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7 08:37최종 업데이트 18.10.17 12:20
"지금의 제도는 원천적으로 비정상과 편법을 강요하는 구조입니다. 합법적인 정치비용은 현실에 맞게 올리고 선거공영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신인도 합법적으로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수입과 지출을 투명하게 하고 불법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해야 합니다."  

2018년 7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정치권 안팎에서 높아진 정치자금법 개정 목소리가 아니다. 15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한 말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정치자금을 투명화하고 또한 현실화해야 합니다"라며 이렇게 말했다.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 일명 '차떼기 사건'으로 국민들의 정치개혁 요구가 드높았던 때였다. 
 

국회는 2004년 3월 현행 정치자금법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오세훈법'을 만들었다.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됐던 정경 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의지가 두드러졌다. '오세훈법'은 기업의 후원금 기부금을 금지했고, 국회의원 후원회로만 정치자금을 모으게 했다. 또한 당시 '돈 먹는 하마'라고 비판받던 지구당마저 폐지시켰다. 

다시 2018년 7월. 노회찬 의원의 비극적 선택은 부적절한 정치자금 수수 탓이었다. 그는 원외 시절이던 2016년 3월, '드루킹' 김동원(49)씨 측으로부터 4000만 원을 받았다고 유서를 통해 밝혔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라고 했지만, 적절한 절차를 밟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사람들은 탄식했다. 대표적인 진보정당 정치인이던 노 의원마저 그런 선택을 해야 했던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그것이었다.
 
"제도(정치자금법)가 사람을 안타까운 죽음으로 내몰았다." - 이준석 전 바른미래당 당협위원장 
"지킬 수 없게 설계된 법이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 - 최병천 민주연구원 연구위원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이 아니다." -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오세훈법'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빈민위원회가 2003년 12월 대검찰청사앞에서 '차떼기 100억 이회창 전달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2002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이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기업으로부터 150억 원을 트럭째 전달받는 등 82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일이 드러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렇다면 '오세훈법'은 잘못된 법이었을까. 시간을 돌이켜보면 잘못됐다고 단언하긴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 그 출발점은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사건이었다.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후보 캠프가 LG, 삼성, SK, 현대차, 롯데 등 대기업으로부터 82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트럭으로 현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차떼기 사건'으로 명명됐다. 상대 진영이었던 노무현 후보 캠프 역시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즉, 여야 모두 정치개혁 대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만큼 선명성이 강조될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후원금을 받지 못하게 하면서 노동조합이나 다른 단체의 후원금도 동일선상에서 원천 금지됐다. 중앙당이 후원회를 통해서도 돈을 못 받게 했다. 국회의원 연간 후원금은 1억 5000만 원, 선거가 있는 해에는 3억 원으로 제한시켰고, 개인의 후원금 상한선도 국회의원 1인에 대해 연간 500만 원까지만 기부할 수 있도록 하향 조정했다. 정치자금 기부의 실명제와 정당의 회계보고 절차 강화도 주문됐다. 

필요한 조치였다. 일례로 조성대 한신대 교수가 2012년 발표한 논문 '한국 현행 정치자금법의 쟁점과 대안'에 따르면, 2004년 정치자금법 개정 이전 주요 정당의 전체 후원금 중 기업 등 법인의 후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했다. 구체적으로 2002년 기준으로 한나라당은 56.9%, 새천년민주당 48.2% 그리고 자유민주연합이 73.4%나 됐다. 그만큼 재벌의 입김이 정치권에 미치기 쉬운 구조였던 셈이다. 이를 '소액다수 기부주의'를 원칙으로 한 정치자금법 개정으로 차단한 것이다. 

효과는 확인됐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교수가 2004년 낸 논문 '17대 총선의 선거자금과 정치개혁의 효과'에 따르면, 16대 총선 땐 전체 선거자금의 20.76%에 달했던 당 지원금이 17대 총선 땐 7.23%로 크게 떨어졌다. 전체 선거자금 중 후원금 비중은 오히려 16대 총선 때 25.08%에서 17대 총선 때 39.60%로 늘었다. 

