매혹적인 포인트는 셀 수 없이 많지만, 이영미 배우가 "옛날옛적 스페인"하면서 노래를 시작하는 프롤로그에서부터 이미 게임은 끝났다. 열 명의 여배우가 그냥 아무말없이 귤만 까먹어도 재미있을 텐데, 심지어 무대 위에 등장해 손가락을 튕기고, 발을 구르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정영주, 정인지, 백은혜, 김환희, 전성민, 오소연, 황석정, 이영미, 김국희, 김히어라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하게 배우로서의 길을 걸어온 이들이다. 그러나 <베르나르다 알바>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들이 뛰어난 배우인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배우들이었는지 새삼 깨닫기 때문이다. 이 배우가 이런 정극 연기를 할 수 있었는지, 이 배우가 저음을 이렇게 잘 썼는지, 이 배우의 몸을 쓰는 연기가 이런 수준이었는지….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을 터뜨려버릴 정도로 끼와 매력을 분출하는 배우들에게 대체 어떤 관형사가 찬사로서 어울린단 말인가. 입을 벌린 채 경탄하다가 중간에 일어서서 박수치고픈 내적 욕망을 자제할 뿐이다. 전회차 전석 매진, 커튼콜에서 쏟아지는 기립박수, 관객과 평단의 찬사는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지금껏 휴화산처럼 잠자고 있던 배우들의 재능이 <베르나르다 알바>라는 작품을 만나 활화산처럼 폭발한다.
 
지금까지 이들에게 부족했던 건 그저 기회였을 뿐임을 재차 알게 된다. 그들이 소화할 서사가, 표현해낼 캐릭터가, 배우로서의 재능을 발산할 무대가 부족했던 것일 뿐임을. 대한민국 공연계에 이렇게 위대한 배우들이 많았음을.
 
욕망을 억압하는 폭군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 '폭군' 베르나르다 알바 이 집의 주인인 베르나르다 알바는 가부장적인 캐릭터이다. 딸들이 집 밖의 남자와 말을 함부로 섞는 것도 금기시하고, 집 안에서 말대꾸를 하는 것도 용납치 않는다. 오랫동안 이 집을 위해 헌신한 하녀 폰시아(이정미)에게도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베르나르다 알바의 가부장적 성격은, 가부장적인 제도, 종교, 사회, 문화가 그렇게 학습시키고 길들인 결과이다. ⓒ 우란문화재단


'폭군'으로 불리는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신의 집에서 가부장적 권력을 휘두르는 가해자이다. 그는 자신의 딸들을 집 안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고, 상복인 검은 옷만 입게 한다. 넷째 딸 마르티리오에게 청혼하려고 했던 남자를 '집안의 수준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막내 아델라가 외부의 남자 페페에게 품은 감정을 알고 있지만, 장녀 앙구스티아스를 페페와 결혼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베르나르다 알바가 권력을 쥘 수 있는 건, 죽은 그의 남편 안토니오가 갖고 있던 권력을 계승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에게 딸이 아니라 아들이 있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또한 그가 권력을 행사하는 건 어디까지나 '8년상'이라는 가부장적 관습 아래에서만 가능하다. 여성을 억압하는 데만 쓰이고, 해방하는 데 쓸 수 없는 권력. 문의 안쪽으로만 작용하고 바깥으로는 뻗어나갈 수 없는 이 권력은 실상 베르나르다 알바의 권력이 아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가부장제의 대리인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베르나르다 알바 역시 가부장제의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다. 안토니아가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앙구스티아스를, 혈연관계 아닌 하녀들을 겁탈할 때 베르나르다 알바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자신의 집 문을 지키는 문지기일 뿐이다. 가부장제라는 주인의 허락 없이는 그 문을 열 수 없는 문지기.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 미쳐버린 마리아 호세파 베르나르다 알바의 친모인 마리아 호세파는, 베르나르다 알바가 통제할 수 없는 유일한 인물이다. 치매에 걸려 미쳐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아 호세파는 직관적으로 이 집의 문제, 베르나르다 알바의 문제를 이해하고 있다. 결혼을 하겠다는 마리아 호세파의 욕망을 베르나르다 알바의 딸들이 비웃지만, 마리아 호세파의 욕망은 근원적으로 딸들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 우란문화재단

 
그러나 폭력의 근간이 무엇이든, 그 폭력을 휘두르는 주체가 베르나르다 알바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원망은 그에게 쏠린다. 이 억압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모친인 마리아 호세파처럼 미치면 된다. 모두가 검은 옷을 입은 공간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흰 옷을 입고 있다. 비록 그의 육체는 집 안에 갇혀있지만, 정신만은 베르나르다 알바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다.
 
혹은 앙구스티아스가 원한 것처럼 결혼해서 떠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곧 다른 가부장적 질서에 편입되는 것이다. 한 감옥에서 탈출해 다른 감옥으로 가는 것뿐. 남자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여자는 뭘 해도 죄가 되는 세상에 선택지는 이것뿐이다. 아버지 없는 아이를 몰래 버리고 죽이려 했던 여자에게 이 마을 사람들은 돌을 던지지만, 그 아이를 잉태시키고 버린 남자에게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았던 것처럼.

