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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장석주 작가와 만나다 ①] 책 100권을 내고도 또... 그를 쓰게 만드는 힘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파주 집의 거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장서
▲ 장석주 시인의 서재 작가가 거주하고 있는 파주 집의 거실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장서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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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0년도에 서울을 등졌다. 한적하고 고요한 경기도 안성으로 내려가 터를 잡은 뒤 '수졸재(守拙齋)'라고 이름 붙인 집에서 글쓰기에 매진해왔다. 수졸(守拙)은 바둑의 9품계 중 초단을 이르는 말이다. 겸양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가 택한 이름이다. 

그곳에도 3만여 권의 장서를 소유하고 있지만, 현재 거주하고 있는 파주의 집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거의 뭐 꽂아두고 쌓아두는 수준이지, 따로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어요. 책을 쓰는 일을 하다 보면 참고하기 위해 읽을 책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책을 버리지는 못하는 겁니다."  
     
실제로 보면 책이 책장에 '꽂혀있는' 수준이 아니다. 크기와 두께가 제각각인 책들이 만들어낸 틈에 또 다른 책들이 비집고 들어가 있다. 책으로 둥지를 튼 모양새다. 책으로 가득한 서재를 들여다보며 '작금의 독자들이 어떻게 책을 골라 읽는 것이 좋을지' 물었다.

"처음에는 자기 지적 수준에 맞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책을 우선 읽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소화할 수 있는 능력 너머의 책은 재미를 붙이기가 힘들거든요. 그리고 신간 정보를 눈여겨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신문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소개하는 신간들을 찾아보면서 관심 가는 책 제목을 적어두었다가 사서 읽으면 좋겠죠."
 
장서들로 빼곡한 장석주 시인의 서재
▲ 시인의 서재  장서들로 빼곡한 장석주 시인의 서재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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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책의 세계를 탐험해온 만큼 책의 장르에 따라 읽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스토리를 따라가야 하는 서사 장르, 소설 같은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건너뛰고 읽을 수 없죠.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읽어야 하죠. 그렇지만, 인문과학 책은 그럴 필요 없어요. 스스로가 다 아는 분야는 반복해 읽을 필요가 없죠. 익숙하지 않은 분야나 원하는 부분만 발췌해 읽는 거죠. 모든 책들은 앞선 저자의 지식을 공유하고 있거든요. 책과 책 사이에 지식과 지식이 겹쳐있고, 교집합된 부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에요."

SNS로 쉽게 자기 생각을 글로 펼칠 수 있는 시대다. 독립출판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그만큼 글쓰기를 향한 관심 또한 달아오르는 추세다. 읽는 것만큼 쓰는 것이 중요해진 지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모든 글쓰기는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문장을 제대로 쓸려면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가 있어야 해요. 사물과 세계를 새롭게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나 아이디어가 있어야죠. 그러려면 많이 배워야 해요. 좋은 작가와 책들을 많이 접하면서 자기 생각의 부피를 키워야 하고, 그리고 정확하게 문장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학습해야 하고요. 글을 잘 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아요. 좋은 책을 읽으면서 좋은 문장을 써내려가는 수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시적 감수성으로 느끼는 삶의 소소한 행복

시인으로 등단해 <햇빛사냥>, <몽해항로>, <스무 살은 처음입니다>, <오랫동안>, <절벽> 등의 시집을 펴낸 그는 시가 죽었다고 말하는 시대에서 시를 꾸준히 예찬해왔다.

"시는 언어로 표현하는 문학 양식 중에서 가히 정수라고 할 수 있죠. 사물과 세계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시는 시인의 직관과 상상력을 응축해서 보여주거든요. 그래서 인간이 가진 생각의 핵심과 본질을 감각적이고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 가장 훌륭한 표현수단이 시라고 생각해요.

사실 실용성 면에서 본다면, 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서에 시가 실리고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건 시가 인간정신을 훈련시키고 고양시키는 위대한 문학 장르이기 때문이죠."

 
평소 장석주 시인이 집필에 몰두하는 방
 평소 장석주 시인이 집필에 몰두하는 방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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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시가 낯설더라도 친밀해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시를 읽지 않는 이유는 시가 어려워서예요. 현대시로 올수록 시가 더 난해해져서 독자가 도저히 따라갈 수 있는 괴리가 생기죠. 시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좋은 시집을 찾아 읽어야 해요. 할 수 있으면 필사도 해보고, 소리 내서 읽어보기도 하면서 시와 친밀해지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 이론을 공부하지는 않잖아요. 오래 듣다 보면 그게 귀에 익숙해지고, 어떤 점이 자신의 마음을 울리는지 알게 되죠. 시도 마찬가지예요. 무언가 알 수 없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시가 주는 음악성이나 리듬이 우리 잠든 영혼의 어떤 부분을 건드리고 깨운다는 것을 느끼게 되죠.

시가 어렵다고 자꾸 멀리하게 되면, 시와는 영영 멀어질 수밖에 없어요. 시를 생활 속에서 향유하다보면 때로 우리에게 위안과 힘, 용기를 준다는 사실을 알게 돼요. 시를 한 번 좋아한 사람은 결코 시에서 멀어질 수 없게 되죠. 시는 우리 메마른 영혼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축복인데, 그걸 모르고 산다는 것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에요."

      
그는 시,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글과 함께 해오면서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왔기에 소박한 것이 주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쓰고 있던 책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을 때나, 낯선 여행지에서 느끼는 묘한 느낌이라든가. 덧없이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볼 때 느끼는 것이 행복 같아요."

소소한 일상에 감동한다는 그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둔 화두 역시 '행복'과 '죽음'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혹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해질 수 있나'를 생각해요. 죽음의 실존적 의미도 진중하게 돌아보고 있죠. 요즘 그런 주제의 책들을 집필하고 있어요."
 
 작가가 아끼는 애장품 조각상과 함께
  작가가 아끼는 애장품 조각상과 함께
ⓒ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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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동덕여대, 명지전문대, 경희사이버대학교 강의뿐만 아니라 각종 도서관·사회문화센터에서 30여 년간 강연을 이어왔다. 그만큼 그가 배출한 작가와 시인도 많다. 작가로서의 삶에 집중하기 위해 대학 강의는 내려놓았지만, 특별 강연 등을 통해 작가 지망생이나 팬들을 만나고 있다.

수첩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일정들이 그의 바쁜 일상을 짐작케 하는 장석주 작가. 그럼에도 그는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필생의 책'을 쓰고 싶다는 바람으로 여전히 매일 읽고 쓴다. 수많은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고쳐 쓰면서 이룩해낸 노동의 흔적은 그렇게 그의 책과 서재 곳곳에 새겨지고 있다. 또한 수많은 독자들의 지적 감수성을 채워주는 밀알로 남을 것이다.

태그:#시인의 서재, #장석주 시인, #장석주 작가, #종로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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