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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한 달여 앞둔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의원의 출산휴가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기자회견 하는 "예비엄마" 신보라 의원 출산을 한 달여 앞둔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8일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의원의 출산휴가 규정을 담은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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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일까? 늘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정치인이니만큼 출산과 육아에 집중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출산하는 여성 국회의원'은 여전히 신문에 나올 정도다.

과거 기사를 찾아 보자. 2012년 19대 총선 때 부산광역시 연제구에서 당선된 김희정 당시 새누리당 의원은 임신 8개월 차 몸으로 선거운동을 뛰어야 했고, 이후 출산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그런데 언론들은 김 의원이 '최초의 임신부 국회의원 당선인'이란 기록을 세웠다며 치켜세우곤 했다. 씁쓸한 풍경이었다.

3년 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임기 중 출산도 화제가 됐다. 언론들은 장 의원을 '임기 중 출산한 유일한 국회의원'으로 기록했다. 하지만 그는 임기 끝까지 이 사실을 동료 의원들에게 숨겨 왔다. 장 전 의원은 지난해 <더팩트> 인터뷰에서 "임신(과 출산)을 구실 삼아 나중에 '청년, 여성'은 뽑으면 안 되겠다는 얘기를 들을까봐 걱정했다"고 말했다.

또 다시 등장한 '예비맘' 국회의원

최근 또 다시 출산을 앞둔 의원을 소개하는 뉴스가 쏟아졌다.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이 9월 13일부터 45일간 출산휴가를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사실 국회의원의 출산휴가는 명확한 법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신 의원은 지난 8월 여성 국회의원의 산전후 휴가를 보장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심사 중이다. 현실은 아직 바뀌지 않았다.

산전후 휴가(출산휴가 포함)와 육아휴직 사용률이 과거보다 증가하긴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의 2017년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를 보면 여전히 사각지대가 많다.

법으로 꼭 보장하도록 한 출산휴가다. 그런데 300인 이상 사업장의 사용률은 68.3%, 100~299인 이상 사업장은 70.6%, 30~99인 이상 사업장은 70.6%였다. 반면 10~29인 사업장의 사용률은 45.5%, 5~29인 사업장은 55.9%로 더 낮았다.

의무가 아닌 육아휴직은 더 심각하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54.2%다. 그나마 가장 높은 편이다. 사업장 규모가 작아질수록 육아휴직 사용률은 점점 떨어져 5~9인 사업장에선 15.8%에 그친다. 10~29인 사업장의 경우 20.4%다. 규모가 큰 회사에선 그나마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보장하지만,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쓰기 힘든 여성 노동자들이 많다는 뜻이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장하나 전 의원은 2015년 당시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사업주의 명시적 허용이 없더라도 근로자가 신청만 하면 육아휴직을 할 수 있도록 바꾸자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개정안은 19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고, 지금까지 비슷한 법률안이 발의된 적은 없다. '명시적 허용' 여부에 따라 육아휴직의 정당한 사용이 제한받는 상황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운 일이다.

더 이상 응원하지 않아도 될 날을 위하여
 
 
ⓒ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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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한국당 지지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출산휴가를 떠난 신보라 의원을 축하하고 싶다. 정치적 지향을 떠나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며,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 권리를 지키려는 이를 위한 격려다.

하지만 신 의원의 출산휴가 기사에는 '국민의 대표가 45일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말이 되냐'는 투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이런 반응들 때문에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을 위한 출산정책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부디 성찰해 보길 바라는 것은 지나칠까.

저출산이 문제라고들 하지만, 사실 저출산은 결과다. 진짜 문제는 출산하기 힘든 사회 환경이다. 신 의원은 지난 13일 <시사오늘> 인터뷰에서 "90일 휴가도 검토했지만, 45일을 쉬는 것도 못마땅하게 보는 분들도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당 원내대표 김성태 의원은 올해 2월 신보라 의원의 임신 소식을 알리며 "우리 당에 애국자가 탄생했다"고 칭찬했다. 아이를 낳는 것이 곧 국가의 성장동력이었던 시절은 지났다. 이제는 아이를 낳는 것조차 녹록지 않은 시대다. 그런데도 신 의원의 임신을 이렇게 칭찬하는 것은 문제다. 최근 논란이 불거진 김성태 의원의 '출산주도성장' 발언 역시 성장의 동력을 출산에서만 찾고자 하는 게으른 발상이다. 이러니 저출산 해결은 요원하지 않을까.

신보라 의원의 대담한 도전을 응원한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응원을 할 필요가 없는 세상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태그:##신보라, ##일 가정 양립, ##육아휴직, ##출산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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