그러나 아무리 검은 옷으로 덮으려고 해도, 이들의 치마속자락에 숨겨진 붉은 욕망마저 가릴 수는 없다. 이 욕망은 성적인 쾌락임과 동시에 자유를 향한 갈망이기도 하다. 몸을 향한 억압과 영혼을 향한 억압 모두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은 본능이다. 어떤 체계나 구조로도 완전히 불식시킬 수 없다.
 
앙구스티아스는 페페와의 결혼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낮잠만 자는 막달레나는 언니의 행복을 빌어주면서도, 시기와 체념을 동시에 간직한 복합적인 캐릭터이다. 부끄러움 많은 아멜리아는 순박하지만, 부끄럽다고 하면서도 성과 육체에 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장애를 지닌 마르티리오는 사랑받지 못하는 것에 좌절하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페페를 사모하며,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걸 가지려 하는 아델라를 질투한다.
 
그리고 막내 아델라. 가장 어리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반항적인 영혼. 베르나르다 알바가 이 질서정연한 억압을 유지하기 위해 총을 꺼내 들고, 페페가 죽은 것처럼 이야기해도 아델라의 욕망을 완전히 좌절시킬 수 없었다. 아델라는 다시 이 질서에 편입되느니, 영원히 반기를 드는 또 하나의 방법을 택한다. 죽음. 페페를 기다리며 육체적 욕망을 갈망했던 아델라는 검은 옷을 벗어 던져버리고 흰 옷차림인 채로 죽었다.
 
균열은 시작됐다
 

베르나르다 알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0월 24일 개막해 11월 12일까지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신사옥에서 공연된다. 배우 정영주, 황석정, 이영미, 정인지, 김국희, 오소연, 백은혜, 전성민, 김히어라, 김환희 등이 출연한다.

▲ 널 위한 노래, 내가 만든 노래 페페가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만들어 불러준 노래를 베르나르다 알바의 딸들은 모두 알고 있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노래이지만, 이 노래가 한 사람만을 위해 불린 것이 아님을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노래를 부른 자와 듣는 자 모두를 조롱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노래가 찬양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를 바라는 욕망도 뒤섞여 있다. ⓒ 우란문화재단

 
우리가 사는 무대 밖 세상은 강고한 압제와 무수한 억압이 반복되는 세계이다. 성폭력의 가해자였던 어떤 배우는 저예산 독립영화 쪽으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몰래 핸드폰으로 불법 동영상을 촬영한 배우는 올해도 연극 무대에 올랐다. 여전히 법정에서 '상호합의'에 의했던 것이라며 성폭력을 부정하는 권력자도 있다. 미투운동으로 촉발된 흐름은 이 세계를 다 부술 것처럼 진동했지만, 오랫동안 남성들이 구축해온 지배구조는 강고했다. 우리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백래시(Backlash)를, 반동을, 퇴보를 목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서는 안 된다. 되돌아갈 수도 없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가족들이 아델라의 죽음을 목격하는 순간, 무대의 배경으로 서 있던 거대한 벽이 열린다.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던 문이 열린다. 절규하는 가족들에게, 베르나르다 알바는 침묵을 강요한다. 그러나 이미 한 번 열린 문은, 다시 닫히더라도, 결국에는 열릴 수밖에 없다. 한 번 시작된 균열은 끝내 그 벽을 부수고야 만다. 욕망의 바다로, 해방의 바다로 물결은 흐른다.
 
베르나르다 알바가 마지막 순간까지 그 통제의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건, 역설적으로 이 통제가 영원할 수 없음을 베르나르다 알바 스스로가 제일 절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억압의 반복을 예고하는 게 아니라 억압의 종말을 예고하는 조종이다. 저항의 목소리를 덮치는 이 헤게모니가 너무 거대하고 무섭지만, 검은 옷으로 가릴 수 없던 붉은 욕망처럼, 죽음을 통해 절대 꺾이지 않을 반기를 든 아델라처럼, 이 시작된 흐름 전체는 아무도 거스를 수 없다. 우리는 인간이고, 이건 본능이니까.
 
그렇기에, 대한민국 공연계는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다. <베르나르다 알바>는 땜질 정도로는 메꿀 수 없는 균열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공연이 이미 터닝 포인트를 지나,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선언하는 출사표이다. 이제 대한민국 뮤지컬의 역사는 <베르나르다 알바> 이후로 새롭게 쓰여야 할 것이다. 아니, 쓰일 것이다.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포스터

▲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 포스터 지난 10월 24일 개막한 뮤지컬 <베르나르다 알바>가 12일 회차를 끝으로 약 3주간의 공연을 마무리한다.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작품을 그리고 이 작품을 소화한 배우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해 마땅하다. ⓒ 우란문화재단

베르나르다 알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