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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에 구름빛이 붉게 물들며 암봉들이 신비롭게 솟아있다.
▲ 소청의 일몰 석양에 구름빛이 붉게 물들며 암봉들이 신비롭게 솟아있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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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펄펄 끓고 있다. 한낮 기온이 삼십 칠 팔도를 넘어서고 있다. 푹푹 찌는 가마솥더위를 피해 7월 말 설악산을 찾았다. 이 더운 날씨에 산에 가냐고 다들 염려하지만 설악산에 오르면 찜통더위가 달아날 것 같다.

한계령에서 중청을 거처 봉정암까지 다녀올 생각이다. 새벽 5시 30분 한계령 탐방지원센터 앞에 섰다. 대청봉 너머로 먼동이 터온다. 푸르스름한 새벽빛이 호젓한 산길을 열어준다. 입구를 지나 몇 걸음 옮기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돌길이다. 한계령 삼거리로 향하는 길은 처음부터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험한 곳에는 철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가파르게 올라선 산길은 숨도 고르기 전에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수십 개의 철 계단을 오르고 거친 돌길을 지나자 이정표가 반갑게 맞아준다. 대승령과 중청으로 갈라지는 한계령 삼거리다.

잠시 숨을 돌리고 중청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눈앞에서 흰 바위들이 능선을 이루며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다. 앞으로는 용아장성이 달리고 뒤로는 설악의 주능선인 공룡능선이 달려가고 있다. 눈앞이 모두 바위 밭이다. 바위들은 희면서도 붉은 빛이 돈다. 불볕더위에 화상을 살짝 입을 듯하다.

삼거리를 뒤로하고 끝청으로 향했다. 숲길이다. 설악의 숲은 건강미를 자랑하듯 푸른빛을 마구 쏟아낸다. 보기만 해도 좋다. 마음속이 훤해진다. 중청으로 가는 길은 능선길이지만 숲길이 계속 이어졌다. 걸음을 멈추고 서있으면 시원했다. 만일 나무하나 없는 바윗길이거나 민둥산이었다면 몹시 힘들었을 거 같다. 산길에는 가끔 다람쥐도 나와 맞아주고 형형색색 고운 야생화가 피어 길동무가 돼 준다. 어찌나 예쁜지 한참을 쳐다보았다. 딸처럼 귀엽고 참 예쁘다.

 중청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 예쁘게 피어 반겨준다
▲ 야생화 중청가는 길에 만난 야생화 예쁘게 피어 반겨준다
ⓒ 임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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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에는 마을 쉼터 같은 곳이 종종 나타난다.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 놓고 고목이 길게 누워 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고목에 앉아 정담을 나누기 딱 좋다. 물 한 모금 마시고 숲속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뭇잎은 어찌난 싱그러운지 어린아이처럼 마냥 천진한 표정이다. 보고만 있어도 몸과 마음이 절로 맑아진다.

중청으로 다가갈수록 다람쥐 친구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정겨운 마음에 손을 내밀어 보았다. 경계의 눈을 하고 멀리 달아난다. 마음을 몰라주는 다람쥐가 야속하다. 좀 더 가까이 사진도 찍고 눈인사도 나누고 싶지만 아쉽다. 꽃들만이 가까이 와서 소녀처럼 예쁜 표정을 지어 주었다. 어찌나 예쁜지 눈을 뗄 수가 없다. 오래 보고 있으면 시샘하는 벌이 날아와 훼방을 놓곤 한다. 역시 꽃은 오래보아야 예쁘고 벌과 나비가 날아들어야 제격이다.

다시 거친 돌길이 밟고 능선 길을 몇 번 더 오르내리자 중청이 코앞이다. 끝청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북쪽으로는 공룡능선이 달려가는 곳에 마등령이 막아서고 남쪽으로는 한계령 길 너머로 점봉산과 가리봉이 가물가물 솟아 있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귀때기 청봉에서 대승령으로 바위 능선이 힘차게 뻗어있다. 귀때기 청봉은 귀가 떨어져 나갈 만큼 겨울바람이 매서운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끝청 돌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메고 중청을 향했다. 나무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대청봉이 눈에 쏙 들어온다.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은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이다. 1700고지에 이르니 나무들이 사라진 것이다.

