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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는 쉼 없이 글쓰기에 도전하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바로 '시민기자'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시민기자들이 저마다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자신만의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갑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 와중에 이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을까요? 그 노하우를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강재인 시민기자와 그의 부친이 파리에서 함께 찍은 사진.
 강재인 시민기자와 그의 부친이 파리에서 함께 찍은 사진.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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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결혼을 앞두고 내린 충동적인 결정이다. 사실 학창 시절 희망사항이었지만 돈이 부족해서, 시간이 없어서 다음으로 미뤄왔던 계획이다. 결혼 후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로 살기 시작하면 그 계획은 더욱 뒤로 밀릴 것 같았다. 얼마 남지 않은 싱글, 지금이 적기였다. 프랑스 파리행 비행기 표를 끊었다. 동행자는 애인도, 친구도, 어머니도 아닌, 바로 아버지다.

강재인 시민기자의 이야기다. 그는 서먹하고 부담스러운 아버지와의 사이를 회복하고자 과감히 부녀여행에 도전했다. 유럽에 가고 싶다는 계획과 마찬가지로 부녀관계의 개선 또한 싱글일 때가 아니면 어려우리라 판단했다. 여행의 테마는 파리의 문화·예술, 목표는 여행기 공동집필로 정했다.

"구체적인 목적을 정하면 어쩔 수 없이 대화가 오가고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끊임없이 교환하는 여행이 될 것 같았어요. 부녀의 공통점을 생각해보니 저는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아빠는 39년 전에 파리를 취재하셨던 이력이 있었죠. 파리의 문화·예술을 중심으로 여행기를 함께 쓰자고 아빠께 제안한 이유입니다."
 

그의 바람은 실현됐다. 아버지와 파리를 여행한 기간은 단 일주일이었지만, 여행기 공동집필을 위해 "약 1년간 끊임없이 소통하고 대화"했다. 그 결과물이 <오마이뉴스>에서 연재 중인 '아빠와 함께 쓰는 파리여행기'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 중인 그는 시차를 극복하며 아버지와 함께 5개월 동안 지금까지 20편의 기사를 썼다. 올 11월에는 그동안 쓴 글들을 엮어 책으로 낼 예정이다. 

강재인 시민기자에게 기사에 담지 못한 여행 뒷이야기들을 들어봤다. 다음은 그와 이메일로 나눈 일문일답 내용.

아는만큼 보인다

- 독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해주세요.
"한국과 미국에서 대기업 직장인으로 10년 넘게 일한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대학 졸업 후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잠시 일했습니다. 현재는 '아빠와 함께 쓰는 파리여행기'를 연재하며 책 출간을 앞둔 예비 작가이기도 합니다."

- 블로그 같은 개인 페이지가 아닌 <오마이뉴스>라는 매체에 기사를 쓴 이유가 있나요?
"개인 블로그보다는 매체 기사가 제 글의 노출과 파급력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기사가 연재되는 동안 몇몇 출판사에서 출간 의뢰가 와서 <오마이뉴스>의 영향력을 실감했습니다."

- 파리의 문화·예술이 워낙 방대해 가볼 만한 곳이 많았을 듯합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여행지를 선별했나요?
"우선 아빠와 함께 파리와 관련된 자료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다 보니 여행 목적지인 파리의 윤곽이 잡혀갔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 부녀가 붙든 테마가 '파리는 어떻게 해서 예술과 낭만 그리고 문화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아빠와 저는 그 테마의 실체를 파악해가는 첫 실마리를 그림에서부터 찾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장소는 몽마르트르에서 시작하기로 했고요. 인물은 화가 피카소로부터 시작해 로스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작가인 헤밍웨이를 거쳐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이었던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부부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현대의 파리문명이 어떻게 전개됐나 살펴보기로 했죠.

이어 파리의 현대문명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살펴보기 위해 프랑스의 중세에서 현대까지 역사적 현장을 거슬러 답사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여행의 전체 흐름이 어떻게 하면 영화를 보듯 자연스레 흘러갈까 고민하며 동선을 구성했습니다."
 
이야기 속에 반전을 준비하고 있어야

 
파리 여행 중인 강재인 시민기자
 파리 여행 중인 강재인 시민기자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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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 전 사전 조사는 어떤 식으로 했나요?
"약 석 달 전에 여행계획을 세우고, 관련 서적을 30권가량 사서 읽기 시작했어요. 일단 그냥 읽었어요. 두서가 없어도 읽다 보면 머릿속에서 저절로 정리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책만 보는 것도 한계가 있을 듯해 여행 한 달 반 전부터는 웹 자료와 학위논문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 자료를 비교 검토하면서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려 노력했죠.

접할 수 있는 자료를 대충 섭렵한 뒤에는 인물과 장소를 중심으로 내용을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여행 일주일 전부터는 답사할 장소의 동선을 짜고, 그에 따라 조사해둔 필요한 내용을 순서대로 재배치한 뒤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 여행 전후로 취재한 내용이 상당했을 텐데요. 어떤 식으로 정리해 글을 완성했는지 궁금합니다. 
"저같은 경우 우선 '인풋(input)'에 집중하고, 여행을 다녀와서는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가를 정합니다. 그것을 중심 테마로 놓고, 이 테마를 애인이나 친구에게 어떻게 말해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까를 생각해보죠. 그게 제가 글을 구성하는 요령입니다.

'복잡하다', '진부하다', '지루하다'는 반응이 나올 것 같으면 이야기의 순서를 바꿉니다. 그런 반응은 글 쓰는 이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어요. 내가 읽어 지루하면 남도 지루할 테니까요. 그러면 이야기의 순서를 또 바꾸는 겁니다. 어떤 얘기부터 들려줘야 친구가 눈을 반짝이며 들을까 계속 고민합니다.

