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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신지예씨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지자가 보내준 손편지를 들어보이는 신씨.
 6.13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신지예씨가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지자가 보내준 손편지를 들어보이는 신씨.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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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4일 일간지·방송사 인터뷰 5개, 6월 15일 잡지사·주간지 인터뷰 6개...'

6.13 지방선거에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던 신지예(27)씨가 선거가 끝난 뒤 이틀간 소화한 일정이다. 15일 오전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위치한 신씨의 사무실을 찾았을 때도 언론 인터뷰가 한창이었다.

"선거 운동할 때나 이렇게 와주지...(웃음)"

신씨의 인터뷰 일정을 돕는 한 녹색당원이 귀띔했다. 선거 레이스는 끝났지만 후보도 자신도 쉴 시간이 없다고 했다. 신지예씨가 총 8만 2874표(1.67%)를 받아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에 이어 4위를 기록하면서 매스컴의 관심이 쏟아진 터였다.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 후보보다도 앞선 득표율이었다. 인지도 없는 원외 소수정당 후보로서는 대성공이었다는 평가가 주되다.

"저는 결과가 아쉬워요. 개표날엔 어찌나 아쉽던지..."

언론의 호들갑에도 불구하고 정작 신씨는 아쉽다고 했다.

"다만, 용기를 얻었어요. 제가 가는 길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있었는데 이번 선거를 통해 그 길이 느릴 수는 있더라도 결국은 옳은 길이라는 걸 확인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새로운 정치의 첫 발을 잘 내디딘 것 같아요."

신씨는 "오늘의 1.7%가 더 커지도록, 그 1.7%가 꿈꾸는 사회를 이제는 대다수가 함께 꿈꾸도록 만들 책임을 느낀다"면서 "2020년 총선에선 녹색당이 원내 정당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아직 '배고픈' 4등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페미니즘 정치 열망 높았던 것... 새로운 정치의 시작"

신지예씨 사무실에 붙어있는 스티커. '여성은 강하다'라고 써있다.
 신지예씨 사무실에 붙어있는 스티커. '여성은 강하다'라고 써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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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가 끝났다. 소감이 어떤가.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웃음). 더 많은 시민들을 찾아 뵙고 정책도 더 많이 소개했으면 어땠을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게 새로운 정치의 시작이 아닐까, 싶다. 이번 선거에서 냈던 메시지가 '페미니스트 정치'와 '평등의 정치'였는데 그것을 향해 한 발 잘 내디딘 것 같다. 사실 (기호) 8번까지 내려와서 도장 찍기가 쉽지 않지 않나. 찍겠다는 마음이 있어도 투표소에 들어가면 흔들리는 게 보통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8만 명이 넘는 많은 분들이 힘을 실어 주셨다는 걸 보면 그만큼 한국 정치의 변화, 또 페미니즘 정치에 대한 열망이 높은 게 아닌가 싶다."

- 지난 5일 <오마이뉴스> 인터뷰(관련 기사 : '그런 눈빛' 신지예의 586 세대교체론 "혐오 발언 김문수 만큼은 이기고 싶다") 때 외부로는 이번 선거의 목표를 지지율 5%라고 말한다고 했다. 실제 목표는 얼마였나.
"2%는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희망했는데...(웃음) 아쉽다."

- 선거 끝나고 이틀 동안 뭘 했나.
"어제는 정말 인터뷰가 꽉 차있었고, 오늘도 아침부터 인터뷰가 계속 있다. 쉬지를 못했다. 선거 끝나니까 더 바쁜 것 같다(웃음). 선거 사무실은 다음주 월요일 즈음 뺄 것 같다. 아직 어머니도 못 뵀다."

- 선거 끝나면 꼭 하고 싶은 게 있었을 것 같은데.
"6개월 동안 준비하느라 정말 바빴다. 제가 플레이스테이션을 엄청 좋아하는데...(웃음) 새 게임 나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사실 원래 '워커홀릭(workaholic, 일 중독자)' 스타일이다. 쉬는 걸 불안해한다. 계속 일을 벌리는 스타일이다. 또 그렇게 바쁘게 살아가지 않을까...(웃음) 드문드문 공부도 하고 싶다. 지난 6개월 동안 책 한 권도 못 본 것 같다. 하다 만 철학 공부도 다시 하고 싶다."

"후원금 1억 5천만 원은 기적... 1.7%가 기존 정치 압박할 것"

- 6개월 선거 운동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나.
"TV 토론에 많이 못 나간 게 가장 힘들었다. TV에 나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결국 정치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현재 TV 토론에 나갈 수 있는 요건들은 군소 정당이나 정치 신인에게 지나치게 불리하다. 예컨대 선거 운동 개시일 이전 30일 동안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 지지율 이상을 받은 사람들만 TV 토론에 나갈 수 있게 하는 식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TV토론에 나와 충분히 유권자들에게 소개를 한 뒤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게 순서 아닌가. 지금 방식대로면 이미 유명하거나 큰 정당에 있는 후보들만이 TV 토론에 나갈 기회가 주어진다. 정말 많이 답답했다."

