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데이터로 한 사람의 삶을 얼마든지 재구성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SNS 사용 기록, 곳곳에 설치된 CCTV 녹화 영상, 신용카드 사용 기록 등을 이용하면 인물이 움직인 동선뿐 아니라 취향과 관심사 같은 개인적인 특성까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영화 <서치>의 데이빗(존 조)은 실종된 딸 마고(미셸 라)를 찾기 위해 바로 '데이터'에 매달립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IT 기업 직원 데이빗은 딸 마고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 친구들과 스터디를 마친 마고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채 사라집니다. 담당 형사 로즈메리(데브라 메싱)는 마고가 가출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만, 데이빗은 끝까지 마고를 찾기 위해 분투하죠. 마고의 이메일과 SNS를 뒤져 친구들과 접촉하고, 실종 당일의 행적을 조금씩 재구성해 나갑니다.  

첨단 기기에 둘러싸인 삶
 
 영화 <서치>의 스틸컷. 다양한 컴퓨터 화면만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영화로서, 설정을 최대한 활용하여 극적 재미를 높였다.

영화 <서치>의 스틸컷. 다양한 컴퓨터 화면만으로 이루어진 독특한 영화로서, 설정을 최대한 활용하여 극적 재미를 높였다. ⓒ 소니 픽쳐스


컴퓨터와 인터넷, 스마트폰은 어느덧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핸드폰 알람으로 잠에서 깨어나고 스마트폰으로 SNS를 보며 잠이 들 때까지 한시도 떨어져 있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다움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 와중에도 인간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감정과 복잡한 생각이 교차하니까요. 

구글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는 만 27세의 감독 아니쉬 차간티는 바로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서치>에는 영화 내내 컴퓨터 모니터로 보이는 화면만 나오지만, 그 안에는 인물의 감정과 고민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상대에게 문자를 보낼 때 보이는 잠깐의 망설임, 화상 통화 하는 상대와의 교감, 동영상을 볼 때 느끼는 감정 등이 고스란히 살아 있습니다. 이 영화가 표현하는 인물의 감정은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가슴에 와닿습니다. 마고가 태어난 이후 데이빗 가족의 역사를 보여주는 도입 시퀀스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로서의 재미도 충분합니다. 미스터리는 관객과 머리싸움을 벌이는 장르로서, 모든 단서를 제공하되 관객이 이야기 속 상황을 잘못 이해하도록 만든 후 마지막 순간에 진실을 밝히는 게 특징이죠.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밑밥을 깔아 두고 논리적으로 정당하게 회수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서치>는 이 부분이 매우 깔끔합니다. 이 역시 관객이 컴퓨터 화면에 뜨는 내용만 볼 수 있다는 설정을 잘 활용한 결과입니다. 

인상적인 부분은 미디어나 첨단 과학 기술 자체보다는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신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기성세대나 학부모들은 젊은 세대가 새로운 기술과 문화에 너무 빠져드는 것을 무작정 나쁘게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술 자체는 가치 중립적입니다. 무턱대고 사용하지 못하게 막기보다는 악용하지 않도록 바른 가치관을 심어 줘야 합니다. 

주연을 맡은 존 조의 연기는 매우 뛰어납니다. 복잡다단한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얼굴 표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 표현을 시도하는데, '아이를 잃은 중년 남성'의 감정을 아주 잘 전달하는 데 성공합니다. 미국 사회에서 소수 인종으로서 겪는 비애 같은 감정 역시 기존의 다른 출연작에서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옵니다. 감독이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여러 번 부탁했다고 했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박스오피스 역주행의 이유, 빛나는 '완성도'
 
 영화 <서치>의 스틸컷. 주인공 데이빗 역할을 맡은 존 조는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영화 <서치>의 스틸컷. 주인공 데이빗 역할을 맡은 존 조는 딸을 찾는 아버지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한다. ⓒ 소니 픽쳐스



알려진 대로 이 영화는 개봉 첫 주말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 80억 규모의 한국 영화 <상류사회>를 눌렀고, 이번 주 들어서는 전체 흥행 1위로 올라서며 주말까지 쭉 선전할 기세입니다. 지금껏 외국 영화가 한국 영화보다 흥행이 앞서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할리우드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지도 않은 미국 독립 영화가 국내에서 한국 주류 상업 영화를 앞서는 일이 흔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빛나는 완성도가 큰 몫을 했습니다. <서치>에는 억지스러운 반전이나 신파조의 설명도 없고, 가족 간의 사랑을 도식적인 감정으로 무미건조하게 표현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딸을 찾는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아버지의 노력을 실감 나게 보여주는 가운데 촘촘히 깔아 둔 복선을 빠짐없이 성실하게 회수하면서 관객의 만족도를 높입니다. 포털 영화 평점의 신뢰도에 대해 말이 많지만, <서치>의 영화 평점이 다른 영화에 비해 오랫동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반면, 경쟁작 <상류사회>는 그만한 만듦새를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배우가 나오는 한국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흥행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올해 초 개봉한 <염력>이나, 여름 시즌의 <인랑>도 완성도 측면에서 일반 관객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면서 흥행에 실패한 경우입니다.

우리 관객들은 한국 상업 영화에 아주 높은 예술성을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저 대중 영화가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재미를 바랄 뿐이죠. 이 '재미'는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나 장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에 걸맞는 최소한의 완성도에서 나온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영화 <서치>에서 구글 검색은 아버지 데이빗의 추적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구글의 엄청난 검색 능력도 데이빗이 적절한 검색어를 집어넣을 때에만 유의미한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한국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한국 영화계의 기술력이나 영화 제작 시스템은 충분히 발전한 상태입니다. 이 시스템에 어떤 키워드를 집어 넣을지는 만드는 사람의 몫입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이냐 흥행을 노린 눈요깃감이냐, 창의적인 성찰이냐 구태의연한 답습이냐. 이런 질문들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영화 <서치>의 포스터. 미국 저예산 영화이지만 국내 영화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 <서치>의 포스터. 미국 저예산 영화이지만 국내 영화 시장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소니 픽쳐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cinekwon.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서치 존조 데브라메싱 아니쉬차간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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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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