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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남을 폭염이라는 날씨에, 쪽방촌에 다녀왔다. 창신동쪽방상담소는 건물 입구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파란색 간판이 왠지 공공기관 느낌이다. 알고 보니, 예전에 파출소로 쓰던 건물이다. 건물 안쪽에는 파출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상담소 바로 옆에는 '너나들이 커피방'이라는 상호의 커피숍이 있다. 노란색 벽돌 인테리어가 화사한 느낌이다. 알고 보니 빽다방에서 재능기부를 받아 쪽방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다.

칼라만시 차와 카페라테를 주문해서 받아 보니, 빽다방 크기의 컵에 빽다방 방식으로 잘게 부수어진 얼음이 가득 담겨 나왔다. 맛도 좋았다. 가격도 착한 '너나들이 커피방'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5천 원 이상만 주문하면 배달이 된단다. 샌드위치와 커피만 사도 맞출 수 있는 금액이다.

창신동쪽방상담소, 그리고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커피방 간판
 창신동쪽방상담소, 그리고 상담소에서 운영하는 커피방 간판
ⓒ 창신동쪽방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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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활동 내용은 소화기 배치였다. 쪽방촌은 화재가 잦고, 화재로 인한 손해가 극심한 곳이라,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미리 대비해 두는 것이 최선이다. 지난 4월에 한 차례 소화기 정비를 했지만, 이번에 또 한 차례 정비 작업을 실시한다.

소화기가 작동 상태에 있는지 확인하고, 교체가 필요한 것은 교체하며, 소화기가 아직 비치되지 않은 곳에는 새로 비치하면 된다. 소화기를 살펴보면,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으로 게이지가 달려 있는데, 바늘이 초록색에 있는 것만 놔두고 나머지는 바꾸도록 했다.

윗마을, 아랫마을 두 팀으로 나뉘어, 소화기 50개를 손수레에 싣고 출발하였다. 장대 같은 비라는 표현은 있어도, 장대 같은 햇살이라는 표현은 없을 텐데, 등 뒤를 사정없이 내리 찌르는 햇살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까. 땀이 그야말로 후드득, 비처럼 쏟아졌다.

쪽방 건물을 하나씩 점검하면서 소화기를 배치했다. 날씨가 날씨인지라 문을 열고 누워 계신 어르신들이 흘끗 보였다. 문을 여닫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계단참이라든가 좁은 마당 구석에 소화기를 내려놓았다.

쪽방 건물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계단은 눈으로 볼 때보다 실제로 올라가 보면 훨씬 더 가팔랐다. 한 손으로 소화기를 들고, 다른 손으로는 철제 손잡이를 잡아야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어르신들은 이 계단을 어떻게 매일 올라다니시는지, 처음에 이삿짐은 어떻게 옮기셨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쪽방 입구. 가파른 계단으로 어르신들이 매일 올라다녀야 한다. 실제로 올라가보면 눈으로 보던 경사보다 훨씬 심하다. 철제 손잡이가 없었다면 올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쪽방 입구. 가파른 계단으로 어르신들이 매일 올라다녀야 한다. 실제로 올라가보면 눈으로 보던 경사보다 훨씬 심하다. 철제 손잡이가 없었다면 올라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 이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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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를 들고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고 어떤 어르신이 물었다.

"소화기가 한 3년 돼서 그러는데, 새 걸로 바꿔주면 안 되나?"

나는 상담소에서 브리핑받은 대로 대답했다. 소화기가 없는 곳, 그리고 소화기가 고장 난 곳만 교체 대상이고, 몇 달 후에 다시 점검할 예정이라고. 난감한 표정을 하셨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도, 나중에 소화기가 몇 개 남아서 어르신의 소화기도 교체해 드릴 수 있었다.

창신동에는 '디딤돌하우스'라는 새로 리모델링된 쪽방 건물이 있다. 서울시와 현대엔지니어링에서 후원하여 리모델링을 진행, 거주용 방은 2~3층으로 정리하고, 1층은 공용시설로 채워진 신식 설계였다.

