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람 - 도쿄 코엔지에서의 공연 모습

예람 - 도쿄 코엔지에서의 공연 모습 ⓒ 강선영

 
어린 시절 혹은 스무살, 그 무렵을 생각하면 막막하고 답답하던 기억이 많이 난다. 하고 싶은 일들은 끝도 없이 많지만 스스로가 부족해서, 여건이 안 돼서, 많은 것들을 버리지도 제대로 담아내지도 못하고 그저 웅크린 채 끌어안고 있던 시절. 더듬더듬 음악을 처음 시작해나가던 '스무살', 그 무렵은 오랜 시간 동안 나에겐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음악 활동을 계속 이어가며 나보다는 조금 더 어린 나이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그들 안의 단단함, 올곧음, 반짝임, 같은 것들에 여러 번 감명받았다. 2017년 첫 EP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 싱어송라이터 '예람' 역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아직은 조금 어린 나이라거나 공교육 과정을 밟지 않고 대안학교를 나왔다거나, 하는 식의 주변적인 정보들로 그를 규정짓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그렇기에 그의 이야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지난 7월 31일 직접 인터뷰를 하며 새로이 만나게 된 예람은 그간 알고 지내며 생각한 것보다도 치열하게 올바른 길을 고민하며 살아가는 맑은 사람이었다. 지금만큼이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음악가이기도 했다.  
     
21세기 포크 싱어송라이터 Vol. 2 예람

- '예람'이라는 이름이 필명인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뜻인지 설명 한번 부탁드릴게요.
"한자로 재주 예(藝)자랑 물맑을 람(灆) 자를 써서 만든 건데요. '정서현'이라는 원래 이름이 있지만 그건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니까 제 이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필명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가진 재주나 그런 것들을 맑게 보고, 강처럼 나누고 싶은, 그런 의미를 담았고요."

- 공연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짓게 된 이름인 건가요?
"학교에서 열여덟 살이 되면서 성인식이라는 걸 했어요. 그때 학교에서 '앞으로 본인이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이름을 지어보는 시간이 있어서 그때 지은 그 이름을 그대로 가져가게 됐어요."
 
 예람

예람 ⓒ 강선영

 
- 음악 활동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셨나요?
"본격적인 활동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음반을 내고부터였던 것 같아요. 2017년 5월 12일에 EP 앨범 발매를 하면서 시작하게 됐고요. 아무래도 첫 스타트라는 느낌은 연대현장에서 공연을 하며 많이 왔던 것 같아요. 그 안에서 활동을 하면서 저도 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움을 드리고, 다른 뮤지션 분들을 만나면서 도움을 받게 되기도 했어요."

- 처음에 악기를 시작하시게 된 건 언제였나요?
"흔히들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우는 것처럼 꽤 오래 피아노를 배우다가 나중에 전공 클래스로 잠깐 배우기도 했어요. 기타는 중학생 때 처음 하게 됐어요. 학교에 기타 동아리가 있었는데 그 동아리의 선배들이 너무 멋있어서 들어가게 됐어요. (웃음)

선배들한테 기타를 배웠고, 학교에 여러 축제가 많아서 무대에 설 일이 많았어서 처음에는 그냥 연주곡을 했는데요. 하다 보니까 기타가 어려워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좀 더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게 기타보다는 노래였던 거 같아요. 그런데 카피를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때부터 끄적끄적 일상에 대해 곡을 쓰게 된 것 같아요."

- 현재는 어떤 음악을 하고 계신지, 간략하게 소개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작할 때부터 '내 노래는 포크야'라고 시작했다기보다는 '이런 장르의 음악들이 포크라고 불리지' 깨달으면서 포크라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기타로 곡을 쓰고 노래를 하는 게 편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고요."

- 곡을 쓰는 주제같은 건 어떤 식으로 나오셨나요?
"초반에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그 안의 이야기를 가져와서 썼는데, 나중에 조금 더 진지하게 음악을 하면서는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방식이 음악이 된 것이 아닌가 싶었고, 내 이야기가 나 하나만의 이야기인 게 아니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겪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곡을 쓰게 됐어요."