드디어 중청에 올라섰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중청을 태워 버릴 기세다. 이때 산바람이 어디선가 살랑살랑 불어댄다.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바람을 타고 산 능선도 사방으로 달려간다. 시야가 탁 트여 막힘이 없다. 어디를 먼저 보아야 할지 마음만 바쁘다.

화채봉에서 마등령으로 시선을 가만히 옮겼다. 공룡능선의 기이한 암봉들이 시선을 멈추게 한다. 화채봉 너머로는 속초시내와 푸른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기이한 암봉들이 줄지어 들어선 설악산과 푸른 동해 바다가 어찌 이리 궁합이 잘 맞는지! 아무리 보아도 찰떡궁합이다. 어디서 이런 비경을 마주하겠는가! 보고 또 보았다. 오래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바라보는 재미가 있다. 어느 능선을 걸어볼까 생각하며 눈으로 설악의 능선들을 타고 넘어보았다. 어느 능선 길을 걸어도 참 좋을 것 같다.

중청대피소에서 쌀을 씻고 버너에 불을 피워 점심을 지었다. 오랫만에 짓는 산밥이라 밥이 설익어 버렸다. 짜장을 넣고 다시 끓였다. 예상과 달리 먹음직스러운 짜장밥이 되었다. 김치를 넣어 먹으니 맛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역시 배고플 때 먹는 산 밥이 최고다.

중청에서 외설악을 세세히 돌아보고 소청으로 향했다. 봉정암으로 가기 위함이다. 중청에서 소청 가는 길은 외설악풍경을 맘 놓고 볼 수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 같다. 기이한 암봉들이 솟아있는 외설악의 매력에 빠져 가다서기를 반복했다. 나무도 키를 낮추고 시야를 열어줬다. 내리막길에는 철 계단이 놓여 있어 내려가는 부담이 없다. 이따금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은 절로 야호소리를 내게 했다.

소청에 이르자 봉정암 가는 길과 희운각으로 가는 갈래 길이 막아선다. 희운각으로 내려가 비선대의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시원한 물에 발이라도 담그고 싶었지만 그 유혹을 뿌리치고 봉정암으로 향했다.

봉정암으로 가는 길에는 소청대피소가 있다.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바로 앞에 펼쳐있어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소청의 일몰이 무척 기대가 되었다.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산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봉정암에서 용아장성로 이어지는 암봉들이 어찌나 기이한지 신들의 작품 같다.

소청대피소에서 봉정암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목탁소리를 따라 가만히 내려갔다. 얼마 되지 않아 봉정암이 나무 사이로 나타났다. 봉정암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앉아 암자를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면 금세 굴러 떨어질 것 같은 바위들이 봉정암 뒤에 위태롭게 솟아 있다. 제법 큰 암자다. 봉정암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암자여서 신도들만 아닌 일반인도 많이 찾는다.

백담사에서 봉정암에 이르는 길은 무려 10km가 넘는다. 멀고 험한 산길이다. 봉정암에 이르기도 전에 세속의 번뇌를 모두 잊게 될지 모른다. 큰마음을 먹지 않고는 쉽게 찾을 수 없는 곳이다.

암자 보살님에게 숙박에 대해 여쭤 보았다. 생각과 다르게 돌아온 말투가 투박했다. 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다보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봉정암은 터가 협소해 보였다. 건물들이 편안히 들어앉지 못하고 어딘지 모르게 답답해 보였다.

암자 한구석에 앉아 스님의 불경소리를 들어보았다. 불경소리가 그렇게 평화로울 수 없다. 평화로움이 마음 깊숙한 곳에 똬리를 틀고 떠날 줄을 모른다. 어느새 땅거미도 암자 깊숙이 내려앉는다. 1박하기로 예약된 소청대피소로 올라갔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두세 번 쉬고 올라가야 했다. 소청대피소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와서 저녁을 지어먹고 있었다. 초등학생부터 70대에 이르는 할아버지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 왔다.

