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6 09:45최종 업데이트 18.10.16 09:45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2년 전 아들이 하늘나라로 간 후 나에게는 시간만 멈추지 않았다. '행복'이나 '사랑' 같은 따듯하고 일상적인 단어도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 아니, 나 스스로 그 단어를 버렸다. 그런데 왜 올 여름 폭염 속에서 이 책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잡았을까?

그동안 슬펐고 힘들었다. 물론 지금도 아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살려고 바둥대고 있음을 고백한다. 밥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학교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교사들을 만나고, 교감으로서 학교 일을 처리한다. 복도를 순회하면서 만나는 학생들한테도 환하게 "안녕" 하고 인사한다. 엄마가, 살아남은 자가 당당하게 살아야 하늘나라에서도 아들이 편안할 것이라는 조언을 합리화하면서. 그러면서도 문득문득 아무 희망도 없는데 아들을 보내고도 이렇게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내가 싫어 한참을 운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잃어버린 행복, 사랑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를 단숨에 읽었다. 내용 하나하나에 마음이 편해졌고 고마웠다. 특히 '시대의 우울'이란 말에 울컥했다. 그동안 억울했는데 저자도 그 시간을 함께했구나,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 나의 꿈틀거림의 성과뿐 아니라 한계도 보듬어주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껏 잘 살아왔어. 이제 다시 일어나' 하며 나에게도 관대한 평가를 할 수 있어 우울했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 책의 저자가 <오마이뉴스> 대표이고, 기자니까 글이 강하고 행간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리라 막연히 추측했었다. 그런데 정말 술술 읽혔다. 저자의 책과 강연을 통해 나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치유가 많이 되었을 것 같다. 이렇게 명쾌하게 거리낌 없이 그 무거움을 가볍게 꺼내어준 것에 감사하며 울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30년 이상 교직에 있으면서 고민했던 내용들이 책 속에 생생히 노출되어 있어 섬뜩했다. 교사가 아닌데도 이렇게 교육 문제에 대해 깊이 파악하고 고민해온 것에 놀랐다. 교사로서 부끄러웠다. 문제 하나하나가 학교 현장에서 실제로 부딪치던 내용들이라 가슴이 두근거렸고, 어떻게 풀어나갈까 궁금했다.

나는 교육 현장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면서도 '제도가 그런데 어쩌라고? 언젠가는 바뀌겠지. 교원 단체가 나서거나 누군가가 하겠지. 어차피 미래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니까'라고만 생각했다. 교사인 내 문제이고, 내가 주체여야 하는데도 정치인이나 교육부에서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며 책임을 미뤘다. 외면해도, 싸우지 않아도, 교사 경력은 쌓이고 월급도 나오고 아무 불편함이 없었다.

교육 문제는 워낙 첨예한 주제다. 언론에서 교육 현안을 얘기할 때는 항상 요란했다. 그러나 그러고는 끝이다. 결국 대학 입시와 이해관계로 귀결되었다. 저자는 수많은 교육 문제들을 가볍게 접근하면서도 분명한 방향과 실천을 제시하고 있었다. 사회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생각은 절실한 만큼 항상 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똑같은 문제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접근할 수도 있음을 이 책에서 배웠다. 많은 지지와 동조를 받았을 것 같은데 우리는 왜 아직도 행복을 제안하고 사랑을 물어야 할까?

교직 정년을 꿈틀거리며 맞기로 했다

책을 읽으며 뜻밖에도 나에게서 꿈틀거림이 느껴졌다. '행복', '사랑'이라는 단어를 하나하나 불러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행복지수 1위의 나라를 찾아가 연구하고 깊이 공부한 저자의 '14'(저자가 덴마크에 방문한 횟수) '10'(덴마크 여행 '꿈틀비행기' 프로그램 횟수) '302'(꿈틀비행기 탑승객 수) '801'(저자의 행복특강 횟수) '100,000'(행복특강 참가자 수)의 숫자들에 1을 더하고 싶었다. 내 안에 덴마크를 심고 싶었다.

덴마크가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초등학생의 표정이 고3까지 유지되는 나라,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들이 주말뿐 아니라 주중에도 즐거운 나라.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교사로서 30년 넘게 고민했던 문제들의 해결점이었고, 하늘나라로 간 아들과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줄 답이었다.