2017년 데뷔 EP 발매, '아현포차' 등 강제집행 현장서 연대 공연
 
 예람 데뷔 EP <새벽항해> 커버 이미지

예람 데뷔 EP <새벽항해> 커버 이미지 ⓒ 예람

 
- 데뷔 EP <새벽항해>를 2017년 5월 15일에 발매하셨고, 그 이전에는 데모 앨범을 하나 만드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두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이나 주제, 진행 방식 등에 대하여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처음에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뭔가 단계를 밟아야 하나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학교를 가고, 공부를 하고 절차를 밟아야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건가?'라고 생각했고요. 저도 처음에는 그래서 입시를 열심히 준비했는데, 입시 공부가 저랑 너무 안 맞고 잘하고 싶지가 않아져서 약간 좌절도 느끼고... 그래서, 내가 아는 범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만큼 해보자 싶어져서 '잘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데모 앨범을 내게 됐어요. 그냥 로직 프로그램에 있는 악기들이랑 아이폰 이어폰 마이크로 녹음을 해서 혼자서 다 만든 게 시작이었어요."

- 그 데모 앨범은 혹시 얼마나 찍으셨나요?
"한 100장~200장 정도 소량으로 찍었어요. 애초에 그렇게 많이 찍을 수 있다는 것도 몰랐고, CD도 어디에서 뽑아야 하는지도 몰라서, 그냥 씨디 뽑아주는 업체에 가서 하고 그랬어요. 곡은 6곡 정도 실었고 '성장'이라거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담은 앨범이에요. 내가 누군가와 비교되고, 나는 되게 작은 사람이고, 그런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지금은 더 이상 부르지 않는 곡들이 실려있습니다. (웃음)"

- EP <새벽항해>의 경우에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을 통해 나오시게 됐죠?
"네, 연대 공연을 통해서 인연이 생겼고, 공연을 하면서 어느 정도 레파토리가 생기면서 "(앨범을) 만들어봅시다" 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돼서 만들게 됐어요.

애초에 앨범 제목을 먼저 정하고 하게 됐어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과학책이 있는데, 오래된 옛날 책이긴 하지만 유명한 책이에요. 우주가 엄청 넓고, 우리가 모르는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런데 그 책에 "우리는 아직 바다의 끝자락에 서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거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내가 새벽 첫 항해를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서 '첫 발을 내딛는다'는 의미로 제목을 붙이게 됐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어서) 아무래도 고민을 많이 하게 되고, 주변에서도 자극을 많이 받게 되는 시기이다 보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어떤 시간이 지나도, 어떤 나이대가 되어도 앞으로 뭘 하고 살지에 대한 고민은 늘 있잖아요? 우리는 언제나 고민하고, 우리는 언제나 불완전하고. 그런 사실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 개인 앨범 작업 이후 <새 민중음악 선곡집> Vol.1에 '나가주오', '그림을 그린다', Vol.2에 '별들의 노래', Vol.3에 '길을 걷다가'를 수록하는 등 컴필 작업에도 활발히 참여하셨는데요. 그 작업들에 관해서 듣고 싶습니다.
"<새 민중음악 선곡집> 첫 번째 음반의 경우에는 소성리 마을을 직접 가기도 했었는데, 사실 처음에는 가서 음악을 작업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가서 그냥 문화제 공연하고 그러려고 했는데, 가서 상황을 보면서 너무 마음이 안 좋고 안타까워서 자연스럽게 곡이 나오게 됐어요.

그 현장 분위기가 그냥 각자 혼자 다니고 할 일 하고, 그런 분위기였어서 혼자 기타를 치고 그러다가 두 곡을 만들게 됐어요. 같이 온 뮤지션들도 곡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우연하게 음반을 만들게 됐어요. 아무래도 연대하면서 연대 현장에서 음악을 만들었고, 그런 민중음악의 흐름이 있다 보니 '새로운 민중음악의 장르', '새로운 운동의 방식'이라는 의견들을 주고받으면서 작업을 이어나가게 됐어요."

