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어딘가를 가고 있다. 그 장면을 뒤집어 보여주면서 영화 <목격자>는 시작한다. 뒤집힌 장면처럼, 목격된 범인이 아니라 목격한 시민이 숨는다. 영화는 범행 이유보다 그 범행에 대한 시민의 반응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영화가 기존 스릴러 영화들을 뒤집지는 못한다.

 <목격자> 포스터

<목격자> 포스터 ⓒ (주)NEW


평범한 가장 상훈(이성민 분)이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 현장을 목격한다. 신고하려던 순간 집에 불이 켜지고 전화기를 놓치고 만다. 불을 급하게 끄고 다시 범행 현장을 살피는 순간, 범인과 눈이 마주친다. 이후부터 상훈이 신고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 영화에서는 그의 선택들이 이어진다. 상훈은 경찰에 신고할 기회가 올 때마다 더 숨는다.

영화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상훈을 내세우며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관객을 설득한다. 가령 '술에 취해 들어올 때도 딸 주려고 과자 하나 사들고 오는 아빠니까 앞으로 그런 선택들을 한다'라는 식으로 영화는 설명한다.

그러나 상훈은 평균에서 다소 벗어난 선택들을 한다. 예컨대 만약 당신과 가족이 살인범에게 특정되어 노출됐다면 신고를 망설일 것인가? 만약 당신이 범인과 마주해야 한다면 아무리 미덥잖더라도 경찰을 따돌리고 혼자 갈 것인가? 이 질문들을 두고 상훈은 진짜로 평범한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선택들을 한다.

영화는 상훈이 겪는 인지부조화로 그의 선택을 설명하기도 한다. 상훈은 부녀회장의 수사 거부 연판장을 보고 아내에게 '이게 말이 되냐'며 화를 낸다. 이미 신고하지 않았던 기존 행동이 있고 아내에게 말한 부분도 있는데 말이다. 상훈은 인지부조화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침묵이 최선'이라며 기존 행동을 더욱 강화한다.

영화 <목격자>에서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들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그런데 정작 인지부조화를 심각하게 겪는 건 상훈보다 영화 자체인 것 같다. 상훈이 더 숨을수록 범죄는 더 커지며 상훈과 가족은 더 위험에 빠진다. 그런데 꼭 영화 <목격자>가 상훈을 질책하는 모양새다. 상훈이 범인과 형사를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셋이 한 화면에 잡힌 결정적인 순간들만 해도 두 번을 반복한다. 마치상훈 때문에 피해자들이 죽었고 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급기야 범인보다 상훈이 더 나쁘다고 믿는 듯할 정도다.

아내 수진(진경 분)의 역할에서도 마찬가지다. 상훈이 위험에 빠진 건 아내 탓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범인 탓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가 처한 상황이 마치 아내 탓처럼 보이게 상황을 전개한다. 상훈이 범인에게 목격자로 노출되고 특정되어 쫓길 때나, 심지어 그가 범인을 쫓을 때도 아내 수진이 행동의 이유다. 인과 관계가 그렇다. 범인보다 피해자 잘못이라는 것 같은 논리가 떠오를 정도다.

정작 관객은 아내 탓을 할 수도 없다. 아내를 탓하는 건 그 반대 상황을, 아내가 불을 켜지 않았거나 전단지를 붙이지 않았거나 혹은 문을 열지 않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그걸 바라는 순간, 상훈의 부도덕한 침묵에 동의하는 꼴이 된다. 그 때문에 관객은 감정을 어디에 두지 못하고 그저 지켜봐야 한다.

공간 설정도 아쉽다. 배경에 관해 평범한 상훈이 사는 평범한 공간이라고 해놓고, 영화는 전개를 위해 평범하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 간다. '경찰이 탐방조사도 힘들 정도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인데도 극 중에서는 CCTV를 추가로 설치하거나 경비를 강화하지 않는다. 영화에서 생략됐을 뿐일까? 아니, 그랬다면 살인범이 망치를 들고 신나게 아파트를 질주할 리가 없다. 목격자로 유력한 사람이 실종된 이후에도 형사는 목격 진술에만 매달릴 뿐이다.

뻔한 설정을 덜어냈지만, 아쉬운 부분도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영화는 그게 평범한 아파트라고 믿어버린다. 그러니 못할 게 무엇인가. 4층 여자는 남편 대신 새벽에 엘리베이터에서 한번 본 6층 남자에게 매달린다, 대체 왜? 심지어 나중에 보면 반드시 믿어야 할 건 남편이었다. 게다가 목격자로 유력한 사람이 실종되었지만 경찰은 관심이 없다. 어떻게 범인이 아파트 밖으로 시체를 어떻게 옮겼는지, 어떻게 상훈은 살인범과 대치했는데도 가족들을 그대로 두고 출근할 수 있는지, 이에 관해 납득이 갈 만한 설명은 부족하다. 마치 무관심, 그걸로 다 이해하라고 하는 것 같다.

한편, 영화는 스릴러를 설정으로만 이어갈 뿐 장면으로 만드는 데는 무관심하다. 상훈이 겪는 압박과 공포는 오롯이 배우 이성민의 연기에만 의존한다. 필요한 만큼만 상훈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이성민은 겁에 질린 상훈을 연기한다. 좋게 보면 그런 건 촌스럽다는 듯 빤한 설정들을 거의 뺐다. 나쁘게 보면 스릴러 장르 관객들에게 익숙한 장치들을 버려놓고는 다른 대책 없이 배우에게만 맡겨 놓는다.

영화가 장면을 만드는 데 공을 들인 것처럼 보이는 건 두 장면이다. 폭우가 쏟아진 후 상훈이 서 있는 장면과 눈을 맞으며 상훈이 서 있는 장면이다. 어쩌면 감독은 이 영화적 장면들을 찍기 위해 <목격자>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폭우 장면은 상훈이 우연하게 겪은 게 아니라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걸 설명한다. 또, 에필로그에서 굳이 눈이 내려야 했던 건 고작 몇 개월이 지났다는 걸 보여준다. 그런데, 그렇게 이상한 공간인데 그거 좀 당연한 거 아닌가. 강아지 실종 전단지를 살인사건 목격자 실종 전단지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공간인데 아무렴.

사실 영화를 이해하려고 들면 방법은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상훈 시점에서 전개일 수도 있다. 상훈이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지점들은 상훈이 '그때 그랬어야 했다'며 이미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때 가능하다. 그렇다면 상훈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는 상훈에게 평범하다는 면죄부를 이미 주고 시작했기 때문에 상훈은 반성할 게 없다. 영화가 어찌되었든 답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영화가 답을 내고 관객에게 채점을 받아야지, 관객에게 답을 내라는 건 이상한 일이다. <목격자>는 극 중 형사의 대사처럼 "이유가 없다."

 영화 <목격자> 스틸컷

영화 <목격자> 스틸컷 ⓒ NEW



목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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