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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모 공공기관의 도서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였다. 그 기관은 서울과 지방 센터로 분리되어 있었는데 나는 지방 센터에서 근무하였고 그곳에서 계약직은 나 혼자였다. 주말에 근무하고 휴무일은 월, 화요일이었다. 점심시간은 먼저 식사를 다녀온 정규직 직원의 교대로 이루어졌다. 근무시간은 도서관 운영시간에 맞추어 정규직 직원보다 30분 늦게 출퇴근하였다. 연차는 정규직 직원의 대체근무 가능 여부에 따라 사용할 수도 못 할 수도 있었다. 이렇게 보면 사실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실제 근무할 당시에도 딱히 불편한 사항은 없었다. 모든 상황이 이 조직에서 내가 배제되는 조건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공교롭게도 각종 회의는 월, 화요일에 있었다. 회의 중 내 업무와 관련된 안건은 잘 전달되지 않았다. 전체 알림은 메일이나 메신저를 통해 공지되었고 거의 정규직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정기적인 회식은 퇴근 후나 점심을 통해 이루어졌는데 나의 경우 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이 달라 자연스레 불참하게 되었다. 사내 결혼식과 경조사 역시 주로 주말에 있어서 사실상 참석이 어려웠다. 한 달에 한 번, 전 직원이 조기 퇴근 후 참여하는 문화의 날 행사에도 제외되었다. 그밖에도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교육 휴가나, 문화 체험 휴가, 병가 등도 도서관 대체근무자가 없었기 때문에 거의 사용할 수 없었다. 계약직 근로자는 노조 가입도 되지 않는다(조합원이 아니라는 것은 이런 불편 사항을 토로할 창구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계약직이 이 모든 걸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은 없었다. 아니, 따지자면 모든 것을 동등하게 참여 또는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내부규정집에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근로조건에는 이 모든 것이 배제되었다.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 정황과 그때그때의 이슈, 상사의 컨디션 등 전 직원에게 공유되는 내용은 항상 내 앞에서 멈추었다. 난 애써 "That's all right!" 이라는 표정을 지은 체 회사 물정 모르고 허튼짓하는 멍청이가 되지 않도록 사내 그룹웨어 게시판과 공유 폴더를 샅샅이 뒤져 그 모든 정보와 업무에 필요한 내용을 수집하며 일을 하였는데 왠지 늘 속이 아팠다. 나중에 한 개인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공동체에서의 소외감이 물리적 아픔과 같은 뇌 부위에서 인식한다는 과학적 사실을 접하고서야 그것이 몸에 가해지는 폭력과 같은 고통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무지하면 무력해진다. 즉, 속한 공동체에서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사항을 알지 못하면 행동에 있어서 자신감이 없고, 위축된다. 그것이 소수를 향한 다수의 (의도적이던 그러하지 않든 간에) 따돌림이라면 상황은 더 안 좋다. 이런 경우 같은 상황의 계약직끼리 연대하여 규정에 반하는 부당한 대우에 건의를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주변에 연대할 다른 계약직 직원이 없었을 뿐더러 노동법 등 관련 지식과 언어가 부족하여 힘을 가질 수 없었다(안다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나와 같은 계약직 근로자 외에 용역 업체를 통해 고용된 미화ㆍ경비 근로자는 대부분 정년을 넘은 노인들이었고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서 근무하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부당한 상황을 대변해 줄 목소리 역시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다 희박한 용기를 긁어모아 여러 고충과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말을 꺼내면 나름 깨어있는 의식을 스스로 자부하며 적극적인 노조활동과 회사의 부당함을 (뒤에서) 큰 소리 내는 정규직 직원조차 굉장히 난색을 보이거나 언짢아했다.

그 이유는 첫 째, 비정규직의 근무 환경을 경장하기 위해서는 정규직의 희생이 필수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연차를 쓰거나 문화의 날을 참여하겠다고 요구를 하면 정규직 직원 중 누군가가 대체 근무를 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자신의 권리를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할뿐더러 상황에 따라 본인 업무를 제때 하지 못해 야근하거나 초과 근무를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 회사는 수당 때문에 연장근무를 권장하지 않는다). 매일을 간당간당하게 살아가는 근로자로서 누가 자기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선뜻 이 일에 나설 수 있겠는가.

사실상 대체 근무자 고용과 같은 회사 차원의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함에도 이런 곤란한 상황에서 운영진은 뒷짐 지고 쏙 빠진 채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그러면 당사자들 사이에선 어색한 침묵만 흐르다 긁어모은 용기가 무색하게 상황은 "신경 쓰게 해 드려 미안하다. 괜찮다"라는 안 해도 될 사과와 함께 흐지부지하게 종료된다. 그 후 실패한 발언은 다시 발의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심리적 이유인데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형화된 약자의 범주에서 벗어나 그들과 별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피력하면 주제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리스타 경력이 있는 나는 직속 상사로부터 가끔 정규직 직원에게 후식 커피를 제공할 것을 요구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내 점심시간이 그들이 식사를 마친 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50여 명의 커피를 만들다 보면 점심시간이 늦춰질 뿐만 아니라 줄어든다. 이것에 대해 상사에게 규정된 식사 시간을 상기시켜 주며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직원들이 식곤증이 올 시간에 커피를 제공해도 되겠냐고 나름 합리적인 대안을 제안한 적이 있었다. 그 순간 상사는 평소 고수해오던 인정 많은 (부하 직원들의 후식 커피를 챙기는) 태도를 돌변하여 시키면 좀 시키는 대로 하라며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더불어 차 준비실 냉장고에서 냄새나고 차갑게 굳은 샌드위치를 가져다주었다. 먹으라고.

