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6일 발매된 김사월의 정규 2집 <로맨스> 커버

9월 16일 발매된 김사월의 정규 2집 <로맨스> 커버 ⓒ 포크라노스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 보단 '로맨스'가 더 달다. 그런데도 은밀한 고독과 절망을 라이브 녹음으로 옆자리서 마주 시키던 김사월이 '어떻게든 너를 행복하게 할 거야'라 고 사뿐사뿐 노래하며 다가오는 광경은 언뜻 어색하게 느껴진다. 비밀 가득한 여인 <수잔>의 이야기와 잔인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던 < 7102 >의 잔향이 깊었던 탓인가,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라는 김사월이 이제껏 없었던 탓인가. 

<로맨스>의 이질감은 언어 자체의 매력이 덜해진 데서 온다. 김사월의 로맨스는 낭만적인 사랑과 은근한 유혹을 말하디가도 쓸쓸한 이별과 그 후의 회한을 읊어가는 등 폭이 넓지만 깊은 인상으로 남지 못하고 일상 속 문장으로 흘러간다.

'나를 아껴줘 / 아니 그냥 내버려 둬', '소녀 같은 건 소년스러운 건 어울리지 않아' 등 모호했던 유혹은 '나를 사랑해줘요'('연인에게'), '나를 그리워해 봐 / 네 맘을 움직여줘'('그리워해봐')처럼 정직해졌고, 예기치 못한 일상 속 감정의 몰아침을 절제된 단어로 파고들던 '젊은 여자'는 1달러와 세계 일주, 캣 파워로 압축된 '세상에게'와 추운 날 밖에서 속상한 마음을 애원하는 '엉엉' 정도로 간소화됐다. 

결핍의 페이지를 덮고 충만한 감정으로 더욱 넓은 영역을 향하려는 의도다. 언어를 섬세하게 받쳐주던 사운드가 보다 전면에 나서는 앨범은 김사월의 커리어 중 가장 친절하고 쉽게 들을 수 있으며 복고적이다.

밴드 구성으로 전에 없던 리듬감을 들려주는 '연인에게'와 '누군가에게', 보사노바 리듬과 플룻을 더한 '오렌지', 일렉 기타 리프가 잔잔히 흐르는 '엉엉'과 '세상에게' 등 기법은 풍부해졌고 멜로디는 친근해졌다. 내밀함 대신 보편의 주제를 다루면서 작법 면에서도 확장된 면모를 갖추려 한다. < 7102 > 발매 후 이즘(izm)과의 인터뷰에서 예고한 '긍정적 정서'와 '세련되고 멋있는' 작품의 의도가 읽힌다.
 

무던한 사랑의 이야기라 생각하면 불만은 없다. <로맨스>는 이전처럼 본인 자신을 치열하게 응시하는 앨범이 아니다. 시기상으로는 < 7102 >가 1집과 2집의 가교 구실을 했지만, 오히려 이번 작품이 아티스트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도움닫기로 느껴지는 순간이 많다.

'그리워해봐'와 '죽어'의 날 선 단어, '오렌지'의 신비한 무드 등 특유의 느낌이 순간 다가오다가도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 주제와 고전적 작법이 우선에 있다. '나'를 많이 언급하지만 뮤지션 본인의 세계보다는 '김사월'이라는 브랜드 아래의 어떤 작품이라 보는 편이 옳겠다.

김사월의 페르소나는 조곤조곤 비밀스럽게 읊조렸음에도 순간의 반짝임이 치명적이었기에 매혹적이었다. 이제 그 캐릭터는 사랑하고, 사랑했던 과거를 담담히 풀어놓으며 보다 많은 이들에게 닿고자 한다. 그렇기에 큰 틀에서는 공감가지만 깊이 파고들지는 못하는 앨범이 나왔다. 아티스트가 매번 결핍되고 절망하며 상흔을 보듬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보편의 정서를 평범한 언어로 묘사할 필요도 없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대중음악웹진 이즘(www.izm.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사월 앨범 싱어송라이터 앨범리뷰 인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중음악평론가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에디터 (2013-2021) - 대중음악웹진 이즘(IZM) 편집장 (2019-2021) 메일 : zener1218@gmail.com 더 많은 글 : brunch.co.kr/@zenerkrepresent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