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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집 한 채를 짓고 나면 10년은 늙는다고들 한다. 우리집을 지어주시는 분들과 마음도 잘 맞고, 주변 이웃분들의 양해와 배려로 별다른 마음고생을 하고 있지는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세상사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으랴.  

복병은 바로 올여름 더위였다. 올해 더위의 무지막지함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별일 없는 일상을 보내기에도 이 더위는 무척 힘든 일이었지만, 이 더위 속에 우리집을 짓느라 고생하는 분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다.

폭염에 한옥을 짓는다는 것
 
우리집 목공 책임자 한창봉 대목. 건축가는 종이 위에 도면을 그리고, 목수는 그 도면을 현장에서 구현한다. 나무는 한 번 자르면 붙일 수 없으니 집 구조 전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필수다. ⓒ 황우섭
 우리집 목공 책임자 한창봉 대목. 건축가는 종이 위에 도면을 그리고, 목수는 그 도면을 현장에서 구현한다. 나무는 한 번 자르면 붙일 수 없으니 집 구조 전체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필수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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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아닌 공사 일정 때문이다. 한창 공사 진도를 쭉쭉 빼야 하는 상황이지만, 날이 너무 더운 탓에 진도가 더뎌지고 있다. 한옥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현장에서 하나하나 손으로 만들어나간다. 

기와를 내리고 올리는 것도 그렇고, 벽체를 세우고 바닥을 만드는 것도 그렇다. 일하는 분들의 성실과 책임감의 정도와 관계 없이 외부 환경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 공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비가 오면 공사를 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서늘한 곳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어려웠던 올해의 더위는 여러 모로 현장을 어렵게 했다. 일주일이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던 공정이 열흘을 넘기는 건 일상다반사이고, 보통 오전 7~8시부터 시작해서 5시 전후로 끝나는 하루의 일정을 서너 시에 마감하는 경우도 많았다. 

한낮의 더위를 뚫고 무리를 해서 일하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면 더 큰일이니, 일하는 분들이 스스로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시는 거려니 짐작하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것 말고는 따로 할 말도 없었다. 

일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한없이 기다리고 싶지만, 나도 어찌 할 수 없는 사정이 있으니 공사장을 다녀올 때마다 마음이 복잡했다. 그렇다고 현장이 올스톱인 건 당연히 아니었다. 속도는 더디지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목수들에게 도시형 한옥은 썩 반갑지 않다

한옥은 목조주택이다. 나무로 시작해서 나무로 끝나는 것 같다. 집의 뼈대도 나무고, 집의 맵시를 좌우하는 것도 나무다. 이 모든 나무를 현장에서 다 깎고 다듬고 세우고 채운다. 그러자면 손이 많이 가니 여러 사람이 와서 작업을 하면 수월하기도 하고 속도도 빨라질 것은 자명하다.  

하지만 내가 짓는 집은 그럴 수 없다. 보통 크기가 작은 살림집, 특히 도시형 한옥의 경우에는 여러 명이 와서 함께 작업할 수 없다.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일하는 현장을 보러 갈 때는 다들 일을 마치고 돌아가셨을 때 맞춰 찾아가곤 한다.

왜냐. 현장에 내가 서 있는 게 그분들께는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발 디딜 곳도 제대로 없고, 목재를 운반하는 분들이 이쪽 모서리에서 저쪽 모서리로 돌아갈 때 공연히 그 끝에 서 있다가 잘못해서 맞기라도 하는 날에는 대략 난감이다.
 
끌질하는 장목수님. 사진 속에 보이는 모든 나무를 하나하나 손으로 자르고 다듬고 세우고 붙인다. ⓒ 황우섭
 끌질하는 장목수님. 사진 속에 보이는 모든 나무를 하나하나 손으로 자르고 다듬고 세우고 붙인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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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질하는 이 분은 박목수님이시다. 목수님들은 때로 전동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전히 손에 익은 연장을 주로 사용하신다. ⓒ 황우섭
 톱질하는 이 분은 박목수님이시다. 목수님들은 때로 전동기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여전히 손에 익은 연장을 주로 사용하신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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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질하는 김목수님. 자르고 깎고 다듬고. 나무는 이렇게 몇 단계를 거쳐 이 집의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 황우섭
 대패질하는 김목수님. 자르고 깎고 다듬고. 나무는 이렇게 몇 단계를 거쳐 이 집의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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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들은 도시형 한옥에서 일하는 걸 썩 달가워하지 않기도 한다. 아무래도 작은 살림집 한옥의 시장 수요는 아직 크지 않으니, 이 규모에 맞는 일을 능숙하게 하는 분들이 아주 많지도 않다고 한다. 아주 오랫동안 한옥의 목수를 찾는 현장은 주로 문화재를 수리하는 곳이었다. 

문화재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그러니 보기에 멋지고, 전통 구조에 충실하게 맵시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모기가 들어와도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도시형 살림집 한옥은 사람이 살 집이니 그래서는 안 된다.

