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통산 5번째 음반이자 메이저 데뷔 3번째 정규 음반인 <Trench>의 커버

밴드 통산 5번째 음반이자 메이저 데뷔 3번째 정규 음반인 의 커버 ⓒ 워너뮤직

 
밴드 사상 역대 최고 자작물이란 찬사가 곳곳에서 등장한다. 지난 정규 2집 < Blurryface >의 수록곡이자 싱글 커트 된 'Stressed out'이 가져다준 대중적 관심과 이후 영화 < 수어사이드 스쿼드 >의 엔딩 크레디트에 삽입된 'Heathens'의 싱글차트 2위란 괄목할 만한 성과는 이들의 입지를 완전한 주류로 정착시킨다. 그리고 3년 만에 발매된 3번째 정규음반 < Trench >는 이들의 성장기가 거품이 아니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더 무겁고 짙어졌으며 곡의 진행은 더 굴곡져졌다. 9명의 주교가 통치하는 데마라는 가상공간에서 우울증에 빠져 고통 받는 인물 클랜시와 그를 구출하려는 투쟁집단 반디토스를 중심으로 꾸려낸 콘셉트 음반은 때로는 신스팝으로, 때로는 힙합으로 또 때로는 트립합의 향취로 나아가 이것들을 모두 버무려 한 편의 대서사시를 완성시킨다. 만족스러운 지점은 이러한 배합들이 전혀 흩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며 곡 단위 매력이 정확한 삼박자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 있다. 점프슈트를 입으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설정을 알맞게 녹인 가사와, 정신분열 팝이라 스스로 명명한 사운드만큼 여러 장르를 담아낸 구성, 힘을 잃지 않는 멜로디 라인까지, 완성도 있게 각 지점을 지키는 구심력 덕에 음반은 지루할 틈이 없다.
 

앨범의 첫 곡 'Jumpsuit'의 뮤직비디오. 전체 음반의 콘셉트와 설정들을 간단하게 맛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곡이 물 흐르듯 유려한 진행보다는 변주와 비선형적인 곡조로 이루어짐으로써 실험적인 자세를 취하고 매혹적으로 청각을 노린다. 첫 곡 'Jumpsuit'는 요란한 사이렌 소음과 강렬하고 굵은 저음, 보컬의 샤우팅으로 암울한 데마 월드의 포문을 열고 앞 곡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Levitate'는 마이너 음계로 블랙홀처럼 청중을 끌어당긴다. 'The Hype'의 우쿨렐레와 중독적인 베이스라인, 'Neon gravestones'의 음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에 대조되는 피아노, 'Chlorine'과 'Nico and the niners'의 몽롱한 기조와 백 플레이, 속사포 랩까지 단 한 계단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연이어 힘을 주고 내지르다 'My blood'에서는 완전히 힘을 푸는 짜릿한 완급조절이 돋보인다. 앞선 곡들을 통해 데마 세계의 고난을 전달했다면 이 노래에서는 '내가 널 지켜줄게, 내가 너와 함께 있어 줄게'라는 성숙한 위로를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음반은 전작과 같은 정신적 아픔의 상황을 데마라는 가상공간으로 확대해 설정한 뒤 복잡하지만, 체계적인 사운드 배합과 기승전결의 매끈한 완급 조절로 앨범 자체의 집중도를 높여 본인들의 서사에 힘을 싣는다. < Blurryface >와 비슷한 주제를 노래하지만, 'Chlorine'은 'Stressed out'과 레게리듬의 인기곡 'Ride'가 'Nico and the niners'와 같은 선상에 있지만, 확실히 농도는 이번 음반이 짙다. 빌보드 200 차트 2위에는 무난히 안착했으나 이전보다 싱글 성적이 나오지 않는 현재의 모습이 이를 증명한다. 한마디로 전작보다 덜 팝적이되 앨범단위로는 더 단단하다.
 
첫 곡부터 낮은 읊조림과 피아노 음 한 개를 누르며 끝나는 끝 곡 'Leave the city'까지 굉장한 몰입감과 거침없는 진행을 선사한다. 힙합이 대세가 된 지금, 아무리 마룬 5가 'Girls just like you'로 6주 연속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들, 마룬 5는 팝 록 밴드에서 팝>록 밴드로 노선을 변경한 지 오래고 그렇다면 기세등등한 거물급 밴드의 활력은 미비할 뿐이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는 바로 그 소수점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그룹이다. 자살, 우울증, 외로움 등 극한 현실의 암담한 한 면을 이렇게 매혹적으로 요리해 내다니. '너무 감성적이야'라는 거리낌이 있을 수 있으나 그 감성에 기대고 싶을 때가 꼭 한 번은 찾아오지 않는가. 10대가 겪는 성장통, 20대가 겪었던 결핍을 어떤 식으로든 대변해주는 음반. 전작 대성공의 부담감을 말끔히 털어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트웬티원파일럿츠 밴드 록밴드 음악 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