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영화에 내 견해를 붙이는 게 무섭다. 이 영화가 세상에 나와 관객들이 보시기 전에 내가 언어라는 틀에 가두고 가공을 시킬까봐 두렵다."

배우 전여빈은 영화 <죄 많은 소녀>를 두고 "내 새끼"라고 표현했다. 영화에 대해 말할 때면 눈도 목소리도 젖어있었다. 영화 촬영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었지만, 그는 아직 촬영장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여빈은 40분이 넘는 인터뷰 시간 내내 사력을 다 하고 있었다. 그것이 기자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기자가 준비해 온 질문은 하나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전여빈에게 "지금 어떤 감정으로 인터뷰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지난 11일 <죄 많은 소녀> 개봉 직전 전여빈을 만났다.

"당시에 있었던 생생한 감정을 거짓 없이 이야기하고 싶다. 내 안에 있는 기억을 생생하게 표현하려고 에너지를 쓰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때 겪었던 마음 그대로를 전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을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죄 많은 소녀, 영희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영화 <죄 많은 소녀>는 친구 경민의 실종 사건 이후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친구 영희(전여빈 분)가 의심을 받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다. 경민의 주변 사람들은 그의 실종을 모두 영희의 탓으로 돌리기 시작한다. "네가 경민이 죽는 거 보고 싶다고 그랬다던데?"라는 형사의 물음과 친구들의 괴롭힘은 영희를 궁지로 몰고 간다. 영희는 점차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다.

전여빈은 영화 <죄 많은 소녀>를 두고 "선인도 악인도 아닌 보통 사람들이 죄책감을 가진 채로 발버둥친다. 그 아픈 사람들, 그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같이 촬영을 해나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김의석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반영됐다고 알려진 <죄 많은 소녀>는 지난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에서 배우 전여빈에게 각각 '올해의 배우상'과 '독립스타상'을 안겼다. 영화는 올해까지 여러 국제 영화제에서 후보로 초청받았다.

"난 우리 영화가 제일 좋고 자부심이 많고 자랑스럽다. 뜨겁고 치열한 마음으로 촬영을 했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는 미지수였다. 내가 내 새끼를 예뻐하는 관점과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봐주시는 건 전혀 다른 일이지 않나. 다행히 영화제에서 좋게 평가 받고 있구나 싶어서 안도했다. 표가 굉장히 빨리 팔려나가고 매진도 됐다고 한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뜨겁고 강한 기운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이 영화는 내겐 분신 같은 작품이다. 내 분신을 보면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영화의 힘듦을 안아주시는 분들이 더 많으시더라. 힘들지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해주셨다. 그 반응에 힘을 얻었다. 내가 확신을 갖고 함께 한 영화에 응원과 지지들이 돌아오니까 용기가 됐다."


"영화를 잘 보내주고 싶다"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개봉을 한 지금, 전여빈은 "이 영화를 잘 보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들뜨지 않으려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조금씩 추가 촬영을 했다. 영희가 내 안에서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영희를 정리할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오히려 개봉에 앞서 지금은 더 들뜨지 않으려고 한다. 생일잔치는, 축제는 이미 끝났고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젠 정말 영화를 잘 보내주고 싶다.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죄 많은 소녀>가 나라는 사람을 이루는 장기 중에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전여빈은 이 말을 마치고 잠시 한숨을 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배우를 하기 위해 버텼던 시간들이 있었다. 시간을 잘 쌓아가고 있었던 거라고, 스스로를 다시 믿어보게 되는 기회가 됐다. 영화를 찍기 전에 배우로서 많이 불안했다. 밥벌이를 하는 어른으로서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선택하고 고집피울 수 있을까. 그때 온 <죄 많은 소녀>는 나 같은 사람에게 너무나 큰 기회처럼 느껴졌다.

'내가 배우로서 이런 현장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이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현장에서 내가 더 이상 배우를 못 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 영화를 마치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다 이룬 것처럼. 그리고 내가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데 너무 열렬한 반응을 느끼게 됐다. 아, 2년만 더 버텨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디 한 번 해보자! 버틸 수 있어! 버틸 수 있게 됐어! 그렇게 감사한 마음으로 보냈다."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여자들><여배우는 오늘도><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 등 장단편 영화의 주조연과 <밀정>, <인랑> 등 상업 영화 단역을 거친 이후 전여빈은 <죄 많은 소녀>를 만난다. 그리고 '괴물 신예'라는 별명을 얻게 되면서 드라마와 CF에 출연한다. 이화정 씨네21 기자는 "여성의 역할이 제한적인 한국 영화에서 전여빈의 도착이 줄 새로움의 영역이 부디 많아지길 기대한다"라는 호평을 남겼다.
 