정년을 2년여 앞둔 지난 3월, '이 짧은 기간에 새삼 무엇을 더 하랴? 조용히 정리하며 마무리해야지' 했었다. 정년을 앞둔 대부분의 교사들이 선후배 교사들한테 자주 들었던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꿈틀거리며 교직 정년을 맞이하겠다'로 생각이 굳어졌다. 갑자기 할 일이 많아졌다. 퇴임식 대신 재학생, 졸업생, 동료 교사, 지인들을 대상으로 '마지막 수업'을 했던 어느 평교사처럼 나도 교사 생활을 마지막까지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다.

내가 현재 근무하는 학교에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는 아이들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학교생활에서 경쟁이 중요 쟁점은 아니다. 시험 점수보다 가정에서의 애정 결핍이 더 문제이고, 돌봄이 안 되어 방황하거나 무기력한 학생들이 많다. 교사들도 일부 거친 아이들에게서 큰 상처를 받아 지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아이들을 안아주는 어른이 없어서 교사들은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며 아이들을 끌어안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 학교만의 특별한 상황이려니 했다. 그런데 교감회의에 가보면 이런 절망의 학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이 무섭고 아픈 현실이 공론화는커녕 교육 현안에서조차 아예 외면되고 있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점은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 '사랑'에 있다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우리의 학교가 '작은 덴마크'가 될 수 있도록 교사들과 협의를 통해 방법을 찾아가겠다.

가난을 극복한다는 이유로 소중했던 공동체 문화를 쓸데없는 것처럼 취급했음을 반성한다. 나는 가난한 시골이 싫었다. 문명이 없고 문화가 없는 시골이 답답했고 그 속의 사람들이 한심하고 무지해 보였다. 그런데 생태 환경에 대해 공부하면서 관점이 바뀌었다. 개발이 덜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환경이 잘 보전된 것이고, 그런 시각을 통해 시골과 자연을 매우 소중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이런 것이 철학인가? 이때의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기쁨으로 남아 있다. 이런 기쁨을 우리 아이들과 공유하겠다.

"내가 행복하려면 우리가 행복해야"

며칠 전 등교하면서 운동장에 마치 의무처럼 서 있는 축구, 농구 골대를 보았다. 덴마크에는 크기가 서로 다른 50여 개의 천연 잔디구장이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 무엇보다 부러웠다.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하며 살아왔음에 미안했다. 특히 나와 만났던 아이들에게.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선택지를 주겠다고 다짐해본다. 스스로 더불어 즐거운 과정을 통해 가정이나 학교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해보겠다. 다양한 선택지가 보장되면 누구도 외톨이가 되지 않고 '더불어 함께'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왕따 문제로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를 적대시하고, 양쪽이 모두 힘들어도 해결 방법이 없는 교실에 '내가 행복하려면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그것을 실천하겠다.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성장기라는 것을 가르쳐주며 아이들 기를 살리겠다. 내 인생은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를 만나는 과정의 연속임을 교육과정에 녹여내겠다.

그동안 교육 현장의 변화를 위해 소리를 냈지만 번번이 벽에 부딪히고 소외당했던 기억. 참담함 속에 의기소침했고, 무엇을 위한 몸부림인가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를 도닥거린다.

'아니야. 잘 살아왔어. 꿈틀거린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어.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은 꿈틀거린다는 거야.'

"나부터 꿈틀거리자" 아들이 꿈꾸던 삶을 위해

책을 읽으며 아들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아들도 '행복'과 '사랑'을 붙잡으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아들이 떠난 후 이러한 아들의 뜻에 많은 단체가 연대했고, 많은 시민들이 함께 해 주었다. 덕분에 아들은 혼자 외롭게 갔지만 함께 꿈꾸면 더 좋은 세상이 온다는 귀한 메시지를 남겼다.

고마운 사람들 앞에서, 시민들 앞에서 아들을 가슴에 묻지 않고 부활시켜 영원히 함께 살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머뭇거리고 있다. 아들의 부재를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다.

자신은 없지만 나를 격려하며 살겠다. "내가 할 수 있을까?"의 물음표를 "할 수 있어! 꿈틀거리니까!"의 느낌표로 바꾸어 나가겠다. 이제 나도 당당하게 아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과 아들이 살아가고자 했던 삶을 이어가는 일에 한 역할을 해나가겠다. 

할 일이 생기니 가슴이 조금은 뛴다. 그동안 어찌 살아야 할지 몰라 슬펐고 행복하지가 않았다. 이제 가느다란 희망이라도 잡겠다. 내가 꿈틀거리는 자체가 희망이리라. 아니 지금 나에겐 행복이리라.  

오늘, 지금, 나부터 꿈틀거리자. 꿈틀거리는 자체가 사랑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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