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한 매체는 MBC가 연예인들의 병영 생활 체험을 그린 리얼 버라이어티 <진짜 사나이>의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렸다. 이에 대해 MBC 측은 "<진짜사나이> 새 시즌에 대한 논의는 있지만, 현재 기획 초기 단계로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해당 프로그램은 2013년 첫 전파를 탄 뒤 시즌2가 2016년까지 제작되었고, 시청률은 평균 10% 내외를 꾸준히 유지한 바 있다.

그런데 시청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해당 소식은 다소 의아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왜 굳이 지금 시점에, 그것도 MBC가, <진짜 사나이>를 부활시키겠다는 것인가. 해당 프로그램이 방송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박근혜 정권 시절과 맞물린다. 당시 MBC는 편향된 뉴스 등으로 국민들의 질타를 받기도 했고 MBC 노조 등은 '공영방송 정상화' 등을 외치며 장기간 파업을 이어가기도 했다. 안팎에서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라는 지적을 받던 MBC는 지난해 12월 새 사장 취임 후 정상화를 위해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런 MBC가 돌연 <진짜 사나이>를 부활시키겠단다. 얼핏 생각하면 연예인들의 병영체험 리얼리티일 뿐이고, 예능프로그램일 뿐이니 별 문제가 아니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적 영향의 지속성' 측면에서 볼 때 예능프로그램은 시사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예능프로그램을 주로 소비하는 연령층이 10~20대 젊은층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지난 2013년 글쓴이가 만났던 몇몇 초등학생들은 <진짜 사나이>를 통해 군대와 병영생활 문화를 이해하고 있어 당혹스러웠다. 이처럼 예능프로그램이 미래세대의 의식과 무의식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진짜 사나이>의 부활 소식은 달갑지 않다.

박근혜 정권 출범과 때를 맞춰 방영되기 시작한 해당 프로그램이 젊은 층의 군사주의, 보수화 경향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그 당시부터 있었다. 예컨대 박노자 교수는 2014년에 발표한 <'박근혜 스타일' : 사회적 파시즘과 정치제도적 자유민주주의>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한 바 있다.

파시스트적 스타일의 통치자군(群)이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기본을 크게 손대지 않고서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취하면 될 것이다. … 일본의 재무장, 그리고 미국의 '동아시아에의 회귀'(중국 포위 전략)에 발맞추어 '중국/북한 위협론' 등을 계속 선전하면서 '진짜 사나이'와 같은 '예군(藝軍) 유착'을 통해 젊은이들을 겨냥해 '쿨한' 형태의 군사주의적인 세뇌를 대폭 강화할 듯하다. 물론, 여론조사하면 응답자의 77.9%나 '필요하다'고 응답해주는 '보통' 안보교육, 즉 보수적 군사주의 이데올로기 주입도 계속될 셈이다.(<경제와사회>2014년 봄호)

즉, 자유민주주의의 절차적 형태를 유지하면서 파시즘적 통치행태를 관철시킬 수 있는 전략에 <진짜 사나이>와 같은 예능프로그램이 이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최근 남북 평화 국면에서 일부 젊은층들이 보여주고 있는 군사주의에 기반을 둔 북에 대한 혐오와 적대의식, 대결의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지금은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새 시대의 문이 열리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미래세대가 살아갈 세상은, 지금까지 우리가 경험해온 세상, 특히 군사주의와 병영문화가 지배해왔던 우리사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평화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도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이 군 복무 문제부터 시작해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꿔놓으리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굳이 병영문화를 예능으로 소비하고 심지어 그것을 미화할 소지까지 지닌 프로그램을 지금 이 시점에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

과거보다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군대에 입대했다 각종 사건사고로 목숨을 잃는 병사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 역시 왜 생각하지 못하는가? 국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2017년) 군 사망사고는 총 75건이었고, 이 중 자살이 51건이었다(이와 관련해선 e-나라지표 참조). 통계를 놓고 봤을 때 자살자의 수치는 상당한 수준이다.

이처럼 여전히 누군가에게 병영생활이란,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괴로운 것임에 틀림없다.그런데 우리사회는 언제까지 이들을 '군(또는 사회) 생활 부적응자' 또는 '나약자'로 그리며 '소수자 취급'할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우리사회에 내면화되어 있는 폭력적 군사주의, 또는 남성주의의 결과가 아닐까? 궁극적으로 '평화체제'란, 단순히 국가 간 평화체제 수립을 넘어 우리 사회 내부의 배제와 소외, 억압, 착취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나갈 때 완전히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

뿐만이 아니다.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 제목에서 드러나다시피 이 프로그램은 구시대적 남성주의의 고취에도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해당 프로그램 제작진은 방영 당시 여성 연예인들을 출연시키는 방식으로 이러한 혐의를 무마하려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병영생활 문화를 그리는 이상, 그리고 프로그램의 제목을 그렇게 명명한 이상 이러한 의혹의 눈초리는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대체 이 프로그램에서 말하고자 하는 '진짜 사나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반대로 '진짜 요조숙녀'도 존재해야 한단 말인가. 생물학적 남성과 여성의 구분을 넘어 사회적 성 역할을 규정하려는 여하한 시도는, 남성과 여성의(또는 같은 남성과 여성 내에서의) 권력관계를 부추기는 담론일 뿐이다. 근래 한국사회는 페미니즘 논쟁으로 뜨겁지만, 현재 10대 남성 청소년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여성 혐오의식'을 고려하더라도 해당 프로그램의 부활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고민과 생각으로 열 수 있다. <진짜 사나이> 새 시즌 방영을 논의 중인 MBC 제작진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다.

진짜 사나이 MBC 군사주의 남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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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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