그다음에는 중복되는 이야기, 늘어지는 이야기, 재미없는 이야기를 쳐냅니다. 글 쓴 양이 10이면 5~7은 쳐내고 버려요. 누군가에게 어떤 사실을 설명하려면 '이들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전제하에 쉽고 간결하게 설명해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끊임없이 살펴보고 고칩니다. 이야기가 늘어지거나 딱딱하게 흐르진 않는지, 동어반복은 없는지, 새로운 정보를 중심으로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지. 그래야 독자의 관심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연재 중인 글도 여러 번 퇴고를 거친 건가요?
"여행기를 마지막 회까지 모두 집필한 상태에서 계속 수정해나가고 있어요. 최종본이 나오기까지 최소 10번 이상의 수정을 거듭하는 편이에요. '문장은 대패질'이라는 말이 생각나네요. 글이란 결코 완성이 없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발표되기 전까지는."

- 대단하네요. 아버지와 함께 여행하고 같이 글을 쓰는 건 어땠나요?
"똑같은 것을 보고 동일한 장소에 가서 대화를 나눴는데도 시선이나 감상이 달랐어요. 당시의 저는 차마 느끼거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아빠는 찾아내시더라고요. 아빠의 깊은 시선과 생각을 아빠의 글을 보면서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삶의 경험과 지식의 깊이에서 오는 차이인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어려웠던 점은 있었어요. 글의 내용이나 구성에 대한 이견이 있을 때 아빠를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했죠. 또한 한국과 미국의 시차가 꽤 되는데, 의논을 하기 위해 매번 시간을 서로 맞춰 연락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 사회생활을 하며 여행기를 장기간 연재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본업이 있을 때와 쉬고 있을 때를 비교해보니, 실제로 글을 쓰는 데 들이는 시간에 큰 차이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본업이 있을 때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자 노력했어요. 출퇴근할 때도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이미 쓴 글을 수정하고, 운동할 때는 생각을 정리하는 등 어떻게든 시간을 활용했습니다. 물론 쉬고 있을 때 독서량이 더 많아지기는 했지만요.

어쨌든 스스로의 목표 마감일을 정하고 정해진 타임라인에 맞춰 매일 조금씩이라도 써 내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글 쓰는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습관만 들이면 본업과의 병행이 어렵지만은 않더라고요.

덧붙여 말하면, 저는 본업과 병행하며 글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모하게 글쓰기로 전향했다가 글의 진도가 안 나가거나 결과가 참담하면 도리어 흥미가 사라지거나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사회생활을 하면 글 쓸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글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를 많이 얻게 되죠. 인간 관계, 사회 구조, 전문 지식도 배우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다는 장점도 있어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글을 씁니다. 고정적인 수입이 있는 상태에서 시작한 뒤, 글에 대한 평가나 수입이 어느정도 궤도에 올랐을 때 작가로 전향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은 수십, 수백 번 고쳐 쓰는 것이다
 
파리 여행 중인 강재인 시민기자
 파리 여행 중인 강재인 시민기자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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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쓰기 싫어질 때는 어떻게 극복하나요?
"글이 안 써질 때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습니다. 몇 번이고 읽은 그 책을 보면서 충전해요. 글 쓰는 동기나 동력을 얻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좋아하는 것을 접함으로써 용기와 의욕을 재충전한다는 점은 같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대상은 저처럼 책이 될 수도 있고,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운동이나 음악이 될 수도 있겠죠."

-글쓰기를 이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나만의 명언이 있나요?
"글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모든 것은 수십, 수백 번 고쳐 쓰는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한 말이에요."

- 여행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신만의 취향과 안목이 들어간 테마를 선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정확한 역사적 사실과 정보, 객관적인 사실 외에 자신만의 시각과 신념으로 느낀 감상, 남들은 잘 모르는 새로운 내용을 발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는 그 하나에서 글의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저 자신이 그러니까요."

- 현재 진행 중인 연재를 마친 후에도 여행기를 쓸 계획이 있나요?
"제가 직장을 다니며 10년 정도 체류한 뉴욕을 돌아보면서 여행기를 쓸 계획이에요. 뉴욕을 처음 여행하시는 분들을 위해 파리의 경우처럼 여행 일정은 일주일로 잡을 겁니다. 파리가 과거의 세계수도였다면 뉴욕은 현재의 세계수도예요. 활력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그 뒤엔 일반 여행자는 모르는 상당한 스토리와 역사와 반전이 담겨 있어요. 저만의 시각과 문체로 뉴욕을 새롭게 소개하고 싶습니다."

- 마지막으로 여행기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세요.
"'모든 문서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쓰기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총 39번이나 새로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입니다. 첫 문장을 쓰는 것이 가장 힘든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가장 신나는 순간이기도 하죠. 쓰고 싶다는 의욕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의욕만 있다면 죽치고 앉아서 쓰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겁니다. 왜? 쓰고 싶으니까요. 그 열정이 39번이나 고쳐 썼다는 헤밍웨이의 노고를 사실은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버린 게 아닐까요.

결국 헤밍웨이는 39번이나 고쳐 쓰는 시간을 계속 즐겼다는 얘기죠. 열정이 재능인 겁니다. 저도 이번 여행기를 10번 이상 고쳐 썼는데 돌이켜보니 그 시간은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나만의 아주 즐거운 시간이었더라고요. 여행기 연재를 희망하신다면 '글쓰기는 낭만이고 즐거움이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해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는 동안 즐거운 여행은 내 안에서 계속되고 있을 거니까요."

[강재인 시민기자 대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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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여행기, #파리여행, #부녀여행, #글쓰기,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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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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