- 최근 발매된 이권형님의 <인천의 포크> 작업에도 피처링 및 협업으로 참여하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예전에 권형씨와 같이 공연을 해서 인연이 있었고 다시 만나서 작업을 하면서 서로 생각하는 게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저도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하는 식으로 의견을 내보기가 편했어요. '숨바꼭질'이라는 곡도 권형씨가 처음에 곡의 일부분을 비워두고 연락을 주셨어서. 제가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쓴 부분이 있는데요. 제가 딱 그 부분을 봤을 때 '아 내가 써보고 싶다'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 곡이다 보니까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가 권형씨가 먼저 말을 해주시면서 재미있게 작업을 하게 됐어요."

- '숨바꼭질'의 경우에는 예람씨의 평소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가 아니고, 저음을 많이 활용한 목소리가 담겨서 신선했었는데요. 곡의 테마를 생각하시고 그렇게 되신 건가요?
"권형씨의 음역대에 맞추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고, 저도 녹음 들어가면서 조금 놀라긴 했어요. 제가 하던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런데, 그게 숨바꼭질이라는 주제와 잘 어울려서 재밌었어요.

사실 저는 인천이라는 동네를 거의 모르고 정말 처음 가보는 거였어서 '이 프로젝트에 내가 껴도 되나'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잘은 모르지만 권형씨가 생각하기에는 본인은 서울 사는 인천 사람, 저는 서울 사는 대전 사람이라는 테마가 있다 보니 그렇게 '흩어져 살아가는 삶'이라는 느낌에 대한 이야기가 와닿았어요. 이건 섭외 이후에 나오게 된 이야기인데, 그때 '아, 나도 이 프로젝트에 껴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웃음)"
 

- '숨바꼭질'이 타이틀곡이다 보니 뮤직비디오도 만들게 되셨죠? 그것도 인천에서 촬영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주제가 숨바꼭질이다 보니 의식의 흐름을 담은 듯한 느낌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촬영을 하게 됐어요. '한번 여기 왔다 갔다 해보세요', '한번 여기 뛰어서 지나가주세요' 그런 요청이 있었고, 벽을 치는 듯한 동작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게임의 동작이니까 그렇게 해봤고요.

그리고, 제가 뛰면 비둘기가 날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제가 원래 새를 무서워해서 도저히 못지나가고 멈춰 서게 됐는데, 그 부분을 나중에 합성으로 해주셨더라고요."

- 앞에서도 말했듯이 예람님의 경우에는 '아현포차', '우장창창', '궁중족발' 등 여러 강제집행 현장에서도 활발하게 연대 공연을 해오셨는데요. 그러한 현장에서 연대 공연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처음에는 '우장창창' 현장에서 공연을 하게 됐고, 비슷한 시기에 '아현포차'에서 같이 공연을 하게 됐어요.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한 연대 공연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제가 공연을 하고 싶어져서 먼저 연락을 드리면서 공연을 하게 됐고요.

처음에는 나를 담아내고, 나 자신을 표현해야 하고 그런 부분에 집중을 했었는데요. 현장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까 이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어떤 공간에서 들려지고, 어떤 사람들이 듣고, 그런 부분들이 중요하게 됐어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공연을 하는 경우도 많았고, 다른 공간에서 문화제처럼 하는 경우도 많았는데요. 연대 공연을 하면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더 돌아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고, 이런 상황을 음악을 통해서 알릴 수 있다는 부분에서 많이 감동을 받았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여름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곡을 쓴다면, 내가 이 노래를 가지고 왔을 때 노래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여름이라는 주제가 어떤 공간에서 울려 퍼지고, 어떤 사람이 듣고, 그런 관계가 되게 중요하구나, 내가 왜 이 사람들한테, 왜 이 공간에서, 이 주제를 가지고 말하려고 할까? 그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됐고요."

