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있는 영화관에 한참 흥행하고 있던 애니메이션 영화를 관람하러 갔다. 오랜만에 퇴근길에 언니랑 함께 영화를 보는 날이었다. 영화 상영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티켓을 찾고, 영화 상영 입장시간에 맞춰 상영관에 들어가니 전날 예매한 두 자리 중 한자리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좌석 티켓을 핸드폰으로 다시 확인해봐도 두 좌석 모두 내가 예매한 자리가 맞았다. 광고 상영 시간이 되면서 주변 전등까지 모두 꺼져 시야가 어두웠다. 자리에 먼저 앉아 있던 사람에게 여기가 우리 좌석이라고 말하자, 팝콘을 먹던 손으로 자신의 가방에서 포토 티켓으로 출력한 당일 날짜 티켓을 말없이 꺼내 보여 주었다.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한 좌석을 두 명이 예매한 건가?

언니랑 내가 당황하자, 먼저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가 "그럼 제가 다른 자리에서 볼 테니 두 분이 앉으세요. 영화관에서 실수한 것 같은데 제가 비켜 드릴게요"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다.

당황한 우리는 제안을 만류하며 자리를 벗어나 빈 좌석에 앉았다. 하지만 언니가 옮겨 간 자리에도 임자가 찾아왔다. 영화가 시작됐고 결국 언니가 영화관에 확인해 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몇 초 되지 않아, 옆 좌석에서 앉아있던, 포토 티켓을 가진 사람이 자기도 같이 가서 확인해보겠다며 팝콘과 가방 등을 챙겨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르게 상영관을 벗어나는 여자가 수상해 보여서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나간 여자와 언니를 찾아 상영관 밖으로 나갔다.

검표하는 곳으로 가보니 언니 혼자 영화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언니가 나를 발견하고 왜 나왔냐고 해서 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 언니를 따라 나와서 나도 바로 나왔다고, 혹시 먼저 나간 여자를 못 봤냐고 물으니 아무도 안 나왔다며 직원과 언니 모두 황당해했다.

사전에 검색하면 나오지 않지만, 영화관에는 "관치기"라 불리는 행위가 존재한다. 직원의 설명의 의하면 전산 상의 실수로 같은 좌석이 발권되는 경우는 없으며, 표값을 지불하지 않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행위를 "관치기"라고 하는데 이 위법행위에 언니와 내가 당한 것이었다.

대형 영화관의 경우 영화 상영관마다 직원들이 앞에서 검표를 하기도 하지만, 언니와 내가 방문한 영화관은 한 개 층 전체를 영화관 입구에서 먼저 검표하고 각각의 상영관으로 들어가는 방식이었다. 보통 '관치기'는 같은 날 다른 시간대에 먼저 영화를 본 사람이 영화 시간대를 확인하고 청소시간 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숨어 있다가 다시 다음 상영시간에 맞춰 자리에 들어온 식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상영관 의자 사진.

상영관 의자 사진. ⓒ 픽사베이


우리가 보려고 했던 영화의 포토 티켓과 날짜만을 보고 관치기에 당했던 것이다. 팝콘에, 유료로 돈을 추가해 발권해야 하는 포토 티켓에, 같은 애니메이션의 프로모션 상품을 줄줄이 가지고 있던 여자가 태연하게 사기를 쳤던 것이다.

이 영화를 보려고 며칠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나와 갑작스럽게 자리가 부족해져서 뛰어다녔던 언니 모두 화가 났다. 돈이 없는 사람이 그랬다면 조금이라도 이해해 볼까. 그 사람이 갖고 있던 관련 상품들만으로도 이미 영화 티켓가격을 넘어간다. 상영관 등이 꺼져서 어둡기도 했고, 당황한 내가 티켓을 제대로 확인할 틈이 없어 쉽게 당하고 만 것이다.

영화관 측에서 관리가 부실했던 부분에 대해 죄송하다며 다음날 같은 영화로 표를 다시 예매해줬지만, 영화를 보기 위해 들떴던 마음만큼 실망스러운 마음도 컸다.

혹시 영화관에 방문했을 때 비슷한 일이 발생한다면, 예약한 티켓의 자리를 잘 찾았는지 확인해 보시고, 상대방의 티켓을 꼼꼼하게 확인한 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당사자들 모두 함께 영화관 직원을 찾아 가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관치기를 한 상대방은 가벼운 마음에 했겠지만 막상 그 일을 당한 나와 언니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같은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고, 누군가 비슷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기에 이 글을 남긴다.

덧붙이는 글 '극장에서 생긴 일' 공모 기사입니다.
관치기 영화관 극장에서생긴일 영화관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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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고 낯선 일반인입니다. 낯익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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