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8월 12일) 헤드라이너를 맡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마지막 날(8월 12일) 헤드라이너를 맡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지난 11, 12일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절기 상 입추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폭염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인천 국제업무지구역 바깥으로 나와, 행사장까지 걸어가는 데도 온몸이 땀으로 흥건해졌다. 공연을 보기도 전에 지칠 지경이었다. 그 때, 먼 발치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 이거다!' 싶었다. 다시 기력을 되찾고 무대를 향해 달려갔다. 펜타포트 방문은 올해가 다섯 번째, 이렇다 할 새로움은 없었다. 그러나 록 팬들이라면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설렘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에 비해 사람이 확실히 많아 보였다. 올해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라인업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과 라인업을 연계하는 과정에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등 중량감 있는 뮤지션들을 많이 섭외했으며, 장르적 다양성 역시 확보했다.

반가운 얼굴들, 그리고 '지금의 신예들'까지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토요일(8월 12일)에 공여한 칵스(The Koxx)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토요일(8월 12일)에 공여한 칵스(The Koxx)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12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칵스의 에너지는 가공할 만한 것이었다. 보컬 이현송은 무대 이곳 저곳을 종횡무진했고, 숀(SHAUN)은 화려한 키보드 연주로 분위기를 띄웠다. 대표곡 '12:00'가 연주될 때는, 수많은 관객들이 이 노래를 따라 했으며, 원래 알고 있던 친구들인냥 기차 놀이를 하기도 했다. 일요일에 출연한 '워크더문(Walk The Moon)'도 멋진 순간을 만들었다. 워크더문은 'Shut Up And Dance', 'One Foot' 등 댄서블한 곡을 잇달아 연주하며 팬들을 춤추게 했다. 지난 해 출연했던 DNCE처럼 맡은 임무를 온전히 수행했다.

'추억의 록스타' 후바스탱크(Hoobastank) 역시 오랜만에 한국 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보컬 도그 롭은 고음 부분에서 힘들어 하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  공연 후반으로 갈수록 목이 풀렸다. 전체적으로는 기대 이상의 라이브를 들려주었다. 특히 공연 말미에 'The Reason'의 전주가 울려 퍼질 때에는, 뒤쪽에서 공연을 보고 있던 사람들조차 한 걸음에 무대로 달려왔다. 히트곡의 힘이란 과연 이런 것이었다.

한편 메인 스테이지 옆과 중앙에는 살수차와 호스가 출동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긴 호스를 들고 관객들을 향해 물을 뿌렸다. 옷이 젖는다며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시원한 물세례와 음악이 어우러지니, 다른 피서는 필요하지 않았다.

"내 공연이 슬픔으로 가득 한 공연이 되지 않길 바랍니다."

린킨 파크의 멤버 마이크 시노다가 공연 중 팬들에게 한 멘트였다. 시노다는 故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난 후 처음으로 한국 팬들 앞에 섰다. 시노다는 'Crossing A Line', 자신의 솔로 앨범 < Post Traumatic >에 수록된 곡들을 직접 라이브로 들려주었다. 랩과 노래, 피아노 연주를 번갈아 가는 것은 물론, 팬들과 여러 차례 눈을 맞췄다. 'Bleed It Out' 등 린킨 파크 시절의 곡들도 선곡에 포함되었다. 특히 차분하게 편곡된 'In The End'(Linkin Park)는 린킨 파크의 오랜 팬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시노다는 원곡에서 자신이 맡았던 랩 부분을 부르고, 체스터 베닝턴이 불렀던 후렴구는 오롯이 관객들에게 맡겼다. 팬들은 목이 터져라 베닝턴의 빈 자리를 대신했다.

브릿팝의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들의 영웅은 단연 스타세일러(Starsailor)였다. 첫 곡부터 대표곡 'Alcoholic'을 부르며 관객들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보컬 제임스 월쉬(James Walsh)는 60분 동안 흔들림 없는 라이브를 들려주었다. '이 곡을 한국에서 부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라며 'Tell Me It's Not Over'와 'Four To The Floor'를 부르더니, 팬들의 뜨거운 박수에 힘입어 앵콜 'Good Souls'를 선사했다. 이번 펜타포트에서 팬들의 감정을 가장 고양시킨 공연 중 하나였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서치모스(사진)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서치모스(사진)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일본에서 가장 힙한 밴드'로 사랑받고 있는 서치모스(Suchmos) 역시 많은 관객들에게 박수받았다. 애시드 재즈와 소울의 그루브, 록의 에너지를 한껏 품은 공연이었다. 'Stay Tune', 'YMM' 등 인상적인 베이스 라인이 유독 귀에 잘 들어왔다. 특히 마지막 곡인 'Life Easy'가 연주될 때는, 관객들이 원을 형성해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강강술래를 하기도 했다. 보컬 요스케는 첫 해외 공연이 만족스러웠는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40분의 짧은 공연 시간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이외에도 청춘과 사랑을 노래하는 밴드 네버 영 비치(NEVER YOUNG BEACH), 그리고 새소년과 ADOY, 세이수미 등 우리 나라 인디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밴드들 역시 존재감을 과시했다. 마지막 날 메인 스테이지에 오른 혁오 역시 자신들이 서브 헤드라이너로서 손색이 없다는 사실을 라이브로서 입증했다.

이것이 전설의 품격이다!

 둘째날(8월 11일) 헤드라이너로 공연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둘째날(8월 11일) 헤드라이너로 공연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토요일의 헤드라이너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는 보는 이들로 하여금 경이로움마저 느끼게 했다. 정신없이 반짝이는 스트로브 조명, 드라이 아이스, 공연에 생동성을 부여한 카메라맨의 활약, 정교하고 풍부한 사운드, 프론트맨 트렌트 레즈너의 존재감까지. 빈틈없는 공연의 완성이었다.  특히 마지막에 'The Hand That Feeds', 'Head Like A Hole', '그리고 'Hurts'로  마무리되는 순간은 압권이었다. 데이브 그롤이 트렌트 레즈너를 자신의 세대에서 가장 창의적인 뮤지션으로 뽑은 것이 이해되었다. 또한,  나인 인치 네일스는 조명을 어떻게 활용해야 관객들이 흥분하는지를 몹시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일요일 헤드라이너인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이하 MBV)의 공연은 강력한 노이즈로 뒤덮였다. 스탠딩 앞 자리를 사수한 사람들에게는 귀마개가 나누어질 정도였다. MBV가 슈게이징 장르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는 하지만, 생각했던 것 그 이상의 음압이었다. 예상하지 못 한 음악스타일에 당황했기 때문에 스탠딩존을 빠져 나가는 관객들도 더러 보였다. 그럼에도 MBV는 자신들의 색을 결코 바꾸지 않았다. 리더 케빈 쉴즈가 가지고 있던 소리에 대한 방법론, 혹은 고집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노이즈 가운데에서 서정적인 멜로디와 유약한 보컬을 공존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올해로 13회, 트라이포트 시절까지 포함하면 14회째다. 사실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화장실 등 기본적인 편의 시설이 예년에 비해 줄어든 것이 아쉬웠고, 그늘이 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 공연 이외의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실하다는 것은 확실한 단점이다.

한편으로 한국 음악시장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 자리를 쭉 지켜줘서 감사한 마음이 더욱 크다. 인천이닌 지역에 사는 록팬들에게 '인천'은 곧 '펜타포트'로 각인되어 있을 것이다. 펜타포트가 앞으로도 견고하게 자리를 지키는 록의 기둥이 되기를, 그래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이 곳에서 또 한 번 땀 흘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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