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뉴스룸>에 출연한 정우성과 손석희 앵커.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정우성과 손석희 앵커. ⓒ JTBC


"저 역시도 난민과 유엔난민기구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굉장히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었다. 이 '선택받음'이 제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어떤 기점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흔쾌히 응했지만, 활동을 시작할 때는 굉장히 두려웠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 '선택'을 받았다고 말하는 배우 정우성. 그는 지난해 6월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 친선대사 활동을 하게 됐을 때 느꼈던 감정을 '두려움'이라 표현했다. 세계적으로 방대하고 엄청난 사안인 난민 문제를 우리 사회에 어떻게 알릴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난민촌에 갈 때마다, 방문하기 전에도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의 정체를 정우성은 두 가지로 설명했다. 난민촌에서 보게 될 사람들의 처참함과 절실함이 첫 번째였다. 이어 정우성은 한국의 작금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난민 문제를 자신이 어떤 진실 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이중의 두려움을 고백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국 국민들이 난민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했다.

"난민이라는 단어가 굉장히 이질적이고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똑같은 삶을 살았던 분들이에요."

여러 차례 난민 문제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밝혔던 정우성. 그는 지난해 12월 JTBC <뉴스룸>에 출연해서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손석희 앵커와 인터뷰하면서 오롯이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로힝야 난민촌을 소개했던 그는 "내가 여기서 몇 마디 했다고 그들의 아픔을 전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면서도 핵심을 확실히 짚어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왜 난민에 대해서 우리가 알고 관심을 가져야 되느냐고 질문을 하세요. 그런데 사실 이렇게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도 사실은 분단국가이고, 세계 유일의. 그리고 6.25라는 전쟁을 겪어 실향과 난민에 대해서는 어떤 민족보다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라는 여지도 있고요. 또 국제사회의 도움도 받았고... 국제사회와 시민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그들에게는 도움이 절실합니다."

정우성이 겪었다는 그 두려움의 정체 

 정우성은 20일 자신의 SNS에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게재했다.

정우성은 20일 자신의 SNS에 난민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는 글을 게재했다. ⓒ 정우성 인스타그램


정우성이 말한 그 '두려움'은 어쩌면 세상의 흔한 포비아에 대한 전단계로, 그 은유로 읽을 여지가 크다. 포비아는 대개 대상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일컫는다. 객관성을 유지한다면 절대 위험하지 않거나 불안감을 주지 않는 대상에 대한 공포 말이다. 그 무지가 인간 특유의 상상력과 강력하게 결부됐을 때, 포비아는 더 큰 공포증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 두려움이 집단무의식으로 진화, 사회적 차원의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 보라. 전체주의는 그런 공포를 먹고 사는 법이다. 아마도 정우성이 스스로 겪었다고 고백한 그 두려움은 난민대사로 활발하게 활약하면서 '예방주사'로 작용했을지 모를 일이다. 처음 접하는 대상으로부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누군들 없으랴.

허나 정우성은 그 두려움을 깨나가면서 역사를 곱씹었던 것 같다. 나와, 우리와 저들이 다르지 않다는 동질감을 찾아가면서 말이다. 그런 정우성에게 때 아닌 비난이 쏟아졌다. 바로 세계난민의 날이었던 어제(20일) 벌어진 일이다.

"오늘은 세계 난민의 날입니다. 전 세계에서 6850만 명의 사람들이 집을 잃었다고 합니다. 이 중 1620만 명은 2017년 한 해 동안 집을 잃었습니다. 오늘 #난민과함께 해주세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연대로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세요."

이날 정우성이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적은 글 중 일부다. 그는 자신이 지난해 말 방문했던 방글라데시 투쿠팔롱 난민촌의 사진과 함께 지난 18일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가 발표한 '제주 예멘 난민신청자 관련 유엔난민기구의 입장'이란 성명이 담긴 사진을 동시에 게재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제주 예멘 난민'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로서 충분히 취할 수 있는 '액션'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기실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의 성명 내용은 평이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자주 입장을 내는 단체도 아니거니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거나 "예민 난민신청자를 돕기 위해 한국 정부와 제주도민들이 보여준 노력에 감사를 표현다"는 내용 역시 유엔난민기구라면 능히 표명할 수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도 비난은 그칠 줄 몰랐다. 심지어 웹툰작가 윤서인은 20일 본인의 소셜미디어에 "니 왜 남보고 희망이 되어달라고 하느냐. 자기는 희망이 안 되어 주면서. 최소 몇 명이라도 좀 데리고 살면서 그런 소리를 하라"며 요즘 말로 '어그로'를 끌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예민 난민 문제를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은 정우성에 대해 무수한 말들을 쏟아내는 중이다.

아마도 "그 어떤 예멘인도 강제송환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엔난민기구의 단호한 입장"이란 성명서 속 표현 때문이리라. 지난해 "로힝야족을 도와달라"던 그 정우성에게는 나타나지 않았던 공격의 근간은 무엇일까. 그게 다 저 '두려움'때문 아닐까. 

