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지난 2017년 7월부터 1년 동안 방영된 드라마 120개 중 총 625개의 장면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는 지난 1년 동안 40명이 소속된 '드라마 모니터링단'을 운영했음을 밝히며, 모디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모니터링은 2017년 7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방송된 총 120개의 드라마, 2946편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드라마 장면 속에서 여성들은 남성이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하거나 남성의 폭력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남성들의 일방적인 애정 공세에 타자화됐다.
 
 모니터링의 대상인 9개 방송사의 드라마 모두 강제적 신체접촉 장면이 57.51%으로 높게 나타났다.

모니터링의 대상인 9개 방송사의 드라마 모두 강제적 신체접촉 장면이 57.51%으로 높게 나타났다. ⓒ 한국여성민우회

 
드라마 속 로맨스를 가장한 폭력행위로는 강제적 신체접촉(425건), 행동 통제(104건), 스토킹(62건), 언어폭력(56건), 납치(14건), 물건 부수기(8건) 순으로 많았다. 강제적 신체접촉의 유형 중에서는 팔목을 잡아 돌리거나 낚아채기(179건), 입맞춤(130건), 포옹(69건), 신체 제압(42건) 순서로 가장 많았다. 특히 팔목을 낚아채는 장면(Wrist Grab)을 해외에서는 이른바 'K-drama cliche scene'(한국 드라마 클리셰)로 꼽기도 했다.

"누가 마음대로 다치래!" 여성에 '버럭'
 
 한국 드라마, K-drama 클리셰 신으로 소개 되고 있는 여성의 팔목을 잡기(wrist grab)를 한 유튜버가 재연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 K-drama 클리셰 신으로 소개 되고 있는 여성의 팔목을 잡기(wrist grab)를 한 유튜버가 재연하고 있다. ⓒ ray digital 유튜브 캡처

  
"남성은 여자의 다친 부위에 반창고를 붙여주다 '누가 맘대로 다치래!'라며 버럭 소리지르고 구급약통을 던지는가 하면, 분에 못 이겨 기물에 발길질을 하고 돌아서, 또 '왜 그러고 다녔어!'라고 추궁한다."

지난 2017년 8월 방송된 KBS 2TV <학교 2017> 중 한 장면이다. 극 중 태운(김정현 분)이 은호(김세정 분)에게 걱정하는 양 소리를 지르고 기물에 발길질을 하는 폭력적인 장면이 전파를 탔다.
 
 KBS <학교2017>에서는 팔에 찰과상을 입은 여성에게 "누가 다치래"라고 말하는 남성이 등장한다. 남성은 여성의 다친 부위에 반창고를 붙여주다 "누가 맘대로 다치래!"라며 버럭 소리지르고 구급약 통을
던지는가 하면, 분에 못 이겨 기물에 발길질을 하고 돌아서서 "왜 그러고 다녔어!"라고 추궁한다.

KBS <학교2017>에서는 팔에 찰과상을 입은 여성에게 "누가 다치래"라고 말하는 남성이 등장한다. 남성은 여성의 다친 부위에 반창고를 붙여주다 "누가 맘대로 다치래!"라며 버럭 소리지르고 구급약 통을 던지는가 하면, 분에 못 이겨 기물에 발길질을 하고 돌아서서 "왜 그러고 다녔어!"라고 추궁한다. ⓒ KBS

 
이 장면 역시 미디어운동본부의 모니터링 대상이 됐다. 남성이 여성을 보호하려는 의도를 지닌 행동을 취하는 것이지만, 이 역시 여성에게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도 여성에게 "위험한데 운전을 왜 했느냐", "앞으로 혼자 다니지 말라"(KBS <미워도 사랑해>) "화장하지 말랬지"(MBC <도둑놈 도둑님>) 등의 상황과 대사가 문제시됐다.

또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일방적인 애정 고백 혹은 표현'도 여전히 빈번하게 등장했다.

JTBC <미스티>에서 혜란(김남주 분)의 나가라는 말을 무시하고 "사실은 너도 원하잖아"라고 말하며 입맞춤을 시도하는 재영(고준 분)의 모습이 방송됐고 문제적 장면으로 지적됐다. 혜란은 "미친놈"이라고 말하지만 재영은 아랑곳없이 혜란의 몸을 잡아 돌려 세우기도 한다. 또 기습키스를 하고 갑자기 은재(하지원 분)를 억지로 붙잡는 MBC <병원선>의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JTBC <미스티>에서는 남성이 나가라고 하는 여성의 말을 무시하고 "사실은 너도 원하잖아" 등의 말을 하며 입맞춤을 시도한다. 여성은 "미친놈"이라고 말하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여성의 몸을 잡아 돌려 세운다. 여성의 의사는 장면의 처음에만 정확하게 등장한다.

JTBC <미스티>에서는 남성이 나가라고 하는 여성의 말을 무시하고 "사실은 너도 원하잖아" 등의 말을 하며 입맞춤을 시도한다. 여성은 "미친놈"이라고 말하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여성의 몸을 잡아 돌려 세운다. 여성의 의사는 장면의 처음에만 정확하게 등장한다. ⓒ JTBC

 
 KBS <란제리 소녀시대>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꽃을 주며 마음을 고백한다. 여성은 뒷걸음질 치며 피하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여성에게 향하며 "왜 마음을 몰라주냐"고 호소하고 있다.

KBS <란제리 소녀시대>에서는 남성이 여성에게 꽃을 주며 마음을 고백한다. 여성은 뒷걸음질 치며 피하지만, 남성은 아랑곳 않고 여성에게 향하며 "왜 마음을 몰라주냐"고 호소하고 있다. ⓒ KBS

 
SBS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도 경수(오지호 분)가 "너한테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마구잡이로 순진(김선아 분)의 팔을 잡아 끌고 가는 장면이 방송됐다. 순진은 놓으라고 하지만 경수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러한 여성의 비주체적이고 부정적인 모습은 MBC <밥상 차리는 남자>에서도 등장했다. 한 남성이 여성의 상견례 자리에 찾아가, "여자를 데려가겠습니다", "취직해서 먹여살리겠습니다" 등의 말을 하며 여성을 끌고 나가려 한다. 하지만 여성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남성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간다.

이밖에도 케이블 채널 tvN의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는 전 여자친구인 여성의 핸드폰을 몰래보며 사생활 침해를 하는 남성이 등장하는 등 성차별·성폭력의 종류도 다양했다.

남성의 사회적 위계·나이, 여전히 압도적 우위

또 미디어운동본부의 모니터링 결과 여전히 성차별이 포함된 드라마 속 장면에서 남성은 사회적 위계가 우위(625건 중 304건, 48.64%)에, 여성은 하위에 있는 설정(37건, 5.92%)이 많이 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의 연령이 우위에 놓인 경우(625건 중 300건, 48%)가 여성이 우위인 건(60건)보다 훨씬 많았다.

민우회는 성차별적인 드라마 장면이 달라지기 위해서 지속적인 제작자 교육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또 시청자들의 적극적인 문제제기와 더불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보다 제대로 된 심의 및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우회는 곧 1년 동안의 드라마 모니터링 활동을 자세히 담은 보고서를 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드라마 여성민우회 폭력 장면 모니터링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