- 27세, 최연소 광역단체장 후보였다. 청년으로서 큰 선거를 치르는 데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다.
"이번 선거에 1억 5천만 원 정도 썼다. 기탁금 5천만 원에, 현수막·공보물·벽보 합쳐서 6천만 원, 나머지 4천만 원으로 사무실 월세와 인건비, 기타 잡비를 썼다. 굉장히 적은 돈으로 선거를 치른 거다. 무엇보다 그 1억 5천만 원을 후원금으로 모았다. 거의 기적 같은 일이라고 본다.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를 바라는 이들의 힘이 모였기 때문에 정말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저는 통장에 천만 원도 없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저희 당이 큰 정당도 아니고, 그만한 돈도 없지 않나. 시민분들이 없었다면 결코 여기까지 못 왔다. 아마 후보 등록도 못했을 것이다."

- 자비는 하나도 안 썼나.
"물론 자비도 썼다. 그러나 제가 쓴 건 정말 조금이다. 썼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정도다.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 받지 못했다는 걸 자비 쓴 걸로 쳐야 하려나...(웃음) 저희 녹색당 기조 자체가 개인에게 선거운동 비용을 전가시키지 않는다. 매 선거 때마다 공동으로 모아서 선거를 치러왔다. 후원금이 정말 많이 들어오긴 했지만 투표 전날 확인했을 땐 몇 백 만원 정도 부족했던 것으로 안다. 아직 최종 확인을 못해서 정확한 집계는 모르겠다. 후원금은 정말 기적이었다."

- 지난 인터뷰에서 어머니 얘기를 했다. 처음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뭐라고 하던가.
"제가 참 복이 많은 게, 어머니 복이 많다. 어머니는 저를 매우 지지해주시고 어떤 선택을 해도 든든하게 '그럼 해봐라, 내가 지원해줄게' 해주시는 스타일이시다. 이번에도 많이 응원해주셨다. 집에 계속 찾아오셔서 음식 해주시고 청소 해주시고... 큰 버팀목이 됐다. 끝나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기로 했는데 바빠서 아직 얼굴도 못 뵀다."

- 당선권은 아니었다. 군소 정당 후보들의 출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가 갖는 의미가 단순히 승패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선거는 시민들이 어떤 이념과 꿈을 갖고 있는지 통계로서 보여주는 이벤트다. 이번에 녹색당 정치 혹은 페미니즘 정치가 서울에서 1.7%의 지지율이 받았다. 그것 자체로 당선된 시장을, 다른 정당들을 압박할 수 있는 요소가 된다. 기존 정치를 압박하는 거다.

또 장기적으로 볼 때 그 1.7%가 더 커지고, 그들이 꿈꾸는 사회가 대다수의 꿈이 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도 느낀다. 꼭 제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8만 명이나 되는 서울시민이 갖고 있는 정치에 대한 바람들이 선거로 나타난 것 아닌가. 첫 발은 잘 디뎠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그 파이를 조금씩 키워나가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선거가 사회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고 볼 땐 이번 선거로 페미니즘 정치의 등장을 잘 알린 것 같다."

'쇠파이프로 머리를...' 벽보 훼손보다 걱정됐던 건 사이버불링

신씨의 책상.
 신씨의 책상.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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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지예 개인이 이번 선거에서 얻은 건 뭘까.
"녹색당에서 정치활동을 하면서 힘들었거나 좌절했던 경험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분명 있었다. 우리가 진짜 원내에 진입할 수 있을까? 녹색당이 얘기하는 이상들, 당내에서 실천한 78% 여성 후보 공천, 여성 과반 대표제 실시, 추첨제 대의원 제도 등 정치적 실험들이 과연 녹색당 밖을 넘어서도 가능할까?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내가 가는 길에 확신이랄까, 용기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꿈을 꾸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엄청난 힘이다. 더 용기 있고 대담한 정치를 해나갈 시점인 것 같다."

-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이 있다면.
"20대 초중반 정도 되는 한 여성분이었다.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찾아오셨다면서 제 손을 잡고는 '나와주셔서 감사하다, 용기가 됐다'고 해주셨다. 또 중학생 한 분이 편지를 주셨는데, '신지예를 보고 나중에 커서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왠지 모르게 굉장히 감동적이었다."

- 가장 아쉬운 순간은.
"개표날이다(웃음). 좀 더 할 수 있었는데, 지지율 좀 더 얻을 수 있었는데..."

