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광복절 EBS의 다큐는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했다. 그 문을 연 건 1920년대의 중국 길림성 봉오동이다. 13일 방송된 EBS 1TV 광복절 특집 다큐멘터리 <발굴추적, 어느 삼형제의 선택>은 독립군 연합부대가 중국 길림성 봉오동 골짜기에서 일본 정규군을 섬멸한 독립전쟁 사상 최초의 대첩 봉오동 대첩을 다뤘다. 봉오동은 일제시대 독립군을 길러낸 기지 중에서 우당 이회영 선생이 서간도 지역에 설립한 신흥 무관학교와 최재형이 무장투쟁을 준비한 러시아 연해주 지역과 함께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EBS는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4개국 취재를 통해, 홍범도 장군의 봉오동 전투를 가능케 했던 봉오동 신한촌의 독립군 기지를 방송 최초로 공개했다. 또한 독립군 기지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간도 제1의 거부라 불렸던 최진동, 최운산, 최치홍 삼 형제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소개한다.

간도 최씨 삼형제의 바통을 이어 받은 건, 일제의 만행을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취재한 기록 작가 하야시 에이다이의 일대기이다.([관련기사]: 일본의 역사적 만행과 치부 드러낸 일본인, 그가 남긴 한마디) 14일 방송된 EBS 광복절 특집 다큐 <하야시 에이다이의 끝나지 않은 기록>에서는 생전 '조선인 강제연행의 진실'을 비롯해 '종군위안부', '사할린 조선인 학살사건' 등 총 57권의 기록을 남긴 일본인을 추적했다.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 EBS


그리고 15일 EBS <다큐 프라임>은 광복절 특집으로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및 3.1 운동 100주년을 향한 거대한 여정 <역사의 빛 청년>(10부작)을 시작했다. 그 첫 발은 15일 방송된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이었다. 1년여의 여정을 이끈 이는 다름 아닌, tvN <꽃보다 할배 리턴즈>로 돌아온 배우 이순재다. 광복을 맞이하던 해 이순재는 12살,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던 광경을 기억하던 아이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되어 역사의 빛이 되었던 청년들의 역사를 설파한다.

이봉창, 윤봉길 의사를 도운 하와이 노동자들의 피땀어린 돈

그렇게 이순재 선생과 함께 떠난 하와이,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의 휴양지이기도 하지만 사람 키보다 굵고 거친 사탕수수만이 빼곡히 자라던 고난의 역사가 서린 땅이다. 1903년 1월 13일 102명의 한국인이 처음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고국을 떠난지 한 달, 저마다 사연은 많았다. 결국 저물어 가는 조선은 백성들을 막막한 태평양을 넘어 낯선 이방의 땅으로 몰았다. 호놀룰루에 도착한 한국인들은 30여 곳 사탕수수 농장 등지에서 일을 했다. 새벽 4시 반부터 꼬박 12시간을 일해야 하루 70센트를 받을 수 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이들로부터의 편견, 차별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들은 먹고 살아가는 것 자체만으로도 버거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허리춤을 더 졸라맸다. '하와이 애국단'이 바로 그들이다. 이순재와 취재진은 1923년 결성돼 독립 운동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표였던 임성우 선생, 현도명 선생 이외에는 훈장은 커녕 조명된 적도 제대로 없는 애국단의 나머지 단원들의 행적을 밝히고자 하와이로 떠났다.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 EBS


오아후 섬의 와이아와 올리브 거리에는 1907년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 하와이에 이민 온 동포들은 39개의 교회를 중심으로 모여들었고, 그 중 올리브 연합 교회에 이민의 역사가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이순재와 동갑인 김창완 노목사는 자식들이 팔고 떠난 집의 쓰레기 더미를 뒤져 이민의 기록을 모았다. 누렇게 낡은 기록들 속에 숨겨진 역사, 비밀 단체였던 하와이 애국단의 은밀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낡은 영수증과 종이 갈피에서 찾아낸 기록을 뒷받침 했던 건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였다. 중국 상해의 임시정부는 당시 처참한 상황이었다. 김구 선생은 독립을 위해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처지를 '거지 소굴'이라 표현했다. 쓰레기통을 뒤져 배추 뿌리로 연명하고, 독립운동은 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김구 선생은 결국 해외 동포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하와이의 임성우 선생이 편지를 보냈다.

