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 <체실 비치에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체실 비치에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리듬, 멜로디 그리고 하모니(화성, 화음, 조화)이다. 사랑도 마찬가지인데 결국 두 사람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불협화음을 낼 때조차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할 수 있느냐이다.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지인 '체실 비치'에 도착한 플로렌스와 에드워드. 언뜻 보기에는 행복한 커플이지만, 음악 선곡을 놓고도 서로 취향이 달라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긴장을 뒤로하고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것도 잠시, 두 사람을 방해하는 룸 서비스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다. 웨이터들에게 서비스를 받는 것인지 사생활 침해를 당하는 것인지 모호한 경계 사이에 놓인다. 플로렌스는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웨이터를 빨리 보내고 싶어 한다. 에드워드는 그 의중을 잃지 못하고 엉뚱한 소리만 되풀이한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로 회상 장면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이들은 어떻게 만났고, 왜 헤어지게 되는 걸까.

<체실 비치에서>라고 하니 막연하고 낯설어서 잘 와 닿지 않는다. 우리나라 관객에게 쉽게 설명한다면 '인천 국제공항에서' 정도로 말하겠다. 공항에 멋들어진 해변은 없지만 결혼식 후 인천 국제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정도 머물렀다가 신혼여행을 출발하기도 하니까. 친구의 친구 정도로 관계망을 넓혀보면, 이들처럼 신혼 여행지에서 헤어졌다는 커플 얘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체실 비치에서>는 196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2018년에 대입해도 성립되는 이야기이다.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두 사람의 가정환경이 너무 달랐다

플로렌스는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고 왕립 음악대학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다. 현악 사중주단의 까다롭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이며, 부모 세대의 과오를 비판하듯 반전운동을 하기도 한다. 가족이 함께 하는 식사 시간에는 딱딱한 이야기가 오간다. 아버지는 딸의 남자 친구와 하는 테니스 친선 경기에서조차 승부욕을 불태우고, 어머니는 바이올린 연주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에드워드는 당시 유행하는 로큰롤을 좋아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노동자 계급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런던대학교에서 역사학을 전공한다. 어머니는 사고로 정신착란증을 앓고 있다. 수석으로 학위를 취득하지만, 가족 중 어느 하나도 특별히 축해주지 않는다. 에드워드는 그런 환경에 익숙한 것처럼 행동하나 결핍이 있을 수 있다. 그 방증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플로렌스에게 첫눈에 반한다. 

연애 당사자인 두 사람은 오직 감정에 충실하다. 부모들은 되도록이면 비슷한 집안과 혼인 가약을 맺고 싶어 한다. 에드워드는 예비 장인의 밑에서 일을 배우는 노력을 기울이고,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의 어머니와 공감대를 나누고 요리를 한다. 일단 그렇게 가족 간의 격차는 봉합되는 것처럼 보인다.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보수적인 커플의 첫 경험

플로렌스의 보수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회상 장면이 나온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는 극장에서 데이트 중이고, 다른 커플들은 주위를 아랑곳 않고 진한 키스를 나누고 있다. 한국과 문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꽤나 개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에드워드도 분위기에 휩쓸려 신체접촉을 시도하지만 플로렌스는 거부 의사를 확실히 한다. 시대 배경보다도 주인공 커플이 유독 애정 표현에 보수적인 편이다. 커플 간에 조화 중에는 궁합도 상당히 요소이다. 요즘은 더 직접적으로 '속궁합'이라고 표현한다. 이 보수적인 커플에게 섹스는 어렵고 낯설다. 에드워드는 서툴고 마음이 앞선 나머지 적절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플로렌스는 어린 시절 모종의 경험 때문에 섹스를 혐오하는 것 같다. 로맨틱한 첫 경험은 무산되고 플로렌스의 트라우마를 불러온다.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불협화음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두 사람은 푸른빛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체실 비치에서 헤어진다. 플로렌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섹스 혐오를 극복하지 못할 것 같자, 자신에 대한 사랑을 전제로 한다면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해도 괜찮다고 한다. 플로렌스의 과감한 제안은 일종의 불협화음이다. 에드워드는 성격상 그런 불협화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꾹 참고 눌러왔던 자기방어적이고 자존심 강한 성격이 터져 나온다. 감정을 크게 표출하기 전에 차분한 대화를 했다면 적어도 이렇게 허무한 이별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커플에게는 대화와 배려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불협화음과 협화음을 넘나들며 조화로운 연애와 결혼 생활을 이어가기 어렵지 않을까.

오프닝에서 이어지는 바로 다음 시퀀스를 떠올려본다. 웨이터의 실수로 와인병이 바닥에 떨어지고 와인이 쏟아진다. 그만큼 다시 물로 채운다. 웨이터가 호스트인 에드워드에게 와인 테이스팅을 서빙하지만, 와인이 묽어진 것을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랑했던 감정을 다시 주워 담으려 해도 담을 수 없고, 물로 희석된 와인은 더 이상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플로렌스의 마지막 마음이 에드워드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체실 비치에서> 스틸컷 ⓒ 그린나래미디어(주)


시각적, 음악적인 완성도
"나는 언제나 소설을 시각적으로 구상하고, 긴 서술적 구절을 통해 구상하지 않는다. 장면 전체가 완성되도록 세부 묘사를 하는 편이다."

원작자이자 직접 각본까지 맡은 이언 매큐언은 소설을 쓰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말했다. 체실 비치에서 펼쳐지는 두 사람의 이별 시퀀스가 시각적으로도 완벽했던 이유가 아닐까. 카메라의 수평이 플로렌스 쪽으로 시소처럼 기울어져 있다. 이미 두 사람의 균형이 틀어진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플로렌스의 마음이 더 무겁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플로렌스는 그 길로 쭉 걸어서 카메라 앵글 바깥으로 벗어난다. 아마 떠나는 자신을 붙잡아주길 바랐을 테지만 에드워드는 그 자리에 서 있다.

플로렌스와 에드워드의 가정을 상징하는 것 같았던 자그마한 보트도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는 마지막 시퀀스의 복선이 된다. 플로렌스는 계속 나아가서 같은 사중주단의 첼리스트와 결혼을 하고 아이와 손주까지 거느리게 됐다. 에드워드는 노년에도 여전히 혼자인 것 같다. 플로렌스의 감정은 오리지널 스코어(음악감독 댄 존스와 바이올리니스트 에스더 유)와 기존의 클래식으로 대신했고, 에드워드의 감정은 삽입곡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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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씁니다. 블로그에 동시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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