전여빈은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안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면서 "나도 내가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문소리 선배님도 그렇고 김의석 감독님도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나를 캐스팅해주셨다. 내게 계속 존칭을 써주셨고 모든 배우들을 존중해주셨다. 우리 현장은 배우와 스태프 간의 믿음이 아주 단단하게 구축돼있는 현장이라는 걸 몸소 보여주셨다. 배우로서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제작비가 너무 없었다. 제작비가 초반에 다 떨어져 감독님이 매일매일 빚을 지면서 영화를 찍었다고 한다. 감독님은 특히 내게 첫 테이크부터 고도로 집중하는 연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상업 영화처럼 길게 테이크를 갈 수가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왜 운동 선수의 준비된 자세 있지 않나. 경기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이미 몸 상태를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의 콘디션으로 훈련을 해놓지 않나. 그렇게 준비하기를 원하셨다."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전여빈은 "촬영하는 세 달 동안 영희 안에 아주 빠져있으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그 세 달을 "영희로서 마음이 이미 찢겨져 더는 찢겨질 데도 없는 상태"로 설명했다.

"영희 역은 계속 침전이 돼있어야 했고 심연을 들여다봐야 했다. 사람들이 죄책감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그 사건을 제대로 바라봐야 했다. 그런데 그 감정이라는 게 다시 올라오려는 성질이 있는 것 같다. 살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감정을 놔버리고 싶고 영희로서 그만 슬프고 싶을 때도 있었다.

배우로서는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인데 영희를 놓고 있을 때 촬영에 들어가면 감독님은 바로 안다. 내가 집중을 하는 건지 아니면 흉내를 내는 건지, 진짜 영희가 돼있는 건지 다 안다. 감독님이 촬영한 걸 보여주면서 '어떠세요' 하면 나도 안다. 이게 아니라는 걸, 내가 흉내를 냈다는 걸 안다. 이렇게 계속 끈질기게 잡아주시는구나, 잡아주는 사람 앞에서는 흉내만 낼 수 없다. 다시 해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승리의 기억"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그 시간들을 보내고 전여빈 배우가 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는 "영희라는, 죄 많은 소녀라는 기억이 내 안에 생겼고 배우로서 승리의 기억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절망을 바로 보려고 했다는 것, 슬픔과 절망에서 도망가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 포장하지 않으려고 한 것. 진짜는 그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아픈 기억은 묻어놓기 바쁘다. 빨리 잊힐 수 있으면 잊고 싶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는 만큼은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는 긍정의 힘!이라고 말하지만 부정적인 감정은 부정탄다고 싫어하고 감추려 한다. 그 감정을 끄집어냈다. 부정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너무 선하고 약하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었다. <죄 많은 소녀>에서도 사람들은 나쁘려 하지 않는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잘 해보고 싶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싶은 사람들이 발버둥친다. 인간의 한계일 뿐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고 변한 게 무엇이냐고 기자님께서 물어보셨다. 부정을 직시하는 것, 숨긴 것을 드러내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죄 많은 소녀>는 감독님의 경험이 모티프가 된 허구의 이야기다. 감독님은 그 당시 느꼈던 그리움과 절망, 설명할 수 없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두 내게 아주 세세하게 전해주셨다. 감독님 자신의 인생이 정말 많이 바뀐 지점이 있는데, 바로 사람을 잃었을 때라고 그랬다. 정말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이상한 감정이 다가왔다고 한다. 죄책감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비열한 마음이나 부정적인 마음도 들었다고.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자기 자신을 보면서 너무 힘드셨다고 하셨다. 이 영화를 통해서 촉각으로 아파해주셨다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마음을 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죄 많은 소녀' 배우 전여빈 영화 <죄 많은 소녀>의 배우 전여빈이 11일 오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잇다. ⓒ 이정민

 
맨 마지막 촬영 때 감독님께서 '여빈씨, 우리는 다 알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직도 더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알아갔으면 좋겠어요'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아팠다. '맞아, 계속 알아가야 하지' 생각했다.

처음부터 내가 캐스팅되지 않아도 나는 이 영화를 응원할 거라고, 정말 진심으로 응원할 거라고, 잘 되기를 바란다고, 감독님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는 배우를 만나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이야기는 진심이었다. 너무나도 같이 하고 싶었지만 욕심을 부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캐스팅) 결과를 받았을 때는 너무 기뻤지만 한 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이 왔다.

'왜 저를 뽑으셨어요?' 그런 기분 좋은 질문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오디션에 붙고 작품을 맡는 게 하나의 기분 좋은 이벤트일 수 있다. 축하할 일이고 축제 같은 기분? 그런데 이 영화를 만드는 시간이 축제일 것 같지 않더라. 감독님은 본인을 또 얼마나 파고들고 고발하면서, 자기를 미워하면서 애를 쓰면서 영화를 만들까. 캐스팅 연락을 받았을 때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거짓말하지 않겠다, 연기로 척하지 않겠다, 진짜로 사람들의 아픔에 같이 참여하겠다, 그런 마음이었다."

죄많은소녀 전여빈 부산국제영화제 김의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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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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