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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로 살아가는 사람, 특히 여성과 소수자는 때로 혼자 사는 삶이 너무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이대로 좁은 원룸에서 평생을 살아갈 생각을 하면 답답하고, 임대주택 청약 조건마다 '신혼부부'가 우대 조건으로 걸려 있는 것을 볼 때 절망합니다. 왜 주거정책은 모든 사람을 4인 정상가족의 (예비) 일원으로 취급할까요? 현재 주거정책의 사각지대는 어디인지, 평등하고 안전한 여성과 소수자의 삶을 위한 정책 방향은 무엇인지, 청년들의 시각에서 알아봅니다. -기자말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
 신혼부부·청년 주거지원 방안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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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정부와 관련 부처는 개선된 신혼부부·청년 주거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작년 11월 발표된 '주거복지 로드맵'과 비교해보면 금융지원과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이 대폭 확대된 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이번 정책 역시 '결혼하지 않거나 혹은 아이가 없는 가정은 불완전하다'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구태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패러다임의 전환' 역시 없다.

정부가 제시한 내용을 보면 청년주택 공급, 기숙사 확대, 그리고 우대형 청약통장 등 대부분이 기존에 있던 지원정책에서 그 공급량을 늘리거나 대상을 확대했다. 정작 가장 중요한 패러다임의 전환, 즉 지원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변화가 없었다. 당초 정부는 앞으로 시행될 청년과 저출산 대책의 방향성을 '2040세대의 삶의 질의 개선'으로 하겠다고 밝혔다. 출산율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기보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다수의 언론·전문가들은 이번 주거 지원방안을 '주거비부담을 낮춰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분석했다. 이미 청년과 신혼부부는 '출산' 프레임에 갇혔고 개인의 선택 '존중'은 지워졌다. 청년과 신혼부부가 겪고 있는 문제는 엄연히 다르다. 또 신혼부부가 반드시 청년층에 속하리라는 법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집 걱정 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나라'라는 슬로건으로 한데 묶였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1인 청년가구를 곧 결혼하여 가정을 꾸릴 예비 다인가구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삶의 만족도.
 혼자 사는 삶의 만족도.
ⓒ KB금융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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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의 1인

현재 시행 중인 1인 청년가구 지원 정책은 '만 29세 이하 청약통장'이나 '대학생 기숙사 확충'과 같이 대학생 혹은 이제 막 입사한 사회초년생에 치중돼 있다. 몇 년째 눈칫밥 먹는 중인 취준생,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전전하는 30대 알바생, 반전세에 살며 손가락 빠는 비정규직 등 실질적 지원이 절실한 빈곤한 청년층은 빠져있다.

다양한 지원책들이 나왔음에도 이들이 소외되는 이유는 이들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우리 사회의 탓이 크다. 한국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두 자녀' 범주에 들지 못한 가구는 부족해서 도태됐거나 정상가족이 되기 위해 준비 중인 존재로 취급된다. 행정가와 정치인들은 혼자 사는 청년가구를 멋대로 '예비 다인가구'로 상정하고 그들의 빈곤을 정상가족에 이르기까지 겪는 잠깐의 과정이라고 착각한다.

사회가 인정하는 보편시민에 속하지 못하는 비혼 청년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기란 쉽지 않다. 나이가 차서 졸업은 했지만 취직은 못 했다. 1인가구는 국민임대주택 분양 우선순위에서 제외되므로 혼자 사는 청년들의 가장 보편적 거주형태는 5평 정도의 원룸이다. 보증금의 반은 알바, 반은 부모님의 도움을 받는다. 상환능력에 기반을 둔 자금대출 관행상 경제적 능력을 증빙하기 어려운 취준생은 정책 지원대상이 되지 못한다.

노량진에는 30줄을 넘은 수강생의 담배연기가 자욱한데 당장 만 25세를 넘어가면 청년층을 위한 버팀목 전세자금대출(만 19세 이상~25세 미만) 길도 끊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족 중심의 세금 제도 덕분에 비혼 가구는 세금도 더 낸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2016년 기준, 1인 가구는 두 자녀 외벌이 가정보다 79만 원가량 더 많은 세금을 냈다. 위와 같은 갖은 이유로 1인 가구는 지난해 '월평균 소득(169만 원)보다 지출(177만 원)이 많은 유일한 가구'라는 타이틀을 차지했다.

OECD 국가 1인 가구 증가 속도(%)
 OECD 국가 1인 가구 증가 속도(%)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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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해체와 개인의 확장

'혼자'의 삶이 이렇게나 힘들다지만 2035년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의 1/3은 1인가구가 될 예정이다. 한국의 1인가구의 증가속도는 OECD 국가 내에서도 빠른 편이다. 1인가구의 급격한 확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변화의 증거다. 삶의 선택지는 보다 넓어졌는데 과거부터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하게 가족과 사회에 개인의 희생을 강요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에게 결혼은 '속박'으로 여겨질 뿐이다.

5평 원룸에서의 삶은 얼마나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삶일까? 이러한 사회적 논의도 이루어지지 못한 현재, 지금의 1인가구는 결혼 대신 5평 원룸에서의 삶을 자발적으로 택했다. 한 금융기관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1인 청년가구(20대~40대)의 49.7%가 '앞으로도 혼자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고 이 중 여성은 63%로 남성(39%)보다 비혼의 의지가 높았다. 게다가 여성의 경우 연령에 상관없이 70% 이상이 '생활에 어려움은 있지만 현재 삶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조사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연령과 상관없이 1인가구는 영원히 1인으로 남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결혼하지 않고 늙어 죽을 수 있는 권리

주거 지원대상이 전에 비해 48만 이상 확대된 것은 분명히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공급량만을 늘려서는 궁극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인식변화를 따라오지 못하는 국가 정책은 결코 국민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이제 국가는 1인가구를 온전한 정상가구로 인정하고 이에 맞는 행정적 변화를 추진해야 할 시기다. 결혼하지 않고도 걱정 없이 늙어죽을 수 있는 권리, 1인·비혼·동거 가구의 법적 권리가 보장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정부와 관련 부처의 구체적인 정책 방안을 기대해본다.

[성평등하고 안전한 주거생활 이전 기사]
① "훔칠 건 없고 몰카를..." 경찰의 말, 그 원룸을 나왔다
② 밥그릇에서 좀벌레가 꿈틀... 이런 곳에서 평생 산다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여성가족부 ‘성평등드리머(청년정책참여단)’ 1기 활동의 일환으로 작성된 기사입니다.



태그:#1인가구, #비혼, #청년주거지원, #신혼부부주거지원, #혼자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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