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삵>의 포스터.  연극 <삵>은 1943년 기자들과 인쇄공의 삶을 통해 기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본다. 지난 16일 연극은 막을 내렸다.

▲ 연극 <삵>의 포스터. 연극 <삵>은 1943년 기자들과 인쇄공의 삶을 통해 기록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되돌아본다. 지난 16일 연극은 막을 내렸다. ⓒ 공연창작단 '짓다'

 
"기억을 위한 기록은 얼룩이 된다!"

연극배우의 일침이 극장 안을 가득 메웠다. 뒷좌석에선 흐느낌들이 들려왔다. 공연창작단 '짓다'가 만든 연극 <삵>(박효진 작, 연출)은 지난 16일 마지막 공연을 했다. 하지만 연극의 잔상과 울림은 여전하다.

연극은 어느 인쇄공이 오랫동안 삭힌 이야기를 한으로 풀어낸다. 2018년, 한 고물상 노인이 젊은 청년을 만난다. 노인은 오랫동안 인쇄소의 터였던 고물상을 지켜왔다. 노인은 젊은 옷차림의 청년을 기억하지 못했다. 가까스로 어렴풋이 기억해낸 청년은 옛 동료인 <매일신보> 기자 김건치였다. 노인은 그곳에서 김건치와 함께 인쇄공으로 일했던 이승시였다.

김건치는 황국에 반하는 글을 썼다는 이유로 인쇄공으로 전락했지만, 신문의 의미를 지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이제 배경은 1943년 <매일신보>를 만드는 기자들과 인쇄공의 시선과 목소리로 바뀐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활자의 의미가 사라진 시대다. 과연 글을 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연극은 그 의미를 추적한다.

김건치와 노천명, 노천명과 박화성

<매일신보> 기자들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노천명 시인도 포함돼 있다. 김건치와 노천명은 시대를 해석하는 견해 차이로 자주 다툰다. 노천명은 일제가 아니었으면 조선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한다. 김건치는 민족을 배반하고 황국의 신민이길 종용하도록 글을 쓰는 노천명을 비난한다.

노천명은 "계절이 변하듯 자연스러운 이치다. 그것이 제구포신(除舊布新 :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베풀다)이란 말이다"라고 말한다. 김건치는 "민중의 귀가 되고 민중의 눈이 되고 민중의 소리가 되어야지. 그게 진짜 기자 아니냐"고 반문한다. 다만 노천명은 같은 조선인으로서 노천명은 자신을 방패삼아 조선 사람들이 알아야 할 글자들을 인쇄하라고 조언한다.

시인이자 기자였던 노천명은 목포 출신의 문인 박화성과도 설전을 벌인다. 박화성은 군중들의 피폐한 삶을 다룬 작품들을 가져온다. 이에 대해 노천명은 교사로 살아가던 박화성이 어떻게 군중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머리로 쓴 글은 진실 되지 못하다며, 시대를 제대로 읽고 황국신민이 되는 길을 글로 적어야 한다고 노천명은 주장한다. 이 가운데 화가 김병기가 노천명을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갈등을 중재하려고 노력한다.

<매일신보> 인쇄소는 일제의 검열을 받아야 하는 신문 이외에, 정말 해야 할 말들이 담긴 잡지를 만들어 낸다. 이 가운데 인쇄공 이승시는 차마 황국신민으로서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실을 수 없어 인쇄판의 글자를 바꾼다. 이 일로 인쇄소와 기자들은 잡혀가고 동료인 박준범은 강제 징집된다. 박준범은 "조선 땅에서 조선인의 영혼으로 떳떳하게 살아보고 싶다. 그때는 흙을 파먹더라도 배부를 것 같구나"로 한탄했다. 절망의 시대는 가혹하게 머리를 짓누른다.

절망의 시대를 살아간 젊은이들의 처절한 기록

시간은 흘러 다시 2018년이 된다. 이승시 앞에는 김건치와 노천명, 김병기와 박화성, 박준범이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한다. 오랜 기간 인쇄소라는 활자의 상징과 그 터를 지켜온 수고를 말이다.

연극의 제목인 삵은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소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 고양이과 동물은 왜 사라진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무관심 때문이 아닐까. 의미가 사라져 버린 삵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마치 활자처럼 말이다. 삵은 "멈추지 말아요. 당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믿어요. 기억을 위한 기록"이라고 보듬어준다. 삵이 사라진 세상, 기록의 의미 역시 희미하다.

무언가를 기록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록이 의미가 있으려면 기록이 얼룩이 되도록 온몸으로 시대를 끌어안아야 한다. 기억과 기록이 흐릿하다는 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대로 살아가고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문이 신문다우려면 당연히 시대의 아픔을 기록해야 하는 것이다. 이처럼 당연한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도 어려운 일이 되어 버렸다. 종이는 이제 폐지로 변해버렸고 거짓과 위선의 뉴스들만이 예전처럼 진실로 가장해 있다.

이번 연극은 '잊혀져가는 것에 대하여 1-인쇄공 이야기'이다. 잊히는 이유는 기록하지 않아서이고,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삶의 의미가 진실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2편은 인쇄공 이외에 누구의 혹은 무엇의 이야기를 다룰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연극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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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문화, 과학 및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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