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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옛 묘역 길목의 전두환 기념비는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이 세운 비를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었다.
▲ '전두환 기념비' 밟는 이낙연 총리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오전 광주 북구 망월동 5.18 옛 묘역에 들어서면서 바닥에 묻힌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있다. 옛 묘역 길목의 전두환 기념비는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이 세운 비를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가 1989년 부순 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묻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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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부터 올해 내내 광주에서는 전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5. 18 연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이름 하여 '2018년 선생님과 함께하는 오월 이야기'다. 민주, 인권, 평화라는 5. 18 정신의 전국적 확산을 목표로 광주광역시교육청이 주최하고, 5.18 기념 재단이 주관하는 금요일과 토요일 1박2일의 연수 프로그램이다.

4월 말에는 부산광역시교육청 소속 40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하였고, 5월에는 전라북도교육청에서 50여 명이 이미 광주를 다녀갔다. 지난 6월 15일~16일에는 경상남도교육청에서 56명의 초중고 교사들이 함께했다. 각 꼭지를 분 단위로 쪼개 운영해야 할 만큼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모두들 힘든 내색 하나 없이 열정적으로 참여하였다.

'5. 18 연수'는 얼추 20년이 다 되어갈 만큼 오래된 프로그램이지만, 올해는 조금 남다른 구석이 있다.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뒤, 모든 광주시민들의 한결같은 염원이었던 '5. 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은 오롯이 5. 18 정신의 공유와 확산으로 이어져야 하고, 이는 당장 미래세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몫이라는 판단에서다.

5. 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학계의 역사적 평가는 이미 끝났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2011년 당당히 민주주의 인권 분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명실공히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초석으로 굳건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에선 '북한군의 소행' 운운하는 등의 의도적인 왜곡과 폄훼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한 가짜 뉴스들은 다시 '일베' 등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독버섯처럼 퍼져가고 있으며, 특히 의미보다 재미를 우선시하는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잘못된 편견에 사로잡히게 될 우려가 크다. 흔히 조롱하듯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아이들은 민주시민교육의 부재가 가져온 당연한 결과일 뿐이다. 교사의 역할이 그 무엇보다 막중하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의 연수가 전국의 교사들을 '찾아가는' 방식 위주였다면, 올해는 광주로 직접 '초청하기로' 했다. 5. 18 정신을 가슴에 새기려면, 우선 참혹했던 역사의 현장에 직접 발 딛고 서봐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더불어 교재와 강의 위주의 '보고 듣는' 형식에서 현지답사와 연극, 작은 음악회 등의 공연을 통해 '체험하고 느끼는' 방식으로 프로그램의 내용도 다양화하였다.

참가자들 중에는 유가족의 증언과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과정을 듣고 울먹이는가 하면, 5. 18 묘역에서는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고 먹먹해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연주되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남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불렀고, 오월에서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다짐을 노래할 때는 즉흥적인 춤사위로 화답하는 교사도 있었다.

특히 경상남도에서 온 교사들이 보여준 모습은 외려 연수를 진행하는 광주의 교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적극적인 참여 태도도 놀라웠지만, 소감을 나누며 연수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과거의 경험을 고백하며 광주시민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뭉클하기까지 했다. 흡사 십자가 앞에 무릎 꿇은 '고해성사'였고, 이내 평가회는 참회의 시간으로 변했다.

연수 기간 동안 느꼈던 바를 사죄의 내용을 담아 시로 써서 낭송하는가 하면, 자신의 이름 석 자로 삼행시를 지어 광주의 원혼을 위무하기도 했다. 한편,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이 경상남도 합천이라면서 대신 용서를 구한다는 교사도 있었다. 광주 학살의 최종 책임자인 전두환이 바로 옆 동네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 대학생이 될 때까지도 전라도에 가면 경상도 사람들을 해코지한다는 풍문을 곧이곧대로 믿었다면서, 전라도에 답사라도 올라치면 사투리 때문에 좀체 입을 열지 않았다는 '웃픈' 고백을 하는 교사도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위 어르신들이 웬만하면 전라도 출입을 삼가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단다. 하물며 전라도 사람과의 결혼은 꿈조차 못 꾸었다고 했다.