- 구체적인 상황이 생각나시는 게 있을까요?
"오늘 찍는 라이브 영상을 위해 부른 '성'이라는 곡을 예로 들자면, 이 노래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주고 싶었어요. 이 노래에서의 '성'은 건물을 짓는 의미와, 성별을 의미하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거든요. '내가 짓고 싶은 성별, 내가 지키고 싶은 성이 어떤 걸까?' 그런 젠더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이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지?' 그런 생각을 계속 상기시켜주는 그런 곡이에요."
 
 예람

예람 ⓒ 강선영

 
- 아무래도 연대공연을 하시면서 개인적인 이야기 말고 외부적인 이야기를 하는 곡들이 많이 생기게 된 거네요?
"네, 특히 제가 곡을 쓰는 스타일이나 색깔이 조금씩 변화를 겪게 된 게 소성리를 갔을 때 '나가주오'와 '그림을 그린다'를 만들면서 더 솔직하고 더 직설적인 메시지를 담아내기 시작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 제 경우에는 보통의 공교육 과정을 밟은 사람이다 보니까 어린 뮤지션이 연대공연에 처음 관심을 가진다거나 하는 게 신기하다고 생각했어서,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다니신게 예람님의 삶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쳤는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 궁금하네요.
"아무래도 시위나 사회적인 이슈에 관해서 학교 자체에서 관심이 많았어요. 4대강 사업 반대 시위 같은 경우에도 학교 자체가 쉬고 시위를 나간다든지, 그런 식이었어서 접근하기가 쉬웠어요. 그리고 학교 활동 중에 밀양이나 강정 등에 가서 농활을 하고, 세월호 특별법 시위에 나가서 서명을 받는다거나 그런 경우들도 있었고요. 제가 다닌 학교 외에도 대안학교들에서 그런 경우가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그런 부분이 주가 되는 학교는 아니었구요."

- 가치관이나 사고방식 등이 긍정적으로 보이면서도 '다르다'라는 인상을 많이 받아서 그런 부분이 궁금했네요.
"사실 '진보'라는 이름으로 갇혀있는 듯한 그런 느낌도 받긴 받았어요. 왜냐하면 계속 그러한 사회적인 이슈나 그런 걸 '당연히 도와야 해' 그런 분위기로 가다 보니까. 그런데 그 안에서 당연히 서로 의견이 다를 수가 있으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그런 부분이 활동하면서 부족하지 않았나, 싶긴 하더라구요.

관심을 갖게 하는 동기 부여를 주는 거 자체는 장점이라고 느끼는데, 아무래도 각자의 생각을 듣는 그런 부분이 부족하지 않았나. 그러한 사회적인 이슈에서 개인의 생각을 좀 더 반영하는 게 부족하지 않았나, 싶긴 해요."

여성 축구팀 경험 토대로 '나의 운동장' 소책자 만들어 전시하기도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걷는 기분은
달밤에 젖은 창문밖 별을 따라가
베란다에 앉아서 옥상끝 난간에 서서

떨어지지 않는 별들은 말이 없고
떨어지는 별들은 미련 없이
따뜻해진 품으로 사라지면

기울어지지 않을게요
별빛이 흘러 떨어질 땐
기울어지면 안아줘요
별빛이 흘러 내린 눈물"

- 예람, '별보기' 중에서
 

- 예람님은 이번 7월에 제가 하던 밴드 '유레루나'와 도쿄의 '코엔지'라는 이색적인 지역에 있는 'SUBstore' 및 '마누케 게스트하우스' 공간들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했고, 마찬가지로 도쿄에서 작년과 올해 두 번 '바다넘어 라이브'라는 기획으로 '샤라사'라는 공간에서도 공연을 하셨죠. 그밖에 상하이에서 있었던 '동아시아 지구시민촌' 이라는 행사에서 공연을 하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해외 공연을 해나가고 계신데 그러한 경험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제일 처음에 해외에서 공연한 건 일본에서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어요. '동아시아 지구시민촌' 교류회에서 오픈 스페이스나 강의, 생태, 자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중국, 대만, 한국, 일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고민을 하고 배우고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밤마다 문화제가 있어서 공연하고 술마시고 그런 3박4일 정도의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공연을 하게 됐어요.