난방과 단열도 고려를 해야 하고, 심지어 방충망도 달아야 한다. 뭘 볼 줄 모르는 나 같은 집주인은 속이야 어떻든 무조건 보기에 예뻐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상황이 그다지 편치가 않을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일할 공간도 좁아 불편한 데다가 당연히 소음과 먼지로 주위에 폐를 끼치게 되는데, 혹시 이웃분들이 찾아와 항의라도 하는 날에는 일이고 뭐고 공연히 욕만 먹고 기분 상하기 일쑤다. 게다가 이웃집과의 경계도 애매한 경우가 많아 마음껏 솜씨를 뽐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날아갈 듯한 처마의 곡선을 만들고 싶지만, 옆집 지붕과 딱 붙어 있는 지붕의 끝을 놓고 보면 그런 처마의 곡선은 언감생심이다. 같은 조건이라면 넓은 마당 있는 집에서 여유를 부리며 솜씨도 한껏 부려 만들고 싶은 마음이 크기야 클 것도 같다. 이런 여러 애로사항을 견디느라 그렇지 않아도 힘든데 날씨마저 도와주지 않으니, 이분들 입장에서는 참으로 고단한 현장이 아닐 수 없었다.  

노동의 신성함에 절로 목례가 나오는 현장
  
집의 뼈대를 세우고 구조를 만들어내는 목공팀은 주로 서너 명이 한 팀을 이룬다. 우리집처럼 작은 집이라도 평균 한 달은 예정해야 한다. 집 상태가 부실하거나, 손 봐야 할 것이 많은 경우는 당연히 더 걸릴 테고, 비가 많이 오거나, 올여름처럼 너무 심한 더위가 이어지면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기계처럼 정해진 일정대로 착착 진행할 수가 없고, 그것에 따른 여러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누구를 딱히 탓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여러 사람을 모아서 일을 할 수도 없다. 이들이 운신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나 저러나 이분들 손끝만 바라볼 처지다. 보고 있는 사람 속이 바짝바짝 마른다.

보고 있는 사람은 물론 나만이 아니다. 우리집 설계를 해준 선한공간연구소 엄현정 소장님도 올 여름 무척 고단했을 것이다. 공사의 총 책임자인 서울한옥 대표 황 목수님은 입은 웃고 있는데 눈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집을 짓는 게 왜 노화를 촉진시키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그래도, 다시 말하지만 진도는 조금씩 나가고 있었다. 나무라는 것이 한 번 자르면 다시 붙이기 어려우니 서로 손발이 잘 맞아야 한다. 그야말로 원팀의 숙련도가 현장의 속도와 집의 구조를 좌우한다. 

현장에서는 흔히 '오야지'라고 부르는 목공 책임자와 두세 사람이 하나의 현장을 맡아 진행한다. 우리집의 경우에도 그랬다. 급할 때는 다른 한 팀이 더 와서 해주기도 하셨지만 대부분 한창봉 대목과 장 목수님, 박 목수님, 김 목수님 이렇게 네 분이 우리집의 목구조를 맡아주셨다.
 
이 분들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노라면 집 한 채가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 황우섭
 이 분들이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노라면 집 한 채가 서서히 완성되어 간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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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에 따라 정해진 크기에 끌질과 톱질, 대패질을 거친 나무가 기둥으로 거듭나는 순간. ⓒ 황우섭
 쓰임에 따라 정해진 크기에 끌질과 톱질, 대패질을 거친 나무가 기둥으로 거듭나는 순간.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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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이런 연장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까지 한다. ⓒ 황우섭
 현장에서 이런 연장들을 볼 때마다 나도 모르게 숙연해지까지 한다. ⓒ 황우섭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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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 이 분들 일하실 때 찾아가서 하는 일이라고는 고생 많으시다, 잘 부탁 드린다, 감사하다는 별 도움 안 되는 인사를 건네는 것, 시원한 음료수 한두 병 돌리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집을 짓고, 그 비용을 감당하고, 그 분들은 비용을 받은 만큼 일하는 것이니 건축주가 요구할 건 요구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그분들 일하는 걸 보고 있자면 그런 마음은 1도 들지 않는다. 무섭게 쏟아지는 태양의 열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나무를 깎고 자르고 세우고 덧대는 이 분들의 손놀림을 보고 있자면 노동이라는 단어에 신성함이라는 수식이 붙은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주로 책상에서 교정지와 씨름하는 나의 노동도 물론 신성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밥을 먹고, 옷을 사고,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내 삶을 스스로 유지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끌질과 톱질, 대패질에 몰두하느라 옷이 땀에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공연히 자세를 바로 하고 목례를 드리게 된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집은 사람이 지은 집이다. 저 빛나는 노동의 신성함으로 이루어진 집. 

내가 살고 있는 신도시 아파트 근처에 수십 층짜리 미니 신도시가 지어지고 있다. 우리집보다 늦게 시작한 그곳은 이미 주변을 위압적으로 내려다 볼 만큼 하늘 높이 치솟아 있다. 분양 당시보다 얼마얼마가 더 프리미엄으로 붙었다더라, 하는 것이 뉴스로 쏟아진다. 

하지만 나는 주차장도 없는 골목길 귀퉁이에서 오늘도 기둥 한두 개, 창호 문틀 몇 개를 세우고 만들기 위해 비지땀을 흘리는 목수들의 손끝으로 지어지고 있는 그 집의 현장을 떠올린다. 그때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갈 집이 참으로 귀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혜화1117, #황우섭, #서울한옥, #선한공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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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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