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한 편으로 인생이 바뀐 배우들이 있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만든 배우들의 결정적 영화를 살펴보면서 작품과 배우의 궁합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 기자 말
 
 <머드> 영화 포스터

<머드> 영화 포스터 ⓒ (주)프레인글로벌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외모를 가졌다는 것이 배우에게 그리 유리한 조건은 아니다. 처음에 주목받기야 쉽겠지만 '제2의 누구'라는 꼬리표를 벗기 어렵기 때문이다. 매튜 매커너히도 그런 배우였다. 폴 뉴먼을 연상시키는 푸른 눈과 금발의 이 미남배우는 첫 영화를 찍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연 자리를 꿰차며 차세대 할리우드 스타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지만 배우로서 그의 역할은 영화의 기둥이 아니라 장식품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누군가의 잘생긴 남자친구이거나 잘생긴 동료로 고정된 이미지에 머물면서 배우로서 그의 존재감은 점점 옅어졌다. 

매튜 매커너히는 당시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2011년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를 기점으로 그의 필모그래피는 확실히 달라졌고 그의 연기도 한층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좋은 영화에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증명하며 2012년 <머드>에서 그의 연기는 정점을 찍는다.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엘리스(타이 셰리던)라는 소년이 있다. 열네 살의 그는 미시시피강 수중가옥에서 어쩌면 이혼을 할지도 모르는 엄마,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소년은 대부분의 시간을 단짝 친구 넥본(제이콥 로플랜드)과 함께 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마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은 무인도에서 나무 가지에 걸린 보트를 발견하고 자신들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기뻐한다.

사람이 일부러 나뭇가지에 올려놓았을 리도, 하늘에서 보트가 떨어졌을 리도 없는 이 보트는 어떻게 나뭇가지에 걸리게 됐을까? 미스테리한 일이 아닐 수 없는 이 발견은 머드(매튜 매커너히)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와의 미스테리한 만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까맣게 그을린 피부에 뱀 문신을 하고, 신발 굽에는 못으로 십자가를 박아넣은 미스테리한 머드에게 엘리스는 빠르게 빠져든다. 사랑하는 여자, 주니퍼(리즈 위더스푼)를 위해 살인까지 저질렀다는 머드의 이야기는 영화나 소설처럼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고 소년은 머드가 사랑을 지킬 수 있도록 그를 돕는다. 마치 머드의 사랑이 이루어지면 자기 주변의 실패한 관계들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희망을 머드의 사랑에 투영한다. 

<머드>는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이자 한 소년의 성장기를 다룬 영화다. 항상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어딘가를 향해 흐르는 물줄기처럼 영화는 아무리 지키려고 애를 써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만 하는 것들을 엘리스, 아이도 어른도 아닌 사이에 있는 소년의 눈을 통해 그려내고 있다.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영화의 배경으로 나오는 아칸소는 미국 중남부 미시시피 강 서쪽에 위치한 주(州)로 빌 클린턴의 고향이라는 것 말고는 특별히 내세울게 없고 도시의 번잡스러운 것과도 거리가 먼, 영화에서 10대 아이들이 모여서 노는 장소가 마트 주차장일 만큼 놀 거리가 없는 곳이기도 하다. 자못 지루해 보이는 곳이지만 엘리스에게 미시시피강은 그가 알고 있는 세상의 전부다.

삶의 터전이자 생계 수단이 되어주는 미시시피강을 그는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떠나면 관리국에서는 강가에 있는 집을 허물어 없애버릴 것이다. 부모의 이혼과 더불어 찾아올 변화가 그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서로 사랑해야 마땅한 부모가 이혼을 하고, 평생 살아온 공간을 떠나야 하는,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머드와의 만남은 엘리스에게 도피처가 되어준다.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엘리스의 눈에 비친 머드는 비록 살인을 저지르기는 했어도 범죄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쁜 놈들로부터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그 무엇도 희생하고 감내하는 진짜 남자다. 누군가에게는 머드와 주니퍼의 사랑이야기가 지긋지긋한 인연의 굴레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엘리스에게는 온갖 장애를 극복하고 도달하는 진정한 사랑으로 보이는 것이다. 엘리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머드와 주니퍼의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 머드를 돕기 시작한다. 부모의 이혼을 막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나 머드의 경우는 다르니까. 마치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증명해보이려고 하는 것처럼 엘리스는 머드와 주피터에게 몰입한다.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머드는 주니퍼가 운명의 사랑이라고,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사랑해왔다고 그들 관계를 소설 속 이야기처럼 얘기하지만 머드를 어린 시절부터 봐온 톰(샘 셰퍼드)과 주니퍼가 얘기하는 이들의 사랑은 머드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상적이지가 않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상처를 입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어떠한 사건들에 의해 그것을 치유하고, 다시 사랑에 빠질 준비를 한다. 이것은 곧, 다시 상처를 받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다. '머드'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러한 덫에 빠진 인물이다."
제프 니콜스 감독


총알을 막아주는 셔츠를 입고, 뼈를 태워 액운을 몰아내고, 독뱀에 물린 자신을 구해준 주니퍼를 평생 사랑하는, 자신이 믿는 것들(미신에 가까운)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한 나머지 그 본질이 변해버렸음에도 그것을 놓지 못하고 매달리는 인물이 바로 머드인 것이다. 
 
 영화 <머드>의 한 장면

영화 <머드>의 한 장면 ⓒ (주)프레인글로벌

 
엘리스가 믿었던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위대한 사랑은 엘리스를 배신하고, 상처받은 소년은 독뱀이 바글거리는 진흙에 빠져버린다. 결국 사랑을 믿지 말라는 아빠의 말이 옳았던 걸까? 갈 데까지 가서야 놓아야 하는 사랑을 놓을 수 있게 된 머드는 잠에서 깨어난 엘리스에게 그 말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고, 엘리스는 연인이 헤어진다고 해서 그들의 사랑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광활한 미시시피 강의 대자연은 또 하나의 캐릭터로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며 머드라는 인물과 조화를 이룬다. 머드가 주는 야생과 미신의 미스테리함은 엘리스 뿐 아니라 관객을 매혹시키는데 매튜 매커너히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머드> 속에서 그의 연기는 훌륭했다. 단지 표정과 대사로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는 연기가 아니라 '머드'라는 인물 전체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이다. 감독 제프 니콜스는 그를 향해 '머드'를 연기하기 위해 태어났다고까지 극찬했다. 

이후 그는 에이즈 환자를 연기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에까지 출연하며 상승세를 이어간다. 2014년 방영된 TV드라마 <트루 디텍티브>에서는 캐릭터 연구를 위해 한 권의 논문을 쓸 만큼 대단한 열정을 보였고, 그의 연기와 드라마는 대중과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소비되었던 그의 이미지는 필모그래피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캐릭터로 부활했다. 결국 좋은 작품에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는 것을 매튜 매커너히의 커리어가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머드 매튜 매커너히 제프 니콜스 타이 셰리던 아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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