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설> 프로모션 스틸 컷.

<청설> 프로모션 스틸 컷. ⓒ 오드

   로맨스물은 장르의 '관습'이나 '상투성'을 피해가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연출하기 까다로운 장르다. 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연출해도 예전에 어디선가 본 듯한 설정 혹은 장면이라는 느낌을 주기 쉽다. 오는 8일 재개봉하는 <청설>(聽說, Hear Me, 2009)도 '청각장애'와 '수화'라는 소재를 활용해 신선함을 추구하려고 시도했지만 몇몇 장면에선 기존 영화의 클리셰를 답습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개봉을 통해 관객에게 선보인 영화는 아니지만, 지난 2010년 <청설>이 국내 개봉한 시기에 수화와 청각장애인의 사랑을 소재로 한 국내 독립 장편영화 <오디션> 같은 작품이 있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티엔커(펑위옌)의 부모가 여주인공 양양(천이한)에게 자기 아들과 결혼해 달라고 청하며 스케치북을 넘기는 장면은 <러브 액츄얼리>에서 가져왔다. 또 첫사랑 로맨스의 계보에 속하는 작품들이 대만 영화에 여러 편이 있는데, 작품마다 남녀 주인공의 풋풋한 외양, 옛 기억을 소환시키는 힘, 로맨스물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비밀과 어긋남, 반전, 전환점 등의 배치가 대만 영화 특유의 개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바라보거나 소통하는 투 샷(two shot) 장면이 유난히 많다.

이 영화는 남녀 주인공이 서로 바라보거나 소통하는 투 샷(two shot) 장면이 유난히 많다. ⓒ 오드

 
그럼에도 <청설>은 나름대로의 개성과 극을 이끌어가는 재미를 가진 아기자기하고 예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지만, 메신저와 문자를 통해 서로 소통하는 남녀의 모습이 2009년 자국 개봉 당시엔 나름의 신선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어린 연인들은 '말'이라는 불완전한 소통 방식 대신 좀 더 명확해 보이는 수화와 텍스트 형태의 소통을 택한다.
 
또 로맨스 영화에선 젊은 연인을 갈라놓는 '장애물'이 필수 요소인데, 이 장애물은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로 지난 400년간 주로 '부모의 반대'였다. 한데 이 영화에선 여주인공의 언니가 두 사람 사이의 장애물로 등장하고, 언니와 동생의 자매애와 장애인의 자립 문제가 서브 플롯(sub plot)으로 차용됐다. 양양과 티엔커의 연애 이야기를 그린 메인 플롯과 양양-샤오펀(천옌시) 자매의 서브플롯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더욱 풍성하게 이야기를 엮어간다. 여기에 수화와 관련, 로맨스 장르에선 보기 드문 귀여운 반전이 준비돼 있다. 
 
 양양과 샤오펀은 자매애가 남다른 자매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양양과 샤오펀은 자매애가 남다른 자매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이좋게 지낸다. ⓒ 오드

 
티엔커와 양양의 그늘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밝고 씩씩한 모습이 보는 이를 사로잡는다. 첫사랑의 전형성을 갖춘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티엔커는 양양에게 가져다주기 위해 손수 요리를 하고 메신저에 그녀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는 사랑을 해본 적이 없고 따라서 상처받아 본 일이 없기 때문에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적극적이다. 양양은 청각 장애를 가진 언니의 올림픽 출전과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자신의 장래와 동일시한다. 해외 선교를 간 아버지 대신 가장 노릇을 하고 아르바이트로 늘 바쁘지만 밝고 긍정적이다.
 
남성 감독이 만든 로맨스는 여성 관객이 보기에 공감할 수 없거나 불편한 부분도 간혹 발견되지만 여성 감독인 청펀펀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청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한 연출로 여성의 시각과 감성이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톡톡 튀게 드러나 여성 관객들이 공감하고 동의하면서 편안히 볼 수 있을 작품이다. 그의 각본과 연출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며 배우들의 연기를 제대로 이끌어낸다. 또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영민하게 적재적소에 배치했다는 인상을 준다.
 
<청설>은 내러티브상의 주요 장면들이 대부분 두 주인공의 수화 장면으로 채워져 있는데, 영화 사운드에 있어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사(dialogue)'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해당 장면들로 인해 자칫 관객들에게 생소함과 지루함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낯선 빈틈을 독창적인 앰비언스(ambience, 각 신의 시공간을 설명해 주는 주변음) 디자인으로 잘 보완하고 있다. 두 사람이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을 때는 도시 소음이, 양양의 집에서는 멀리서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소리가 대사 부재의 빈틈을 잘 메워준다. 어쩔 수 없는 내러티브상의 아쉬운 점을 사운드 디자인이 효과적으로 메워준 좋은 예다. 
 
 티엔커와 양양이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티엔커와 양양이 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 오드

 
로맨스는 상투성을 피해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공포 장르와 더불어 가장 연출하기 까다로운 장르일 수 있지만 <청설>은 여러 면에서 기존 청춘 로맨스물의 장점을 잘 취하면서 다양한 모티브와 디테일을 잘 섞어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를 완성했다. 첫사랑의 추억 소환에 잘 어울리는 풋풋한 배우들의 외모와 순수함이 스크린으로부터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몰입 요소로 작용하는 것도 본 영화의 장점이다. 
청설 대만 재개봉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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