저녁을 먹고 하늘을 가만히 보았다. 귀때기 청봉에서 기이한 구름이 용아장성 위로 날아든다. 석양빛은 때를 놓칠세라 구름 속을 비집고 들어가 붉은 빛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산 그림자와 어울려 멋진 그림이 돼 준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바쁘게 눌러댄다. 만일 암봉 사이로 안개라도 피어났다면 어떠했을까 상상해본다. 아주 멋진 그림이 됐을 것 같다. 마치 신선이 노니는 천창의 세계처럼 말이다.

소청에 일몰이 되니 빛내림과 함께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 소청의 석양 풍경 소청에 일몰이 되니 빛내림과 함께 멋진 풍경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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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청에서 바라본 용아장성이 모습
 소청에서 바라본 용아장성이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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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빛으로 물든 소청의 석양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며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아 갔다. 해가 진후에도 한참을 황홀한 빛으로 물들이고 설악의 풍경을 자랑했다. 사람들은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별이 총총히 박혀 빛날 때까지 머물러 있었다. 밤이 깊어지자 별들이 까만 하늘을 아름답게 수놓았고 고산의 냉기는 대피소로 달려들었다. 밤 기온은 서늘하여 담요를 끌어 안고 자야 했다. 열대야는 대피소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개는 보이지 않고 실망스럽게 어둠만 조용히 걷어내고 있었다. 암봉 사이로 피어오를 것만 같았던 안개는 기다려도 끝내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중청으로 향했다. 설악산은 검푸른 빛을 두르고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태양은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화채봉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일출은 언제 봐도 늘 경건하고 찬란하다.

중청봉을 올라오며 바라본 일출의 모습
▲ 일몰 중청봉을 올라오며 바라본 일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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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설악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할 무렵 한계령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어제 보았던 다람쥐도 다시 나타나 친구가 돼주고 꽃들도 길가에 서서 배웅을 해 준다. 가파른 길을 내려갈 때면 언제 이러한 길을 걸어 올라왔나 싶을 정도로 생소했다. 중청이 점점 멀어지며 손을 힘껏 흔들어 배웅을 해준다. 끝청에 내려와 공룡능선을 다시 보았다. 마음은 아직도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으로 향하고 있다.

다시 보아도 설악의 풍경은 참 시원하고 기운이 넘친다. 어디선가 본 듯 안개에 휩싸인 용아장성의 풍경이 눈에 어른거린다. 바위 끝에 서서 설악의 암 밭을 마음에 담고 또 담았다. 거친 돌길을 다시 걸으며 쉬엄쉬엄 내려오니 어느새 한계령 삼거리에 이르렀다. 중청이 아직도 떠나지 않고 멀리 서서 내려다보고 있다.

한계령 삼거리를 지났다. 배낭도 무겁고 다리도 아프다. 목적지에 다다르면 늘 나타나는 현상이다. 물도 떨어졌다. 1km가 아직 더 남았다. 다리가 팍팍하다. 길에 주저앉고 싶다. 목이 타기 시작한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간절하다. 어느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로지 목적지만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중청에 오를 때와 달리 에너지가 모두 고갈된 느낌이다.

괴로운 마음을 꾹 참고 힘을 내어 산길을 한바탕 내려섰다. 반갑게도 한계령 탑방지원센터가 비쭉 고개를 내민다. 물 마실 생각에 다시 가슴이 뛴다. 쉬지 않고 휴게소로 얼른 내려가 물 한 병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 맛에 산에 오르는지도 모른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산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에 피곤함이 안개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의 배꼽에 위치해 있다. 음력 팔월 한가위 때부터 내린 눈이 하지 때까지 녹지 않고 쌓여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수많은 암봉들이 눈과 같이 희다하여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설악산은 언제 찾아가도 시원하고 반가움으로 다가오는 산이다. 가마솥더위로 숨이 막혀 찾아가도 기이한 바위들이 줄지어 서서 맞아주며 마음까지 빼앗아가는 시원한 쉼터가 돼 주었다.



태그:#설악산, #봉정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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