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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둔화되는 성장, 높아지기 시작하는 무역장벽, '우리나라 성장률이 3%에 못 미친다', '한은도 포기했다'라는 내용의 기사들이 출퇴근길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2018년 취업 예상인원도 30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하락. 지하철 역사에서 공부를 하던 취준생이 기사를 힐끗 보고는 깊은 숨을 토해낸다.

이렇듯, 빠른 속도로 외국어, 변리사, 공무원 책을 쌓아올리면서, 스스로 '고성장' 된 나를 만들어 나가는 모습들이 전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여전히 '저성장' 사회에서 취업준비생, 백수, 비정규직 근로자라는 위치는 변함이 없다.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신승철 저. 삼인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신승철 저. 삼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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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런지, 철학공방 '별난'에서 별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신승철씨가 책속에 꾹꾹 적어 내려간 이야기는 우리가 무엇을 향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특히, 행복은 어디에 있었는지 어질러진 추억의 서랍장을 다시 한 번 뒤져보게 한다. 그리고 그도 나름 좋은 세상을 만들어 보려고 했던 '운동권'이었지만, 지금은 '소수자'(또는 '활동가')들과 함께 생명과 활력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좀 더 힘을 기울이고 있는 이유를 들여다 볼 수 있다. 

책에서는 총 5부로 '행복'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공동체, 저성장 시대의 가난, 생명에 대해, 아이들(미래세대)의 존재에 대해, 그리고 생태적 지혜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글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겠지만, 생태철학자, 펠릭스 카타리 연구자이자 철학 박사인 그가 던져준 색다른 세계의 단서들을 조금 수집해 보았다.

[저성장 시대의 소비와 소득]

"오늘날 노동과 소득의 고리는 끊겨 있는 상황입니다. 일자리로 복지를 대신하려는 시도는 사실상 낡은 발상입니다. 노동 대부분이 질 나쁜 불안정 고용, 비정규직, 일시적인 아르바이트인 상황에서 정규직 몇 명 늘린다고 이 문제가 해결 될 것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저는 노동, 활동, 제작, 자기고용, 아르바이트 등 다변화한 소득원을 추구하며, 그중 한 가지 경우의 수로 기본소득이 들어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비와 소득은 우리의 삶 대부분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직까지, 많은 정책들은 '일자리'로 환원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그는 직업 하나로 먹고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소득원을 통해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을 곱씹어 보면, 여태껏 정부가 추진한 '일자리' 정책에 부여한 가치에 비해 성과는 미미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노동'에 대한 개념이 점차 변화되고 있는 시점이기 때문에, 기존의 육체노동과 지식노동을 떠받들고 있는 '일자리'들도 생기고 사라짐을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본소득'과 다양한 소득원의 창출을 통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안정되면서도 어떤 순간에는 여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지속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을 다양한 수입원 중 하나로 여겨야 하며,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청년수당에 의존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인용하였다. 수당으로 놀거나, 취업 준비를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를테면 당신이 음악을 좋아한다면 자본주의는 음반을 사라고 권유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음반을 사지 않고 가수가 되겠다고 나서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자본주의는 가수로 데뷔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권유하겠지요. 이런 식으로 욕망이 도망가고 변덕을 부리면 자본은 소비로 집중하도록 따라가서 포획 하려고 합니다. 이렇듯 욕망과 소비는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쫓고 쫓기는 상황, 도주와 포획의 상황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며 기존의 이윤 중심적 자본주의가 부추기는 소비 행위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생각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그의 말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욕망의 해소는 '소비행위'로만 포획되는 아쉬움이 있지만, 오히려 대안적인 소비를 낳기도 한다. 취약계층을 위한 생리대, 공정무역, 공정여행사 등등 기존의 '병든' 소비문화를 대체하는 것들도 충분히 많다.

그는 책에서, 일회용 생리대가 아닌 대안생리대를 구매함으로써, 스토리와 가치가 있는 선물이 생겼다는 일화를 이야기 한다. 오히려 소비를 줄였는데도 욕망이 충만해지고 다양하고 풍부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빠른 속도의 세상에 필요한 감속의 삶]

"사실 성공하겠다고, 부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주위에 참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한 속도를 즐기는 사람들처럼 요행히도 혹은 주변 사람을 넘어서서 성공의 사다리 위로 달려갔습니다. 제가 무작정 줄달음치는 사람들을 만나서 왜 그렇게 달려가느냐고 물어 보면, 열의 아홉은 우물쭈물 하면서 이유를 잘 애기하지 못합니다. 그저 이유 없이 달려가는 셈이지요."


직장생활을 하는 많은 이들은, 속도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일과 인간관계를 설정하고 싶어 한다. 내 주변의 친구들도, 나도 그런 경향이 조금은 있다. 누군가를 만난 지 몇 분 안 돼서 답답함을 느낀다면, '차라리 다른 일 할 걸'이라는 생각을 느낀다면 그의 말에 귀 기울여 보면 좋겠다.