정우성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그 무엇 

'백상' 정우성, 여심 저격수! 배우 정우성이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백상' 정우성, 여심 저격수! 배우 정우성이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54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모든 난민을 반대하는 게 아니고요. 우리가 합법적이며 순수한 난민들은 받아야 되는 입장이고. 그러나 제주도에 집단적으로 몰려오는 예멘의 난민의 경우에 모든 사정과 정황을 볼 때에 순수한 난민 성향의 어떤 난민이 아니고 다른 어떤 의도와 목적을 가진 그런 무리들이기 때문에 그것을 빨리 법을 개정해서 그런 것은 막아야 된다 이런 취지입니다."

순수한 난민? 이거 참으로 친숙해져버린 레토릭 아닌가? 순수한 피해자, 순수한 유족과 같은 그 순수 프레임 말이다. 지난 19일 역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와 인터뷰한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최수일 자문위원은 그렇게 '순수'를 강조하고 있었다.

"난민들 중 20대 남성들이 많다"는 이유로 불법 취업 아니냐는 의심은 기본이요, 예멘 난민들의 "범죄 연루"도 우려했다. 그의 인터뷰를 듣노라면 한국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중동 난민 관련 '가짜뉴스'의 독후감을 대하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다. 예컨대, 이런 식.

"특별히 예멘 사람들이 작년부터 한 6개월 이내에 대규모로 몰려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시민들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그런 불법 취업적인 그런 요소가 많고 또 외국 불법 취업자들이나 불법체류자들 가운데 중에서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이 많고 또 신분이 검증이 안 됐기 때문에 범죄에 연루됐다고 할지라도 추적이 매우 어려운 그런 형편입니다. 그런 형편에 있어서 실질적으로 제주도 시민들은 도민들은 그쪽에서 그걸 목격하니까 또 피부로 강하게 느끼게 되는 것인데."

최수일 자문위원의 시각은 지금 제주 예멘 난민들을 둘러싼 일각의 우려를 집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외국 발 '가짜뉴스'와 페이크 이미지들을 퍼다 나르며 중동 난민들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지금, 여기에서 역사적 근거도, 현실적 맥락에도 섬세하게 가 닿지 못한 보도들이 속속 생산되는 중이다.

제주 예멘 난민을 반대하는 청와대 청원자 33만(21일 오후 4시 현재)과 같은 대중의 포비아를 등에 업고서. 공포와 혐오증을 먹고사는 이러한 독버섯 같은 보도야말로 난민에 객관적 시선이나 정부의 엄중한 대응을 방해한다고 볼 수 있다. 실제는 어떨까.

"'한국에서 난민을 인정하는 건수가 급증하고 있다'라는 주장, 인원이 늘어난 것은 맞습니다. 2010년 47명에서 2017년 121명으로 2.5배정도 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난민 신청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2010년 423명에서 2017년에 9942명이었습니다. 난민으로 인정되는 비율은 떨어졌습니다. 2010년 18%에서 2017년 1.5%였습니다. 인정되지 않으면 대부분 추방 됩니다."

난민은 급속도로 늘고 있지만, 한국의 난민 인정 비율은 오히려 떨어졌다. 대부분 '추방' 당할 뿐이다. 그렇게 지난 19일 JTBC <뉴스룸> '팩트체크'는 '예멘 난민 신청자, 월 138만 원 지원 받는다?'는 난민 관련 루머들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부풀린 난민 인정자의 생계비도, 1인 기준 최대 43만 원이었다. 그나마 심사 기간도 최장 6개월에, 2017년은 전체 난민 신청자 중에서 단 4%만 지원을 받았다.

시중에서 떠돌고 있는 "스웨덴에서 이슬람교를 믿는 난민이 증가해서 성폭행이 1400%가 증가했다"라는 소문 역시 스웨덴 정부가 발표한 적 없는 허위였다. 대중의 공포 심리를 이용한 전형적인 가짜뉴스였다. 부풀려진 난민 생계비 역시 "내 세금이 난민에게 쓰인다"는 전형적인 선동이라 할 수 있다.

이럴 때야 말로 오히려 예멘 난민들을 돕고 있는 제주민들은 어떤 생각인지, 또 제주의 실상은 어떤지, 정부 당국은 앞으로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으로 관측되는 난민들에 대해 향후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하지 않겠는가.

집단적인 혐오는 결국 무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일차원적인 두려움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리라. 난민 문제를 열심히 공부했다던, 실제 난민을 마주하고서야 두려움을 벗어나고 있다는 정우성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제주 예멘 난민 문제는 지극히 섬세하고 상식적이며 보편타당한 시선이 담보돼야 한다. 정부의 객관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이유다. 하지만 지속적인 난민 공포증으로 확산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포비아가 집단공포증으로 확산되기 전에, 우리 개개인의 삶의 조건을 위해 공기처럼 존재해야 할 인권의식을 갉아먹기 전에 말이다.

정우성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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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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