샤워실도 널찍하고, 세탁실에는 세탁기가 여러 대 비치되어 있어 좋아 보였다. 상담소장님에 의하면 인기가 좋다고 한다. 이곳 쪽방 월세는 20만 원대 중후반에서 형성되어 있는데, '디딤돌하우스'의 월세는 10만 원대라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창신동 쪽방촌 윗마을 골목 모습
 창신동 쪽방촌 윗마을 골목 모습
ⓒ 이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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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하우스'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리모델링한 쪽방 건물이다. 1층에 샤워실, 세탁실, 휴게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 인기가 높다.
 '디딤돌하우스'는 서울시의 후원으로 리모델링한 쪽방 건물이다. 1층에 샤워실, 세탁실, 휴게실 등이 갖추어져 있어 인기가 높다.
ⓒ 이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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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 배치를 끝내고 나서, 여남은 개의 고장 난 소화기를 들고 상담소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냉방된 실내 공기가 정말 오아시스 같이 다가왔다. 상담소 2층은 사무실로 사용 중이고, 1층은 주민들의 휴게공간으로 개방되어 있다.

1층 휴게실에 있던 의자들은 어디론가 치워져 있고, 동네 주민분들이 바닥에 앉아 한창 선풍기를 조립하고 계셨다. 예상보다 소화기 배치 작업이 일찍 끝나서, 남는 시간에 선풍기 조립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상자에 담긴 선풍기를 꺼내, 조립하여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해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좁은 공간에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분주하게 작업했다. 몇몇은 상자에서 선풍기를 꺼내고, 몇몇은 조립을, 몇몇은 빈 상자와 포장재를 정리했다.

조립하다 보니, 선풍기 앞뚜껑을 씌우는 마지막 단계에는 스크루 드라이버가 필요했다. 그런데 드라이버가 하나밖에 없어 선풍기 앞뚜껑을 붙이는 마지막 단계는 단 두 명만이 교대로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십자 볼트를 일자 드라이버로 돌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손놀림이 더 느려졌다.

나는 조립을 맡았다. 상자에서 꺼낸 선풍기의 밑받침과 기둥을 이어 붙이고, 선풍기 뒤뚜껑과 날개를 조립해서 드라이버를 가진 앞뚜껑 담당자에게 넘겨주는 일이었다.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하는 선풍기 조립은 서툴렀다. 선풍기 조임쇠를 돌리면서 생각했다.

'왜 맨 앞의 조임쇠 한 개는 돌리는 방향이 반대인 거지?'

선풍기 조립을 하는 사람들은 서로 경쟁이 붙었는지, 신이 나서 일하는 느낌이었다. 분업도 잘 되어서, 상자에서 부품을 꺼내고 조립하고 마무리하는 과정이 매끄럽게 이어졌다. 드라이버가 부족해서 앞뚜껑을 장착하는 마지막 단계에서만 병목 현상이 나타났다.

선풍기 조립 대전
 선풍기 조립 대전
ⓒ 이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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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선풍기를 계속 조립하면서 조임쇠를 풀고 조이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의문에 스스로 대답을 하게 되었다.

'아... 모든 조임쇠가 같은 방향이면 선풍기가 돌다 조임쇠가 풀어질 수 있겠구나. 그렇게 되면 위험하겠지.'

왠지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작년에는 중국산 선풍기를 보급했는데, 고장이 잦았다고 한다. 올해 나눠드리는 국산 선풍기는 고장 나지 않고 역할을 충분히 하기를 기대하면서, 봉사활동을 마쳤다. 올 겨울에 다시 한 번 이곳을 찾으리라 생각하면서.


태그:#쪽방촌, #봉사, #선풍기 조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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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이 강물처럼 흐르는 소통사회를 희망하는 시민입니다. 책 읽는 브런치 운영중입니다. 감사합니다. https://brunch.co.kr/@junat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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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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