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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 외출 후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이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대문에 전단지를 붙이다 들켰는지 그 집 주인에게 훈계를 당하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두 사람의 대화를 살짝 엿들어 본다. 집주인은 전단지를 남의 대문에 왜 붙이냐고 거세게 다그치며 "구청에 신고하겠다"고 윽박지른다. 이에 아주머니는 "다시는 전단지를 붙이지 않을 테니 한 번만 봐달라"고 통사정한다.

전단지 부착을 두고 아주머니와 집주인이 주고받는 갑을 관계적 대화는 한동안 이어졌다. 결국 전단지를 붙인 아주머니가 죽을 죄를 짓기라도 한 것처럼 싹싹 비는 것으로 실랑이가 마무리되었다.
 
길에 전단지 붙이는 아주머니의 모습
 길에 전단지 붙이는 아주머니의 모습
ⓒ 신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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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주인에게 호되게 당한 아주머니는 풀이 팍 죽어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 "전단지 붙이기도 참 힘드시겠어요?"라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아주머니는 어찌 됐든 남의 대문에 전단지를 붙이는 것은 잘못이니 할 말은 없다고 인정을 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심하게 추궁을 당하니 기분은 별로 좋지 않네요"라며 한숨을 내쉰다. "요즘은 폐지를 줍는 사람들도 많을 뿐더러 폐지 값도 많이 내려 주워 봐야 돈도 몇 푼 되질 않아 전단지라도 붙여보는데 이 일도 너무 힘드네요"라며 고충을 토로하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현관문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각종 홍보 전단지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이런 현상이 언제부터 일어나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손안의 작은 세상 스마트폰이라는 통신 시설의 발달과 더불어 배달 앱 시장이 활성화 된 시점부터가 아닐까라는 나름의 추측을 해 본다.

겪어본 누구나 그렇듯이 나에게도 현관문의 전단지가 반갑지만은 않을 때가 있었다. 떼어내고 돌아서면 또 붙어 있는 전단지가 짜증이 날 때가 많았다. '전단지를 제발 붙이지 마세요'라는 안내문도 대문에 붙여 볼까도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귀찮고 짜증 나더라도 그냥 말없이 떼어 냈다. 전단지를 붙이는 사람들의 고충을 이해하고서 부터다.

나에게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짧게나마 한때 나도 각 집 대문에 전단지를 붙여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던 때 전단지 붙이는 일을 했다. 그때 당시 장 당 몇 원인가? 전단지를 대문에 그냥 붙이고 돌아다니면 쉽게 돈이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일을 너무나 쉽게 보고 덤벼들었음을 이틀 만에 깨달았다. 일일이 걸어 다니며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어떤 이들은 전단지 붙이는 일을 운동 삼아 걸어서 좋고, 돈도 벌어서 좋다고들 한다. 하지만 운동 삼아 걷는 것과 돈을 벌기 위해 겉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전단지 붙이는 일이 산책하듯 평지만 걷는 것도 아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는 4~5층 높이의 계단도 걸어 올라야 했다. 그래도 이것까지는 참을 만했다. 문제는 전단지를 붙이다 행여 주인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정말 난감했다. 그나마 좋은 사람 만나면 다음부터 '붙이지 마세요'로 끝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일 경우 온갖 수모를 당해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오래지 않아 그 일을 그만 두었다. 그 이후로는 집 대문에 전단지가 붙어 있어도 조용히 떼어낼 수밖에 없었다. 이것으로 생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의 일감 걱정도 해보게 된다. 남의 집 대문에 전단지 붙이는 것은 여러모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안다.

하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이 일이 아니면 뾰쪽한 생계 수단이 없는 이들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생존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남의 집 대문에 전단지를 부착해서는 안 되기는 하나 심한 모멸감을 받을 정도의 일은 아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보면 어제의 집주인은 좀 과했다는 느낌도 든다. 붙이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붙여야만 먹고 사는 이들의 심정도 헤아려 주면 어떨까.

태그:#전단지 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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