"효율적이고 속도감 있는 삶을 추구하다 보면 공동체와 이웃, 가족을 잉여현실이나 군더더기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정신을 차려 보면 혼자가 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혼자 빠르게 살다보면, 주변 사람들에서부터 멀어진 채로 발견된 나를 볼 수 있다. 외로움은 매순간 어쩔 줄 모르고, 더 빠른 속도로 달리라고 부추기기도 한다. 나도 뜨끔해지는데, 마찬가지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은 속도를 잠깐 늦추어 보자.

대신, 느리게 지나가면서 주변과 교감하는 건 어떨까? 어쩌면 답답했던, 비효율적이게 느껴졌던 모든 사람, 시간, 공간들이 온전히 나의 인생과 그림의 일부가 되고, 지워졌던 일상들이 다시금 회복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감속 인생을 잠깐 들여다보면 조금 더 이해가 빠를 것 같다.

"느림과 정지, 이야기, 음악이 있는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효과를 낳습니다. 제가 하루 종일 읽은 책 이야기며, 사람들과의 우여곡절 등을 소재로 대화하다 보면 끝없는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시간이 지나갑니다. 방문을 닫고 대화하다가 음식을 데우고 있었다는 것을 깜빡 잊고 냄비를 태운 적도 많습니다. 그래도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한 시간, 두 시간, 세 시간을 넘기며 대화를 하다 보니 미지의 영역에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들었지요."


[미래세대가 지속가능하려면]

"자본주의는 내부에 미래의 구매력을 이자로 만들어서 미래를 차압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즉 미래를 흥청망청 다 현재에 써버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빚진 사람은 현재를 살지만 미래를 차압당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저성장 사회에게 '미래'를 차압당한 청년세대는 헬조선의 무한 속도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게다가 '미래'만 보면 고개를 절로 숙이게 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마저 미래를 흥청망청 쓰다보면,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들은 어떻게 살아나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지속가능한 발전'에는 반드시 '미래세대의 권리'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의 시간, 미래진행형적인 시간, 지속가능성의 시간은 현존 문명이 갖는 선형적인 시간관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말한 지속가능한 발전 전략은 바로 미래의 시간인 아이라는 특이점과 접속하지 않은 채 전개되었기 때문에, 어른들이 말하는 공염불이나 주문, 슬로건처럼 속류화 되었지요."


그래서 그는, '지속가능한 약탈', '역성장'처럼 미래를 제거하고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가능함'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는 위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구체적으로는, 헌법에서 미래세대의 권리를 보장하는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아이들 시간의 윤곽선을 지도처럼 그려내어 지속가능성에 대한 색다른 구도를 입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그러한 꿈을 키워 나갈 수 있을까. 혼자서도 할 수 있을까?

[한사람을 위한 공동체]

"소수자 되기와 같은 사랑의 행동은 문명이 선택할 하나의 경우의 수를 늘린다는 점에서 사실상 문명의 전환과 이행을 위한 초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소수자는 양적 소수나 피해자가 아닌 공동체와 사회를 풍부하고 다양하게 만들 효모와 감초, 촉매제로서의 '한사람'입니다."

그는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공동체. 즉, 천명이 모이면 하나의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개의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다양성을 간직한 사회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소수자'들이 민중 하나하나와 접속하여 그들에 대한 돌봄, 환대, 사랑의 순간을 만들 때 문명 자체의 지속성과 탄력성을 결정하는 특이점 하나하나를 형성할 것이라고 낙관한다.

사뭇 이상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혼자가 편한 사람들에겐 상상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말이 뻔하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한 사람을 변화시키고, 한 사람을 만들어내고, 한 사람을 발견하는 '소수자', '활동가'들의 인생과 삶이 뻔하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다면, 매번 전혀 다른 세계들과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공동체가 조금은 아름다워 보일 것 같다.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숨 가쁘게 달려가는 이상, 꿈, 미래에 있는가. 아니면 내 주변 순간 일상 가족 공동체 현재에 있는가. 서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솔직해지고, 친해지지 못한 채 이념 이상 꿈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지."

옛날에는 공동체를 사랑했던 사람들이라도, '헤겔의 변증법'에 따른 공동체 내의 비판을 통해 성숙된 자아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과거 386세대의 표상인 '합리적 인간'의 형성 과정이라고 한다. 각자의 이상과 꿈 미래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비판을 통해 나아간다는 믿음 이라는 것이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은 공동체가 와해되고, 혼자이며, 외롭다. '취약한 관계성'을 회복하지 못한 채 '비판' '경쟁심리' '혐오발화' '증오의 논리'에 그대로 노출된다면, 한 사람의 정체성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그렇다면, 이상과 꿈보다 '지금-여기-가까이'에 바로 한 사람을 공감하고 이해하기 위한 조심스러운 노력이 필요하겠다. 그래서 그는 책에서 '비폭력대화' , 사람의 차이와 변화에 민감한 '구성주의적 생각', 서로 연대하기 위한 몸짓, 일상성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은 결국 저성장 사회에서도 사실, 행복할 가능성은 많다는 것을 시사한다. 모두가 느끼겠지만, 살아온 관성이라는 것이 있다 보니 원래 올라탄 '기차'에서 내리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도 잠깐 내려야 한다면, 책의 노선도를 따라 환승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저성장 시대의 행복사회

신승철 지음, 삼인(2017)


태그:#행복, #저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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