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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롯이 엄마 혼자만의 희생으로 차려진 밥을 먹으며 나머지 가족들만 행복에 겨워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오롯이 엄마 혼자만의 희생으로 차려진 밥을 먹으며 나머지 가족들만 행복에 겨워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 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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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게 여행이 좋은 이유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코 "삼시 세끼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이구동성 답할 것이다. 밥 중에 제일 맛있는 밥은 '남이 해 준 밥'이라는 명언(?)도 있듯, 여자들에게 매 끼니를 마련하는 일이란 중노동이자 일상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부엌일을 돕고, 청소년기에는 남자 형제들의 간식까지 챙기고, 독립해서는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소박하게 자신의 밥상을 차린다. 결혼과 출산을 거치며 어느덧 자신도 엄마가 되어 가족의 밥상을 차리고, 이 정도로는 부족한 건지 어떤 경우에는 자녀의 자녀, 즉 손주들의 밥상까지 또 차려 올리는 것이 여자의 일생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자의 '팔자'라고 불렀다.

알고 보면 식사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지 않는 나라가 꽤 많다. 이는 부엌이 아예 없거나 최소의 조리 공간만 있는 주거 형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모두가 바쁜 아침 식사는 간편식으로 각자 해결하거나 집이나 직장 근처의 식당에서 가볍게 사먹는 문화가 흔하다.

물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다. 우리도 이렇게 끼니를 밖에서 해결하는 문화가 (엄마들의 마음에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연스럽게 확대되어 정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집 밥, 그것도 엄마가 손수 해주는 일명 '엄마표 집 밥'을 이리도 좋아하는 것일까?

물론 인간에게 먹거리는 매우 중요하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을 절대적으로 부정하기도 어렵다. '밥이 보약'이라거나 '밥심으로 산다'는 말들도 있듯,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기 위해, 그리고 자아실현을 하기 위해 건강한 음식을 선별하여 거르지 않고 잘 먹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런데 왜 꼭 집에서 만든, 그 중에서도 엄마가 지어준 밥을 최상의 가치로 꼽고 예찬하느냔 말이다.

엄마의 일은 가족들이 잠시잠깐 '돕는' 시혜일 뿐

반면 유명 셰프(chef)들 중 남성들만 주로 조명 받는 현실도 아이러니하다. 맛과 간의 조합에 대해 굳이 논하지 않더라도 엄마의 정성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원산지도 불분명한 식당 음식보다 몸에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오롯이 엄마 혼자만의 희생으로 차려진 밥을 먹으며 나머지 가족들만 행복에 겨워한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앞으로도 지속되는 것이 맞는가? 명절 음식도 꼭 엄마와 여자들이 손수 만드는 것이 조상에 대한 예의라고 암묵적으로 강요하는 대목 또한 같은 맥락이다.

어쩌면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남편의 조상들에게 공감은커녕 유체이탈의 상태로 그저 작년처럼 올해도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고 있을 뿐이다. 하루도 모자라 시댁 가족과 친지들이 시간차 공격으로 방문하는 며칠 동안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여성들은 손님상 차리는 중노동을 반복한다.

결국 너도나도 '엄마표 집 밥'을 극찬하는 논리는 엄마에게 가사노동을 전가하며 가부장제를 공고히 할 개연성이 충분하다. 간혹 엄마가 부재할 때나 가족에 대한 이벤트로 아빠나 다른 가족이 차린 밥상은 대체로 간편식이거나 배달 음식이기 십상이다.

물론 가족 중에 요리 솜씨가 있는 이가 있다면 좀 더 근사한 밥상일 수는 있겠지만 어쨌거나 일회성이다. 그래서 동서고금 엄마가 그립고 엄마가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훈훈한 결론으로 미화되어 왔다.

동화작가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을 보면 비슷한 문제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 가사와 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있는 이름조차 소개되지 않는 엄마가 아무런 말도 없이 가출(?)하고 난 후 아빠와 자식들이 뒤죽박죽 되어버린 일상 속에서 결국 엄마(사실은 엄마의 노동력)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고, 엄마가 돌아온 뒤 나름대로 가사 노동을 분담한다는 내용이다.

물론 가사와 돌봄 노동을 공평하게 나눈 것은 분명 아닐 것이다. 누구나 무신경하게 이야기하듯 원래 엄마의 일은 가족들이 잠시잠깐 '돕는' 시혜일 뿐이다. 이 그림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책을 읽고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엄마가 전업주부가 아니라 워킹맘이라는 점이다.

집안일을 전담하면서 직장까지 다니는 엄마는 오직 '중요한' 회사와 학교에서만 일하고 공부하는 아버지와 자식들과 존중은커녕 소통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1986년에 발행된 이 그림책을 2018년 대한민국 엄마들이 깊이 공감하는 이유를 가족 모두 성찰해 볼 때다.  

'오늘 저녁 뭐 해먹지?'하는 고민, 이제 그만

지금은 남녀의 노동과 역할의 구분이 무의미한 시대이다. 시시각각 우리가 미처 파악하지도 못하는 새로운 가족 형태들도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엄마표 집 밥'에 대한 최고의 찬사는 이제 사양한다.

엄마들더러 이제 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밥은 엄마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저출산 문제의 해법을 '대한민국 출산지도'(이 지도는 마치 중세시대 유물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같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할 것이 아니라 여성들의 가장 현실적인 부담과 고통을 덜어주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아파트 단지마다 공동 식당을 의무로 조성하거나 저렴하고 안전한 외식 업체들을 안착시켜, 삼시 세끼 집 밥이 아니라 외식도 전혀 거리낌없이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를 촉구한다. 직장에서 오후 시간 과중한 업무에 치이면서도 '오늘 저녁 뭐 해먹지?'하는 고민, 이제 그만 좀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인권연대 <우리시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글을 쓴 주윤아 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으로 활동 중입니다.


돼지책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허은미 옮김, 웅진주니어(2001)


태그:##집밥,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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