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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대화’로 들어가는 문. 시각을 제외한 우리 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해 일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어둠속의 대화’로 들어가는 문. 시각을 제외한 우리 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해 일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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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했다. 함께 기다리던 다른 사람들의 표정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애써 긴장의 끈을 놓으려 했지만, 속내를 감출 수는 없었다. 하긴, 우리가 일상의 정보 대부분을 눈으로 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포감이 드는 건 당연했다.

첫발을 내디딘 어둠속은 칠흑 그 자체였다. 빛이라곤 한 줄기도 들지 않는 공간이었다. 우려와 달리 어둠속에는 우리의 일상이 존재하고 있었다. 마을과 거리, 시장 그리고 강과 숲이 있었다. 시나브로 긴장의 끈이 풀리고, 빠르게 적응했다.

정말이지 특별한 체험이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곳이었지만,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안내자에 대한 믿음이 쌓이고 의지가 됐다. 서로 얼굴을 볼 수는 없었지만,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함께 생각하고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어둠속의 대화’ 건물.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해 일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어둠속의 대화’ 건물.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을 이용해 일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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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대화' 체험을 기다리는 사람들. 체험은 몸에 지닌 모든 물품을 맡겨놓고 시작된다. 로드마스터가 체험을 이끈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을 기다리는 사람들. 체험은 몸에 지닌 모든 물품을 맡겨놓고 시작된다. 로드마스터가 체험을 이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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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체험에서였다. '어둠속의 대화'는 어둠속에서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마당이다. 빛이 전혀 없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골목을 거닐고,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고, 카페에서 음료도 마신다.

'어둠속의 대화'는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시각을 제외한 우리 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해 일상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교육과 훈련이 된 시각장애인(로드마스터)이 방문자들의 체험을 이끈다. 1988년 독일에서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는 2007년에 들어왔다.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안내 글. ‘어둠속의 대화’는 어둠속에서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마당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어둠속의 대화(Dialogue in the Dark)’ 안내 글. ‘어둠속의 대화’는 어둠속에서 일상을 체험하는 전시마당이다. 서울 북촌마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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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대화' 체험객이 체험후기를 남기고 있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학생을 중심으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객이 체험후기를 남기고 있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학생을 중심으로 젊은 연인들이 많이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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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몸에 지닌 모든 물품을 맡겨놓고 시작된다. 안경까지도 벗어놓는다. 빛이 없는 공간에서 안경도 필요 없는 물건이다. 대신 흰지팡이가 하나씩 주어진다. 로드마스터가 체험을 이끈다.

로드마스터를 따라 들어간 어둠속은 일상의 공간이다. 다만 빛이 없을 뿐이다.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들여놓으면, 새소리와 물소리가 귓전을 간질인다. 일상의 숲에서 듣던 그 소리다. 호젓한 숲속 느낌이다. 잠시 나무의자에 앉아 숲내음을 호흡한다.

나무다리를 건너서 만나는 곳은 배를 타는 선착장이다. 얼굴에 와 닿는 바람결에서 선선함이 묻어난다. 강물에 출렁이는 배 위에 올라타면, 배가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배가 흔들흔들 어디론가 미끄러지는 것 같더니, 서늘한 폭포 아래를 지난다. 폭포에서 쏟아지는 물방울이 얼굴에까지 튄다.

시끌벅적한 재래시장도 어둠속에 존재한다. 손님을 부르는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좌판에는 갖가지 상품이 놓여있다. 비닐로 포장된 상품을 손끝으로 만져보며 포장지 속의 물건을 짐작해본다. 손끝으로 만져서 물건의 이름을 맞춘다는 게 여간 어렵다.

콜라, 사이다 등 음료를 파는 카페도 있다. 손님을 맞는 종업원의 목소리가 활기에 넘친다. 목소리만으로도 밝은 기운을 전해준다. 금세 친밀감이 느껴진다. 캄캄한 공간에서 마시는 음료가 청량하다. 그러나 눈으로 보지 않고, 혀끝으로만 음료의 이름을 분간한다는 게 쉽지 않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 기념품. 체험관 안에 진열돼 있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 기념품. 체험관 안에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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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다. '어둠속의 대화'가 추구하는 목표다. 체험을 하고 나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다. "어둠속의 대화"가 추구하는 목표다. 체험을 하고 나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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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으니, 선입견을 가질 수도 없다. 그 동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게 일상이었다. 당연하던 일상을, 당연하지 않게 만난 셈이다. 모든 것을 시각이 아닌 청각과 촉각, 미각, 후각으로 만나야했다.

사람은 목소리만으로 판단해야 했다. 어둠속에서 로드마스터와의 대화도 목소리로만 이어졌다.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맬 땐 손을 내밀어주기도 했지만, 기본 대화는 목소리였다. 처음 만난 로드마스터였지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일상을 대하는 폭도 넓혀준다. 평소 허투루 지나쳤던 감각기관이 민첩해진다. 상대의 목소리에 담긴 속마음까지도 엿보인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주변의 시각장애인도 떠오른다. 그들이 세상과 만나는 방식을 잠시나마 체험하며 남아있던 거리감을 더 좁힐 수 있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100분 동안 이어진다. 로드마스터가 시종 흥미진진하게 이끈 덕이지만,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100분 그 이상의 가치를 경험하게 해준다. 일상의 재발견이고, 세상과 제대로 만나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보고 느끼게 해준 '어둠속의 대화'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 9월 7일 체험에 참여한 광주·전남행복발전소와 어둠속의빛 사회적협동조합 회원들이다.
 "어둠속의 대화’ 체험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 9월 7일 체험에 참여한 광주·전남행복발전소와 어둠속의빛 사회적협동조합 회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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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어둠속의 대화’ 체험은 지난 9월 7일 광주·전남행복발전소와 어둠속의빛 사회적협동조합 주관으로 이뤄졌다. 이들 단체는 빛고을 광주에서 ‘어둠속의 빛’ 체험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시각장애와 5·18항쟁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광주만의 독특한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고, 시각장애인의 일자리 만들기에도 큰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태그:#어둠속의 대화, #어둠속의 빛, #로드마스터, #시각장애인, #북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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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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