2017년 5월 조기대선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직원의 대대적인 정규직 전환계획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당사는 같은 해 10월부터 구체적인 정규직 전환 절차가 진행되었다. 경영 팀 담당자와 사전인터뷰 중 사서자격증을 추가로 취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입사 당시 지원 조건에는 사서자격증이 필수가 아니었고 다른 경력 사항이 인정되어 입사가 결정되었을 뿐더러 근무하는 동안에도 그에 대해 요구 받은 적이 없었다(사서자격증은 전문대학 이상의 관련 학과를 졸업하거나 대학 부설 사서교육원에서 1년 이상의 정규교육과 시험을 통과해야 취득 가능한데 전 직장과 가장 가까운 사설 교육원의 경우 왕복 4시간의 거리였고 수업은 평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였으며 등록금은 연 500만 원이었다).

현 근무조건으로는 사서자격증을 포함한 업무 능률을 위한 자기개발에 투자할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하자 "그것은 핑계일 뿐 개인의 의지"라는 말과 "본사에 있는 도서관 사서 직원과 비교가 많이 될 테니 열심히 준비해 보라"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 전환은 정규직 전환이 아닌 무기 계약직으로의 전환이니 오해하지 말라"라는 추가적인 설명도 덧붙였다.

이후 두 달에 걸쳐 비정규직 직원이 무기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사측은 대상 직원에게 많은 조건을 달며 물리적 압박을 가했다. 전환 조건에 나이 제한이 추가 되면서 지방 센터의 경우 전환자 12명 중 6명이 1년 안에 퇴직한다는 조건이 붙었고, 다른 여러 조건이 충당되지 않는 경우 계약이 해지되거나 전환대상에서 제외되었다. 근무시간의 축소와 경력의 무효화로 급여가 대폭 줄기도 했다. 나의 경우 속한 부서에 인원이 2명이 축소되어 '한 가족'이라는 명칭과 함께 업무도 두 배 이상 늘었다. 문화의 날 행사는 정해진 시간이 아닌 그 주에 자유롭게 참여하되 미리 공유폴더 직원 목록에 표시를 하여 신청을 하는 형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신청을 위해 접속한 그 폴더 안 직원목록에는 나를 포함한 다른 무기 계약직의 이름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했던 대체근무자 고용 예산은 해가 바뀌어도 확보되지 않았다. 본사 도서관의 같은 조건에서 근무하는 무기 계약직 직원의 경우, 이미 지난 몇 년 전부터 대체근무자를 적극 고용하여 이들이 모든 회사 행사 및 교육,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속해오던 근무 조건과 급여 역시 그대로였다. 정규직 직원들에 대한 커피 제공도 계속되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라고는 계약직 앞에 '무기'가 붙어 앞으로는 기한 없이 조직에서 배제된다는 조건이 붙었을 뿐이다. 당사의 이번 무기 계약직 전환자중 나를 포함한 절반 이상이 3개월 이내에 퇴사하였다. "있어봐, 내가 한 번은 들이받을 거야. 어차피 난 나이 때문에 안 되니까 내가 대신 쫓아가서 따질게"라고 말하다가도 막상 부서장 앞에선 기죽던 경비 할아버지의 모습이 마음에 남을 뿐 조용한 퇴장이었다.

이제야 당시엔 할 수 없던 질문을 던진다. 내가 받은 모욕이 정당했는지, 당연한 듯 행해진 무례함이 합당했는지. 그때는 많은 부당함의 이유를 '능력이 부족해서 성격이 내성적이니까 스펙이 안돼서'라는 나라는 개인에게서 찾았다. 개인 탓이 되자 이 모든 부당함이 당연하게 생각되었다. 하지만 애초에 합당하고 정당한 모욕과 무례함 같은 것이 존재할 리 없다. 그것은 단지 비인격적인 사회적 왕따일 뿐이다. 공공기관에 입사했다며, 재취업에 성공했다며 기뻐하던 가족과 친구들의 축하 속에 설렘과 의욕이 넘치던 가슴을 안고 첫 출근 하던 때가 아득하다. 이제 나는 다시 사회 속에 돌아가 누군가와 함께 일할 수 있을까? 사실 많이 두렵다.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누구에게 던져야 할지 난 아직 모르겠다.


태그:#비정규직, #계약직, #무기계약직, #공공기관, #정규직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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