지금도 시골 고향 동네에 가면 전라도 사람들은 나중에 뒤통수를 친다거나 돈을 빌려주면 떼먹기 일쑤라는 등의 억지스런 험담을 쏟아내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손주들 앞에선 더 없이 좋은 할아버지고 이웃에겐 인심 좋은 어르신이지만, 유독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선 야박하다는 것이다. 드물긴 하지만, 여전히 전라도 사람을 '빨갱이'라며 낙인찍는 이도 있단다.

물론, 그럼에도 그분들을 탓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여태껏 신뢰보다 증오를 앞세우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득세해 온 정치인과 보수 언론에 휘둘려온 결과이니, 그들 역시 피해자라는 것이다. 지난 6. 13 지방선거로 수십 년 간 유지돼온 공고한 지방권력이 단숨에 교체되었으니, 그들 역시 눈과 귀가 있다면 크게 깨달은 바가 있을 거라며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해묵은 지역감정의 덫을 스스로 빠져나온 이웃의 사례를 소개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르신인데, 건강을 챙기기 위해 주말마다 산악회에 참여하면서 전라도 사람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었다고 한다. 전라도 지방에 산재한 산들을 꾸준히 오르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허물없는 대화가 수십 년 간 굳어진 편견을 눈 녹듯 사라지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결국 정치인과 보수 언론에 의해 닫힌 어르신들의 완고한 눈과 귀도 지속적인 만남과 교류를 통해 다시 열리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봇물 터지듯 쏟아진 참가 교사들의 고백은 앞으로 '5. 18 연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해준 셈이 됐다. 전국의 교사들을 광주로 초청해 5. 18 정신을 공유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지금껏 지역마다 특색을 살린 민주시민교육을 지속해왔지만, '따로 국밥'처럼 겉돌기 일쑤였다. 예컨대, 제주 사람들 중에 4. 3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것을 5. 18과 연결 지어 이해하려는 이는 실상 드물다. 부마항쟁이 5. 18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역사적 사실조차 영호남 사람들은 따로 떼어내 이해하려는 관성이 있다.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정신이 대구 2. 28과 마산 3. 15로 이어졌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 5. 18 정신과 부마항쟁의 정신이 결코 별개일 수 없듯, 서로 만나 정신을 공유하는 접촉면을 늘려가야 한다. 광주와 제주, 대구, 부산, 마산은 모두 지역민들의 피로 민주주의를 지켜낸 성지이며, 형제 같은 도시다. 서로 눈 흘기거나, 소 닭 보듯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우선 중고등학교의 수학여행부터 손보면 좋겠다. 언제부턴가 수학여행이라고 하면 비행기 타고 제주도 가는 것 아니면 놀이공원을 경유해 서울 구경 가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버렸다. 과문한 탓인지, 광주 지역 학생들이 대구나 마산으로 수학여행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모르긴 해도, 대구나 마산 지역 학생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수학여행 설문조사를 할 때 선택 항목에 애초부터 포함되지 않는데다, 인솔하는 교사들조차 별 관심이 없는 탓이다. 광주 부산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서울 부산에 비해 절반인데 반해, 정서적 거리감은 두 배로 먼 듯하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이 연이어지며 서울과 평양조차 가까워지는 마당에 아직도 영호남 갈등 운운하는 건 낯부끄러운 일이다.

다행히도 물꼬를 틀 수 있는 환경은 조성되었다. 지난 6. 13 지방선거 결과 부산, 울산, 경남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고, 지역감정 혁파 의지를 밝힌 도지사가 탄생하였다. 지역감정을 비롯한 그릇된 편견과 전도된 가치관이 뒤틀린 현대사와 역사교육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사실에 동의한다면, 당장 영호남 지역 교육감과 도지사부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요컨대, 이번 연수 프로그램이 목표로 하는 '5. 18 정신의 전국화'는 실상 거창한 게 아니다. 학생과 현직 교사들뿐만 아니라, 지역민 누구나 현대사를 매개로 서로 교류할 기회를 넓혀주면 될 일이다. 손 맞잡을 계기가 없었을 뿐, 민주, 인권, 평화라는 5. 18 정신은 광주에도, 제주와 대구, 부산, 마산 등 전국 어디에도 있다.


태그:#5. 18 광주민주화운동, #진보 교육감, #지역감정, #영호남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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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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