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일러스레이티드의 칼럼리스트 톰 버두치는 지난 2008년 '만 25세 이하의 투수들이 전 시즌보다 30이닝 더 많은 투구를 하면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에 빠질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는 이론을 주장했다. 물론 이는 아마추어 시절의 혹사나 다른 부상요인 등을 고려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신뢰도를 가진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몸 관리에 대한 자신만의 노하우가 부족한 젊은 선수들이 1군에서 빨리 자리잡고 싶은 마음에 무리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사례는 KBO리그에도 얼마든지 있다. 굳이 부상이 아니더라도 마운드에 자주 올라 많은 타자들을 상대하다 보면 그만큼 상대에게 투구 패턴이나 습관 등이 노출될 확률도 높아진다. 정우람(한화 이글스)이나 오승환(콜로라도 로키스)처럼 10년 이상 꾸준한 성적을 올리는 투수가 흔치 않은 이유다.

거의 매경기 대기를 하며 자주 몸을 풀고 많은 등판을 하게 되는 불펜 투수들은 이듬해 부상을 당하거나 부진에 빠질 위험에 더 많이 노출돼 있다. '한 지붕 두 가족'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는 올 시즌 프로 2년 차를 맞는 젊은 투수들이 비약적인 성장을 통해 핵심 불펜 투수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들은 빠른 발전 속도 만큼이나 너무 잦은 등판을 하며 팬들을 걱정시키고 있다.

2년 만에 불펜의 핵으로 성장했지만 리그 최다 경기출전 '옥에 티'

2017년 신인 드래프트 1차 지명에서 동국대학교의 사이드암 최동현을 지명한 두산은 2차 1라운드에서도 제물포고의 잠수함 박치국을 선택했다. 하지만 1차 지명 선수 최동현은 지명 당시부터 이미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은 상태였고 메디컬 테스트 도중 갑상선 암까지 발견돼 루키 시즌을 통째로 거르고 말았다. 1차 지명 선수가 이탈하자 두산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2차 1라운드 박치국에게 집중됐다.

기뻐하는 박치국-박세혁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마무리투수 박치국(오른쪽)과 포수 박세혁이 9-8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2018.6.14

▲ 기뻐하는 박치국-박세혁 지난 6월 4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18 KBO리그 두산 대 kt 경기. 두산 마무리투수 박치국(오른쪽)과 포수 박세혁이 9-8 승리를 거둔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치국은 입단 첫 해 1군에서 21경기에 등판해 32이닝 동안 1승1패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했다. 그리고 두산은 작년 11월 2차 드래프트에서 사이드암 오현택(롯데 자이언츠)을 40인 보호선수에서 제외했다. 부상만 없다면 불펜에서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오현택을 미련 없이 보냈다는 것은 그만큼 박치국의 성장 가능성을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박치국에 대한 두산의 믿음이 '확신'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박치국은 올 시즌 57경기에 등판해 1승5패3세이브14홀드 3.43을 기록하며 독보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는 두산의 필승 셋업맨으로 활약하고 있다. 김강률이나 이현승 등 기존의 셋업맨 후보들이 부진한 가운데 박치국은 마무리 함덕주와 함께 김태형 감독이 두산 불펜에서 가장 믿는 투수다.

문제는 이제 막 만 20세가 된 박치국이 두산 마운드에서 너무 중요한 존재로 커버렸다는 점이다. 박치국은 올 시즌 57경기에 등판하며 10개 구단 투수 중 가장 많은 경기에 등판하고 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심할 정도로 혹사(?) 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박치국은 앞으로 1.2이닝만 더 던지면 정확히 작년 대비 30이닝을 더 던지게 된다.

박치국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에도 포함돼 있다. 박치국이 대표팀에서 어떤 보직을 맡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기다리는 아시안게임 휴식기가 박치국에게는 '휴식'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두산팬들은 박치국이 2015년 포스트시즌부터 심하게 흔들렸다가 2016년을 사실상 통째로 걸렀던 함덕주의 전철을 따르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청소년대표 에이스 출신 유망주, 셋업맨 변신 후 연투만 4번

프로 입단 만으로도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올 수 있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넥센 히어로즈)를 뽑을 수도 있었지만 LG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작년 신인 드래프트에는 이미 2학년 때 주말리그에서 7승1패 1.56을 기록했던 '초고교급 투수' 고우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LG는 당연히 청소년 대표 에이스 고우석을 1차지명으로 선택하고 3억 원의 많은 계약금을 안겼다.

고우석은 신인급 투수들이 통과의례로 꼭 거치는 '이상훈 피칭 아카데미'에 가지 않고 곧바로 1군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정도로 많은 기대를 모았다. 4월 16일 1군 데뷔전에서는 시속 151km의 시원스런 강속구를 뿌리며 LG팬들을 설레게 했다. 고우석은 입단 첫 해 25경기에 등판해 1홀드 450을 기록하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뽐냈다.

고우석은 올해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의 부진으로 개막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지난 4월 4일 1군에 올라 한 번도 퓨처스리그에 내려가지 않고 붙박이 1군 투수로 활약하고 있다. 6월 17일 KIA타이거즈전에서는 2.2이닝1실점으로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리기도 했다. 전반기 성적은 1승1패4.91로 필승조에 포함되진 못했지만 멀티이닝을 소화할 수 있는 불펜 자원으로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다.

류중일 감독은 김지용, 진해수 등 기존의 셋업맨들이 흔들리자 후반기부터 본격적으로 고우석을 셋업맨으로 활용하고 있다. 고우석은 후반기 시작과 함께 이틀 연속 홀드를 기록하며 셋업맨 자리에 잘 적응하는 듯 했지만 금방 경험부족을 드러내고 말았다. 고우석은 7월 20일 두산전부터 최근 12경기 동안 1승2패1홀드9.24로 급격한 부진에 빠졌다. 전반기엔 좀처럼 없었던 연투도 후반기엔 4번이나 있었다.

올 시즌 44경기에서 55.1이닝을 던진 고우석도 이제 0.2이닝만 더 던지면 작년 시즌보다 30이닝을 더 소화하게 된다. 분명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지만 김지용이 빠진 LG불펜에서 현재 고우석보다 나은 셋업맨 후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한때 '야신'이라 불리던 김성근 전 감독은 "투수의 어깨는 쓸수록 강해진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과연 잠실의 두 미래는 김성근 감독과 버두치 중 누구의 철학과 이론에 더 가까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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