동아시아 평화와 관련해서 관심을 가지시는 음악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같이 서로 음악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요, 그 때 알게 된 친구 중에 게스트하우스와 공연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어서 일본에 가서 '바다넘어 라이브' 공연을 기획해서 정식 공연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 '바다넘어'라는 의미도 뭔가 서로 이어져있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국적이나, 나이나, 성별이나, 그런 걸 넘어서 서로 친구가 되는 그런 느낌. 나라끼리는 서로 싸우기도 하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서 서로 친구가 되고, 그런 것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서 공연을 기획하게 됐어요."

- 해외에서 공연을 하면 어떠세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정식 공연장에서 하는 느낌이라면, 해외에서는 따로 공연장을 갔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다같이 놀고 그런 느낌을 더 많이 받은 거 같아요. 그리고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니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나 전달되는 메시지가 다른 게 좋더라고요. 표현 범위가 넓어지는 느낌이고. 그리고, '일본어로 노래를 만든 것도 이 메시지는 일본어로 담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서였기도 하고요."

- 가사를 현지어로 하면 아무래도 피드백이 좀 더 많이 오나요?
"발음 피드백을 받은 적은 있는데, 내용적인 걸로는 그렇게 많이 없었던 거 같아요. 코엔지에서 공연했을 때 일본어로 쓴 '비밀'이라는 곡이 좋아서 한 번 더 공연을 보러 와주신 분이 있어서 보람 있었던 기억이 나네요."

 
 예람 축구소책자 <나의 운동장>

예람 축구소책자 <나의 운동장> ⓒ 예람

 
- 여성 축구팀에서 축구를 하고 있으셔서 그 경험을 토대로 '나의 운동장'이라는 책과 전시를 함께 진행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남자아이들이 운동장을 차지하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그 옆의 벤치에 앉아있는 것이 보편적인 한국의 문화이다 보니까, 저 스스로에게도 무척 신선하게 다가온 부분이었습니다. '여성 축구'라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장이랑 안 친했던 것 같아요. 뭔가 내가 운동장에 나가서 축구를 하고, 공과 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축구를 구경하는 것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우연히 고등학교 끝 무렵 혼성으로 성별 관계없이 시합을 하는 모임이 있다고 해서 나가게 됐어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한 달에 한 번만 한다고 해서 체력을 기를 겸 나갔는데요. 그때 '내가 축구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느꼈고, 완전히 반하게 됐어요. 그래서 못하지만, 땀 흘리고 공차는 게 너무 즐거워서, 나중에 페미니즘 강의를 들으러 갔다가 친구의 친구가 서대문 여성축구회에서 축구를 하고 있어서 소개를 받게 돼서 계속 축구를 하게 됐네요."

- 연령대는 비슷한 편인가요?
"연령대는 비슷하지는 않아요. 주로 삼사십대가 많고, 이십대는 정말 몇 명 없고."

- 정식 시합도 하고 그러세요?
"네, 구에서 운영하는 팀이다 보니까 서울시 S리그에서 마포구, 용산구, 성북구, 은평구 그런 식으로 팀들이 많이 있어서 서로 시합을 하고 그래요."

- 예람님은 그럼 포지션이 어떻게 되시는지?
"제가 처음 배정받은 포지션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수비를 담당했는데, 아무래도 교체 선수이다 보니까 아직은 감독님이 조금 더 살펴보고 계신 거 같아요.