"생색낼 일을 하고 싶은데 자금이 필요하다면 주선하겠다."

반가운 답신이었다. 하와이 동포들의 독립자금은 생존에 급급했던 임시정부의 전술적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일본의 만주 침략이 노골화되던 시기였던 1930년대 하와이로부터 1천 달러가 왔다. 그 돈으로 임시정부는 우리 독립운동사의 쾌거인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준비한다. 이 1천 달러는 어떻게 마련된 돈이었을까?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의 한 장면. ⓒ EBS


당시 하와이 교포들의 월급은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다. 김창완 노목사가 찾아낸 대한독립 의연금 영수증에 써있는 금액 10원, 그 돈은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의 한 달 월급 15달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노목사는 "이 돈을 보내고 그 분들은 뭘 먹고 살았나"라고 감탄했다. 현도명 선생의 막내 딸은 어머님이 당시 아버님에게 '가족들도 좀 생각하라'고 짜증 섞인 하소연을 하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먹을 것조차 아껴가며 모은 돈을 고국으로 보낸 동포들의 이름이나 존재는 지금 찾을 길이 없다. 현도명 선생의 막내 따님의 기억을 통해 찾아낸 한 사람이 있었다. '영호 아버지.' 그 분을 다큐 제작진은 김예준씨라 추측한다.

인색했던 아버지의 숨겨진 역사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 스틸 컷.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 스틸 컷. ⓒ EBS


제작진은 김예준씨의 아들 영호씨를 찾았다. 하지만 아들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미군 기지에서 세탁소 일을 하셨던 김예준씨는 아들에 따르면 엄격하고 인색하기 이를 데 없었던 분이었다고 한다. 침대 매트리스 아래에 돈을 모으면서도 자식들은 어려서부터 아르바이트를 하게 만들었다고. 그래서 영호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무덤조차 찾지 않을 만큼 냉정한 기억만 남겼다고.

그러나 아버지는 사실 한인애국단에서 독립 운동 자금을 관리하셨던 분이었다.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돈을 벌게 만들면서도, 침대 매트리스 밑에 숨겨뒀던 돈을 바다 건너 임시정부의 독립 운동 자금으로 보냈다.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은 늙은 아들은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후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비록 늦은 소식이지만 자식들에게 전하며, 그저 인색한 아버지가 아닌 자랑스러운 독립 운동가 아버지를 기린다.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 스틸 컷.

15일 방송된 EBS <역사의 빛 청년> '하와이 애국단을 찾아서' 편 스틸 컷. ⓒ EBS


그런데 왜 당시 하와이의 독립 운동가들은 빛바랜 추억으로만 기억되어야 할까? 거기엔 하와이까지 미친 일본의 영향력이 있었다. 미국 영사관 직원이 밀정이 돼 독립운동 단체의 계보까지 만들던 상황에서 당연히 임정의 독립 자금 지원은 비밀 활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슬픈 독립 운동의 역사도 있었다. 당시 하와이 사회는 교육, 문화 운동에 주력하자는 이승만 계열의 '동지회'와, 무장 투쟁을 해야 한다는 박용만 계열의 '국민회'의 갈등이 첨예했던 시절이었다. 미국에서는 이승만의 영향력이 컸던 시절이었기에 국민회 계열의 한인애국단 사람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활동이 해방 이후에도 알려지지 않은 데는 조국에서 대통령이 된 이승만과 그 수하들의 횡포도 있었다. 심지어 해방 후 고국에 돌아가고 싶었던 한인애국단에게 비자조차 내주지 않을 정도였다.

1997년이 되어서야 한인 애국단 임성우 선생은 건국훈장 독립장을, 현도명 선생은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그리고 2018년 EBS 다큐를 통해서 겨우 김예준 선생님의 존재가 밝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한인 애국단 여덟 분 중 나머지 분들의 '존재'는 그림자에 쌓여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BS광복절 다큐 역사의 빛 청년- 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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