'돈 선거' 우려도 줄었다. 임 교수는 같은 논문에서 "설문조사의 결과 16대 총선 선거관련비용으로 지출한 자금의 액수 평균 약 5억 원, 17대는 1억4100만 원이었다. 선관위 자료에 따르면 16대는 평균 6300만 원, 17대는 8500만 원으로 증가하였지만 제한액대비평균지출율은 16대 50.2%에서 17대 49.6%로 줄어들었다"라고 적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기울어진 운동장'마저 만들었나
 
 
다만, 당시에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우려는 나왔다. 정치신인이나 '돈 없는 이'들에게 불공정한 룰이라는 얘기였다. 시행 직후인 2004년 6월엔 국회 내에서 공개적으로 볼멘소리가 나왔다. 이석현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은 국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정치자금을 기존과 달리 개별 모집으로만 제한하면서 전반적으로 후원금 모집이 어려워졌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거비용 사용한도액의 절반 밖에 안 걷혀서 우리 아버님 적금통장까지 깨 가면서 선거를 치러야 되는 일을 겪었습니다. 3선 의원인 제가 이런 일로 걱정하고 있을 때 아직 후원 기반을 많이 넓혀 놓지 않은 초선 의원 여러분들은 앞으로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지 짐작이 되기도 합니다." 

정치신인만 아니라 원외 당협위원장들도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다. 그 전엔 지구당 후원회를 통해 2억 원의 후원금을 받을 수 있었던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더 이상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지방의회 의원선거의 예비후보자 및 후보자도 원외 당협위원장들과 같은 처지다. 앞서 후원회 지정권자 범위는 2005년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자, 2008년 대선후보 및 예비후보자, 2010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 순으로 확대된 바 있다. 그러나 지방의회 의원 및 후보자들은 여전히 후원회를 둘 수 없다. 

이에 대해 임한솔 정의당 서대문구의원은 "두 번 낙선하고 세 번째 도전 만에 당선됐다. 매번 선거 때마다 실질적으로 4000만~5000만 원 정도 드는데 대부분 빚이다"라며 "한 달에 300만 원 남짓 되는 구의원 급여가 현재 수입의 전부"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방의회 의원은 평상시는 물론, 선거 때도 후원회를 두지 못한다. 대신 영리 목적의 겸직이 허용되는데 이게 바뀌어야 한다. 지방의원도 의정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방의회 의원과 다른 공직후보자 간의 형평성 문제를 떠나 현행 정치자금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정치인이 돈 문제로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는 오세훈법이 만들어진 14년 전에 비해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경우, 성실한 의정활동으로 인정받으니 대놓고 '돈 달라'고 해도 국민들께서 박수 치며 기꺼이 후원금 1위로 만들어주시지 않나. 기업으로부터 검은 돈 받는 나쁜 관행은 철저히 막고, 서민과 약자를 위하는 정치인에게는 소액다수의 후원이 더욱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깨끗한 정치' 원칙 흔드는 편법까지 이어져
 

황창규 KT 회장이 지난 4월 17일 정치자금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서대문 경찰청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가장 큰 문제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겠다는 본래의 취지를 흔들고 있는 편법과 불법이다. 기업 등 법인이 소액 후원금 제도를 악용해 직원들의 이름으로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현재 황창규 KT 회장은  KT 임직원을 동원해 19, 20대 국회의원 등 정치인 99명에게 수 억 원을 '쪼개기 후원'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 회장 등은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경찰은 KT와 관련된 법안을 다루는 국회 상임위 소속 의원들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돈을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2010년 '청목회 사건'도 있다. '청목회(청원경찰친목회)'가 경찰공무원과 비슷한 업무를 하는 청원경찰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입법로비 목적으로 33명의 국회의원에게 2억7000만 원을 후원한 사건이다. 

이러한 편법·탈법 행위는 무작정 기업이나 단체의 후원을 막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특히 '청목회 사건'은 이익집단이나 그 밖의 단체들의 정치자금 기부 또한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는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주장으로도 발전했다. 정경유착을 끊고자 만든 법이 사회적 약자의 정치적 행위마저 막고 있다는 성찰이었다. 

