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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늦은 시각의 지하철이었다. 만원 객차는 아니었지만 서 있는 승객도 적지 않았다. 피로해 보이는 사람들, 각자의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모습. 익숙한 풍경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갑지 않은 익숙함. 싸움이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 역시 이 소란을 목격해야 했다. 

먼저, 중년의 남성이 그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여성에게 호통치듯 말했다.

"거 당신! 임신했어? 임신했냐고! 왜 거기 앉아 있어?"

분홍색 선명한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있던 그녀.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곧이어 더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뭐? 그게 할 말이야? 뭐라는 거야 지금? 이 시간에 임산부가 어딜 돌아다녀? 빈 시간에 좀 앉을 수도 있지 이 양반이 어디서 소리를 지르고 야단이야!"

마치 혐오의 종합선물세트 같았다. 나로선 잘못의 경중을 가릴 수도 없다. 낯선 이에게 다짜고짜 고함을 지르며 임신 운운하는 것도, 임산부의 활동 시간을 자의적으로 판단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던 존댓말도, 그들을 바라보는 승객들의 표정도, 모두가 혐오였다. 

내 안에도 혐오가 있었다. 멀쩡해 보이시는 양반들이 왜 저럴까, 잠시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외모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뭔가. 소리 지르기에 적당한 외모란 또 뭐란 말인가. 이 역시 어떤 종류의 혐오였을 것이다.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알량한 선 긋기. 

 
<세계를 만드는 방법> 책표지
 <세계를 만드는 방법> 책표지
ⓒ 우리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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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 작가의 <세계를 만드는 방법>을 보며 지나쳤던 일상의 풍경을 되짚어보게 되었다. 스치듯 지나가는 일상을 붙들고 정의하는 것은 유의미한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정의할 수 있을 때 세상은 보다 선명해진다. 선명해지면, 변화를 모색하는 걸음에도 보다 큰 힘이 부여된다고 믿는다. 

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작가로서 자신이 품은 소명을 이야기한다. 실패할지라도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선언하는 작가, 근사하다. 작가에게만 국한되지 않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소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나는 잘 쓴 글 이상을 쓰고 싶다. 누군가 내게 해놓은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 인간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 내가 속하고 거쳤던 세계의 일부분을 바꾸고 싶다. 그건 숙명이다. 그렇게 믿지 않고 견딜 수 있을까?" (9쪽)

상상력이라는 효과적인 수단

1부는 '혐오의 세계를 바라보는 방법'이다. 인종, 성별, 장애, 외모, 성적 지향 등 세계에 널린 혐오. 저자는 여성 혐오 앞에서, 나아가 '여성 살해'라는 현상 앞에서, 차별과 혐오가 아닌 정신질환이라는 장벽을 세우게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한다. 구분 짓기를 함으로써 남성 전체로서의 품격을 지키려는 심리.  

저자 역시 작품 속에서 여성 인물을 다룰 때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다고, 작가인 자신 역시 이 성차별 구조 속에서 가해자의 지위에 있었음을 고백하기도 한다. 그는 말한다. 우리는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하지만) 타인이 되어보려고 방사선까지 쬘 필요는 없다. 상상력이라는 더 효과적인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우리가 언제든지 타인이 되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간편한 교차성의 다리를 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이기심이다." (16쪽)

2부는 '절망의 세계를 마주하는 방법'이다. '블랙리스트'라는 적폐 행위와 그 부역자들, 패악질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재벌 상속자들, 노동을 착취하는 기업과 그 착취를 용이하게 만드는 노동 하청 구조 등을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청년들이 더이상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고, '헬조선'을 외치며 불공평한 생존보다는 공평한 파멸을 바라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진짜 위기인지 투정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인상 깊다. 역사는 세대를 건너뛴 채 나아갈 수 없고 한 세대 전체가 포기한 땅에 미래는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전태일'이란 이름을 가진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을 취재한 결과는 놀랍다. 왜 그들의 모습은 1970년의 전태일과 겹쳐지는가. 왜 착취의 사슬은 끊어지지 않았는가. 저자는 중산층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가 의미를 잃었음을 짚으며 변화를 촉구한다.
 
"우리는 지금 공허한 정치 구호처럼 오로지 '중간시민'으로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간이란 장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니라, 중간을 향한 환상을 포기 못 해서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덧없는 치유의 주술을 그만 거두십시오. 지금 즉시 변화에 동참해주십시오. 우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아니라, 사정이 나쁜 사람들입니다." (74쪽)

작가는 언어로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3부는 '거짓의 세계를 살아가는 방법', 4부는 '망각의 세계를 기억하는 방법'이다. 책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저자가 작성한 칼럼들로 구성되어 있어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되짚어 볼 수 있다. 국정 농단, 과도한 시위 진압 등 반복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일들이 빼곡하다. 

마지막인 5부는 '다시, 세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저자는 패배주의와 습관으로 체화된 복종을 경계한다. 지배규범의 부당성은 작위적 전복과 불복종으로써 주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쟁취한 민주주의가 그 당시엔 불법이었음을 정확히 짚는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불복종하라. 우리가 맞닥뜨린 도그마는 절대적인가? 정말로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가? 우리를 굴복시키는 것은 막강한 힘인가, 아니면 상상 속에서 키워온 공포와 절망인가?" (255쪽)

'들어가는 글'이 그랬던 것처럼, '나가는 글' 역시 작가의 역할을 이야기하며 책은 끝난다. 저자는 소망한다. 작가는 언어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독자들의 언어 역시 같은 과정을 반복하기를. 나 역시 그가 제시하는 우리가 '세계를 만드는 방법'에, 적극 동의한다. 

혐오와 절망, 거짓과 망각의 세계를 조명하지만, 책은 분명하게 희망을 가리키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를 끝내기 위해, 불평등의 상속을 중단하고 비뚤어진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의심하고, 탐색해야 한다. 그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믿는다.
 
"걸음은,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을 준다. 걷다 보면 우리는 결국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을 회복하면서 여행자의 상처는 천천히 아문다. 

우리 삶과 비슷하게, 실패와 시행착오는 여행의 일부를 이룬다. (중략) 길을 생략하면 여행도 생략된다. 여행은 언제나 길 끝이 아니라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279~280쪽)

세계를 만드는 방법 - #한국사회 #들여다보다 #해체하다 #쌓아올리다

손아람 지음, 우리학교(2018)


태그:#세계를 만드는 방법, #손아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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