- 20여 건 넘게 벽보가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지난 인터뷰에서 '괜찮다'고 했지만 두려움을 느끼진 않았나.
"개인적으로 벽보 훼손 건에 대해서는 별로 타격이 없었다. 다만 강남역 연쇄 벽보 훼손 때는 좀 걱정스럽더라. 제가 두렵다기보단 이 사람이 누굴까, 이 사람이 어떤 일상을 살까, 그런 게 궁금했다. 불특정 다수의 여성을 향한 분노나 혐오 같은 것들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사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사를 촉구한 것도 벽보를 훼손한 사람을 빨리 잡아달라는 취지였다기 보단, 여성 혐오를 드러낸 사건의 범죄자가 일상에서 다른 범죄를 또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사실 벽보 훼손보다 더 걱정됐던 건 사이버불링(cyber bullying, 온라인 공간에서의 집단 괴롭힘)이었다. 개인 메시지로 '쇠 파이프로 죽을 때까지 머리를 때리고 싶다'거나, '칼로 가슴을 도려내고 싶다'는 내용의 댓글들이 있었다. 사이버상이지만 그런 혐오 발언들을 쏟아내는 사람들과 그들 주변의 여성이 염려스러웠다. 다행히 유세 기간 동안 다행히 그런 일들을 직접 대면하진 않았지만... 실제 겪어보니 더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바꾸는 정치, 꼭 보여줄 거예요"

신지예씨는 "손에 쥔 것 없는 사람들이 정치에 나섰을 때 얼마나 정치가 바뀔 수 있는지 꼭 증명해내고 싶다"고 했다.
 신지예씨는 "손에 쥔 것 없는 사람들이 정치에 나섰을 때 얼마나 정치가 바뀔 수 있는지 꼭 증명해내고 싶다"고 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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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목표는 뭘까.
"녹색당 원내진입이 목표다. 총선이 2년도 안 남았다. 최선을 다 할 거다."

- 총선에 출마하나.
"음...(웃음) 잘 모르겠다. 정치인으로서 활동은 계속 할 생각이지만 제가 출마하고 싶다고 출마가 되는 건 아니다. 녹색당은 내부에서 당원들이 투표를 해서 후보자를 정한다. 후보자가 돈이 있다거나 유명하다거나 기탁금을 낼 수 있다고 해서 출마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 신지예 개인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
"녹색당의 서울시당 공동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녹색당 서울시당을 잘 이끌어야 할 것 같다. 선거 때 페미니즘 정치를 얘기한 만큼 할 일도 많다. 선거 운동을 하면서는 서울시장이 할 수 있는 권한 내에서 가능한 정책들만 말해야 하는 게 답답했다. 만약 입법 권한도 있다면 더 다양한 해법들이 나올 수 있지 않나. 그 일환으로 여성단체와 '불법촬영 근절' 관련 정책 간담회를 계획 중이다. 낙태죄 위헌 소송 상황도 문제다. 정부 쪽 기류가 매우 불만스러운데, 계속 주시하면서 활동할 거다."

- 마지막 질문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정치하고 싶으면 민주당 같은 큰 정당에 들어가 구의원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번 선거에서 대중정치인으로서 얼굴도 알렸다. 혹시 실제로 그런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이들이 정치를 혁신하겠다며 끊임없이 거대 정당에 들어갔다. 그 당 내부부터 쇄신시키겠다는 운동이었지만,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다 실패했다. 나도 만약 그 정치 카르텔 안에 들어간다면 그저 간택 받거나 발탁 받고 싶어하는 수많은 정치인 중 하나가 될 뿐이다. 정치 카르텔 안에 속해, 오히려 그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는 정치인으로밖에 남지 못할 거라는 얘기다."

사뭇 진지하던 그가 갑자기 웃어 보였다. 그의 '진짜' 목표는 한 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막바지에야 조금 드러났다.

"사실 이번 선거에서 당선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제 목표는... 정치사의 흐름을 바꾸고 싶다는 거예요. 지금껏 새 정치는 모두 기존의 사회적 자본을 이미 갖고 있는 세력의 움직임이었어요. 과거의 안철수도 마찬가지였죠. 저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 손에 쥔 것 없는 사람들이 정치에 나섰을 때 얼마나 정치가 바뀔 수 있는지 꼭 증명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녹색당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잃을 게 없거든요. 흐흐. 저 또한 소수자로서, 돈 없고 결혼도 안 하고 일반적인 고등학교, 대학교도 안 나온 여성, 대안학교와 사이버대학교를 나온 여성으로서, 대변하고 싶은 자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나설 때, 기존의 정치와 전혀 다른 정치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를 잘 해내야만 한국이 진정한 다당제로 넘어갈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그러기 위해 제가 할 일은 반드시 녹색당을 원내에 진입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서 녹색당이 말하는 선거 개혁, 정치 개혁, 사회 개혁들을 실제로 실행시키는 일입니다. 굉장히 길고, 지난한 싸움이 되겠지만... 저는 이게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요. 느리게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옳은 길."


태그:#신지예, #녹색당, #페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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