사실 기업 등의 후원을 차단하면서 노동조합의 후원까지 막은 것은 법 마련 중에 우려를 사기도 했다. 당시 '오세훈법'을 만든 정치개혁특위의 천정배 의원은 2004년 3월 2일 특위 회의 중 "(사용자 단체나 기업 등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하고 일리가 있다고 본다"라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의 정치활동을 높이기 위해서 노조의 정치활동만은 다른 단체와 구별해서 특별히 보장하는 것이 선진국의 사례입니다. (중략) 이 나라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있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당들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이와 관련, 조성대 교수도 앞서 밝힌 같은 논문에서 "비영리 법인 및 단체의 상한선 안에서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은 한편으로 2004년 정치자금법 개혁이 의도했던 정경유착의 근절과 소액 다수의 정치후원이라는 취지를 유지하면서 다원적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보다 확대하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라고 제언하기도 했다. 


정치자금법 개정 실패했던 까닭, 답은 '투명성'에 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12월 헌법재판소가 정당 후원회를 금지한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결정을 내렸을 때도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는 활발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 정당 후원회 허용 ▲ 지방의회의원 등의 후원회 허용 ▲ 정당국고보조금 배분방식 변경 ▲ 당비 납부액 등과 연동한 정당국고보조금 지급방식 도입 ▲ 정치자금의 실시간 공개 등을 골자로 한 개정 의견을 냈다. 

다만, 이때의 논의 결과도 정당 후원회 허용 정도로만 그쳤다.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로 지목 받았던 정경유착 가능성에 대한 우려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낮은 신뢰 탓이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으로 다시 불붙은 현재의 논의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선결하지 않고선 정치자금법 개정은 똑같은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결론은 정치자금 수입·지출에 관한 투명성 강화가 모든 논의의 전제조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매년 어느 시점에 국회의원 전원의 정치자금 내역을 다 공개해서 모든 사람들이 감시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앙부처에서도 업무추진비 등을 대부분 엑셀 파일로 공개하는데 정치자금은 선관위에 정보공개청구를 해서 수수료를 물어서 받는다. 그것도 (DB화가 굉장히 어려운) PDF파일로만 공개하고 있다"라며 "회계 보고가 끝난 뒤 3개월 동안만, 그것도 선관위를 직접 방문해야만 영수증을 열람할 수 있는 것도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러한 '불편함'은 곧 공사 구분이 불명확한 정치자금 지출로 이어진다"라며 "현재 많은 국회의원들이 과속, 신호위반에 따른 과태료나 송사비용마저 정치자금으로 쓰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정치자금 시스템은 좋은 참조 사례로 제시되기도 한다. 어느 나라보다 자유로운 정치자금의 유입·운용이 이뤄지고 있지만 그 수입과 지출에 대한 투명성에서 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국의 정당과 후보자는 선거 전후 20일까지의 정치자금 수입·지출 내역을 정해진 기일 내에 '미국연방선거관리위원회(FEC)'에 보고하도록 돼 있다. FEC는 이를 48시간 이내에 인터넷에 공개한다. 또한 200달러를 초과하는 정치자금 기부에 대해서는 후원자의 성명, 주소, 직업과 고용주 등까지도 확인 가능토록 하고 있다. 사실상 상시적인 공개가 이뤄지고 있고, 누구나 감시하고 추적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누구든지 수상한 내역에 대해 신고할 수 있고 심사 과정에 있어서도 방청객이나 고발자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특징이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유권자가 정치인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며 "미국의 정치자금법 시스템 중 '수입과 지출에 대한 확실한 투명성'은 참조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미국처럼 365일 기부자 신원을 공개하고 그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유권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업의 돈은 참 쉬운 돈이다. 정치인이 그 대가로 무언가를 해주기도 편하고 이익을 몰아주기도 편하다. 안 그래도 한국 정치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기업 위주로 돼 있기도 하다. 귀하지만 작은 돈을 거둬서 하는 정치 시스템으로 가야하지 않겠나."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지난 7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가운데 노 의원 영정이 고인이 머물렀던 의원회관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총 482명이 6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2587억원의 지출내역을 공개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정보공개를 통해 받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 2200여건, 10만 3617매를 전수분석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정치자금 공개 페이지'(http://omn.kr/187rv)에서 의원별로 사용일자, 내역, 금액, 사용처 등 지출내역을 확인할 수 있으며, 원본 PDF파일도 제공합니다. 데이터 저장소(https://github.com/OhmyNews/12-17_KAPF)에서 연도별 지출내역 전체를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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