책은 만화 그림이랑 일지를 주에 한 번씩 쓴 게 있어서 운동을 처음 하니까 내 몸의 변화나, 스포츠를 하면서 생각보다 정말 머리를 많이 써야 한다거나, 팀과 협력을 해야 한다거나, 그런 새로운 걸 배우는 것들이 너무 재미있고 신났어요. 언니들이 양말이나 옷을 챙겨주시고 그런 게 너무 재밌어서, 축구를 배우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이나 채식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을 적어서 조그맣게 소책자를 만들고 전시를 했어요."

페미니즘 공부와 채식, 그리고 앞으로의 활동 계획
 
 예람 EP <새벽항해> 쇼케이스 사진

예람 EP <새벽항해> 쇼케이스 사진 ⓒ 강선영

  
- 축구 외에 페미니즘 모임도 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아, 네 그런데 그건 1년 프로젝트로 하고 서로가 바빠서 해체를 하게 됐어요. 'B-GIRLS'라는 모임을 했었어요. 처음에 만나서 서로 여성미술가들에 대한 역사책을 공부하면서 그림도 그리고, 그런 모임이었는데 '외부와 연계할 수 있는 활동을 해보자' 해서, 여성괴물이라는 책을 읽고 '괴물의 밤'이라는 할로윈 파티를 만들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여성들도 즐거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안전한 파티는 뭘까?' 고민이 많았어요. 이런 거 저런 거 생각할 게 너무 많잖아요. 환경도 생각해야 하고, 음식도 비건으로 준비해야 하고, 알콜 논알콜 다 준비해야 하고, 청소년 비청소년 다 행복할 수 있어야 하고, 사진도 찍히고 싶은 사람, 찍고 싶지 않은 사람, 신경 써야 하고, 그런 걸 준비하면서 되게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게 잘 했던 거 같아요. 그리고, 그 파티에서 번 돈으로 전시를 하게 됐어요."

- 평소에 채식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채식을 하시게 된 계기라거나, 채식을 실천하시면서 겪는 즐거움이나 어려움, 추천해주실 만한 채식 음식점 등을 소개해주세요.
"채식도 사실 페미니즘 공부를 하면서 같이 시작하게 된 거였어요.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저도 실천을 못했을 거 같은데, 주변에 채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채식이 어떤 건지 조금씩 인식을 하게 됐던 거 같아요. '한국에서 채식하기란, 이렇게 고달픈 거구나' 그런 느낌도 받았고요.

고양이랑 개는 안 먹고, 소랑 돼지는 먹는 그런 구도의 종 차별을 하고 싶지 않았고 축산업이나 그런 게 자본주의화가 너무 심하게 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문제의식도 있었어요. 여성을 나쁘게 말하는 그런 욕들 중에서 동물을 다루는 것과 같은 위치에서 여성을 '암컷', '암탉' 취급하는 식으로 대상화하는 역사가 있기도 하다 보니 그런 부분에서 채식을 하는 의미도 있어요.

모두가 채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요, 사람들은 정말 다양하니까."

- 다양성에 포커스를 두셔서 하는 활동이 많다는 느낌이네요. 외국에서는 그래도 채식을 실천하기가 좀 더 수월한데, 한국에서 채식을 한다는 것이 어떠신지?
"저도 지금 완벽한 비건은 아니고 비건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페스코에서 유제품도 안 먹는 단계로 실천 중이에요. 아무래도 어딜 가도 고깃집이 너무 많고, 어딜 가도 고기가 최고라는 그런 인식이 있다 보니까, 단체로 어딜 가면 아무래도 고기를 많이 먹는 분위기가 있고 해서 힘든 부분이 있죠. 비건은 정말 힘든 게 어느 식당을 가도 그래도 생선이 들어간 메뉴 하나쯤은 있는데 비건이면 그것조차도 못 먹으니까, 밖에서 식사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축구하면서도 많이 느끼는데 운동을 하다 보면 체력이나 몸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니까 '네가 고기를 안 먹으니까 그렇게 체력이 떨어지는 거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돼요. 어딜 가나, 뭐가 들어가는지 물어봐야 하고."

- 추천할 만한 채식 음식점은?
"합정에 야미요밀이라는 식당이 있는데, 채식 식당하면 아무래도 비싼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야미요밀은 가격대나 메뉴도 다양하고 맛있는 채식 수제버거를 파는 빵집이라 추천해요."
 
 예람 EP <새벽항해> 쇼케이스 사진

예람 EP <새벽항해> 쇼케이스 사진 ⓒ 강선영

 
- 인디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는 생계유지가 안 되다 보니 저 역시도 마찬가지고 보통은 음악 외에 다른 일을 병행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일'과 '음악'을 병행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하고 있고, 일본어 과외도 하고, 그렇게 여러 가지를 조금씩 병행하면서 하고 있어요. 프리랜서 같은 느낌으로 일을 하다 보니까, 주말이라는 게 없고 약간 시간 개념이 애매해지더라고요. 오전에 쉬더라도 오후에 일하게 돼고, 그래서 '쉬는 날이라는 게 뭐지?' 그런 느낌이 있어요. 엄청 바쁜 건 아니더라도 항상 신경써야 하는 일이 하나씩 있고, 그러다보니 쉬는 느낌이 안 들기도 하고. 뭔가 불안정적이고, 불안하고. 장기적으로는 일본어쪽으로 자리를 잡으려고 하고 있구요."

- '최근의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곡을 골라서 라이브 영상을 찍기로 했었는데 '성'을 골라주셨습니다. 노래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가장 나의 고민을 잘 담고 있는 곡이 아닌가, 싶었어요. 아직은 희망사항이지만 1집을 낸다면 타이틀곡으로 하고 싶은 곡이기도 하고. 여성, 나이, 그런 수많은 꼬리표들을 떼고 '인간 정서현, 인간 예람은 어떤 사람이지? 내 정체성이 뭐지? 나는 어떤 사람이지?' 그런 고민을 계속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지금도 계속. 그래서 그런 요즘의 고민을 가장 잘 담고 있는 곡이라서 '성'을 선택하게 됐어요."
 

- 최근에 본인 음악 말고 즐겨들으신다거나, 추천하고 싶으신 음악이 있으신다면?
"아무래도 일본을 다녀와서 그런지 일본 밴드인 버섯제국(Kinoko Teikoku)의 '벚꽃이 피기 전에(Sakurasakumaeni)'를 가장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국 노래중에서는 정새난슬의 '다 큰 여자.'"
 
 예람

예람 ⓒ 강선영

 

- 본인의 음악 중에서 추천하시고 싶은 노래를 3곡 꼽아주세요.
"일단 라이브 영상을 찍으면서 불렀던 '성'. 제가 하고 싶은 메시지가 가장 많이 담긴 곡이라서. '이런 색깔을 가지고 싶다'는 느낌이 잘 나온 거 같아서 일본어 가사를 써서 만들게 된 '비밀' 그리고, EP <새벽항해>가 제가 음악 활동을 이어가는 데 있어서 여러가지로 역할을 해주기도 했고 의미가 있어서, 타이틀곡인 '별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공연, 음반 등)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앞으로는 조금 더 제가 기획하는 공연을 많이 만들어보고 싶어요. 주변에 많은 뮤지션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내 음악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주제로 드러나는지 그런 게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서. 그리고, 음반은 싱글 아니면 1집 중에 내고 싶은데요. 싱글을 낸다면 일본어 곡 2곡을 같이 내고 싶고, 정규 1집을 한다면 '성'을 타이틀곡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1집은 아직 저한테 로망 같은 그런 느낌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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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아가는 생활인이자,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노래로 지어부르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 다른 낯선 세상을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때때로 글을 쓰기도 하는 작업자. '유유'는 한자로 있을 '유'를 두 번 써서 '존재하기에 존재한다'는 뜻으로 멋대로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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