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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노무현이라는 사람>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
ⓒ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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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개봉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인간 노무현의 모습을 조명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185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 흥행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2002년 민주당의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을 도왔던 수많은 사람의 인터뷰는 일반인들이 미처 알지 못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11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 안에 수많은 인터뷰를 편집해 놓은 탓에 다양한 뒷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했다. 이에 아쉬움을 느낀 이창재 감독이 영화에 담지 못했던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지난 5월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9주기에 맞춰 출간된 <노무현이라는 사람>(수오서재)이 그것이다. 부제가 '영화 <노무현입니다> 원작'이듯 다큐멘터리 영화에 미처 담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명분과 실리가 비슷할 때는 언제나 명분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노무현의 인간미와 진정성, 정의, 시민의식, 가치, 책임감, 리더십 등을 주제로, 가까웠던 사람들이 옆에서 본 노무현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원칙 결벽증'이 있었던 원칙주의자 노무현의 모습에서 바보 소리를 들었던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명분과 실리가 충돌할 때 노무현의 선택은 최대한 명분이었다. 노무현을 겪었던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노무현의 말은 이랬다.

"명분과 실리가 5:5나 4:6의 비율이면 길게 봐서 명분을 잡는 게 이익이다. 큰 틀에서 보면 그 손해는 결국 이익이다. 누구에게서 이익을 구하는 것보다 자신이 그 이익을 건네줌으로서 얻는 게 많다. 명분과 가치, 목적이 있다면 목적을 버리고 명분과 가치를 선택하는 게 옳다. 눈 앞의 이익은 금방 사라진다. 큰 틀에서 볼 때 그게 옳다."


정치적 이익만을 챙기려는 세태에서 노무현의 선택은 다른 것이었다. 당선이 편한 서울 종로에서 사지인 부산으로 내려간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가 불리하다는 전망에도 2002년 대선에 뛰어든 것도 명분 없이 출마한 당시 이인제 후보에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1997년 경선에서 지고도 출마한 원칙 없는 정치인을 용납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노무현은 자신에게 많이 불리한 조건이었던 정몽준과 단일화 방법을 그대로 수용했다. 노무현의 사이버 보좌관 역할을 했던 부산의 황의완씨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지면 어쩌려고 그걸 받으셨어요. 도대체 무슨 생각이셨어요? 하고 물으니 웃으면서 말씀하시더라고요. 후보 단일화에서 내가 질 수도 있는 거지. 후보 단일화를 하면서 내가 무조건 이긴다고 생각하면 그게 무슨 후보 단일화야. 후보 단일화를 하면 내가 질 수도 있다는 각오를 하고 가야지"

노무현은 무한 낙관주의자였고 정치적으로 고수나 하수가 아닌 '무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노무현이 수를 쓰는지는 정치 고수들도 알 수 없었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은 그는 역사의 진보를 긍정하고 있었다. 당시 여론조사 경선 승리 소식을 측근에게 전해들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져서 말이야. 패배한 사람이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는 것도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될낀데, 이겨서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패배자가 어떻게 승복하고 돕는지 보여주는 게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한 모습 아이가."


이런 노무현을 마지막 순간까지 옆에서 보좌했던 정치인 김경수는 '마지막 비서관'이란 이름표를 평생 가슴에 묻어둔 이름으로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노무현이 만들고자 했다는 '사람사는 세상'을 숙제라 생각하고 풀어가겠다면서 이 시기 해결해야 할 과제를 푸는 정치인이 되는 게 마지막 비서관이라는 이름을 자랑스럽게 간직하는 길이라고 다짐한다.

먹고 자는 시간 외에는 국정에 전념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한 문재인 대통령
 영화 <노무현입니다>에 출연한 문재인 대통령
ⓒ 영화사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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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을 증언한 측근들은 그의 부지런함을 이야기하며 지독한 일중독자였음을 전한다. 노무현은 청와대의 모든 분야 보고서를 꼼꼼히 챙겨보는 대통령이었다.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국정에 쏟았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자서전 <운명>에서 참여정부 참모진이 과도한 업무로 인해 치아가 다 빠질 정도였다고 한 것은 그만큼 대통령 노무현의 업무량 때문에 참모들의 고생도 만만치 않았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노무현 대통령 옆에서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국정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 국정 전체를 파악하고 이해한 다음 결정하기 위한 철저한 학습이 대단했지요. 늘 많은 양의 독서와 자료 분석을 했고, 사적인 생활은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습니다. 아마 눈을 뜨면서 주무실 때까지 온종일 국정만 챙겼을 겁니다."

솔직했고 꾸미기 싫어했던 노 전 대통령은 보여주기 식 행동을 즐겨하지 않았고, 중요한 회의에는 실무자까지 배석시켰다. 정보기관장과도 독대하지 않고 항상 배석자를 둔 것도 이전의 권력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정보 보안 문제로 회의 때 배석자를 늘리는 것에 저항도 따랐지만 그런 안건은 아예 올리지도 말라고 했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 놓고 모든 것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하고 싶었던 국정 철학은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 시스템이었던 '이지원'에 그대로 반영됐다. 보고가 올라가고 수정한 과정이 모두 기록으로 남아 어떤 정책이 잘못 됐을 때 '누가 로비를 받아 이 조항을 이상하게 고쳤지?'하면 바로 찾아낼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른 목소리도 존중할 줄 알았던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 문제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반대를 표명했을 때도 이전 권력과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 국가기관의 정부 결정 반대에 언론은 '파문'과 '논란'으로 문제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국가인권위는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기구 아닙니까?" 라며 인권위의 독립성을 인정하고 보장했다.

갑질을 배척했던 인간 노무현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하고 영화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펴낸 이창재 감독
 영화 <노무현입니다>를 연출하고 영화의 뒷이야기를 담은 책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펴낸 이창재 감독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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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노무현의 모습은 갑질이 만연하고 있는 요즘 세태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자신을 감시하던 정보기관 직원과 친분을 맺어 오랜 시간 인간관계를 이어 왔고, 운전기사를 배려하고 존중했다. 함께 일했던 사람들을 끝까지 신경쓰고, 잠시 배신했던 사람마저 밥은 먹고 살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챙겼던 모습은 어렴풋이 알려져 있던 그의 진면목을 더 세세하게 전한다.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면 <노무현이란 사람>은 집권 기간 중의 다양한 이야기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와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자 했던 노무현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의 이상에 대해 풍부하게 설명하고 안내해 주면서 책은 영화 이상의 감동을 전해 준다.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이상을 밝히고 실현하고 싶었던 노무현에게, 정치적 보복에 따른 검찰 수사는 생명과도 같았던 말하고 글 쓰는 일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고뇌하던 그는 홀로 모든 고통을 안은 채 그를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곁을 떠났다.

정작 그 옆에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몰랐다가 그가 떠난 뒤에야 뒤늦게 알게 되는 진면목은 아쉬움을 안겨 준다. 시대를 앞서나갔던 지도자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빚으로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그에게 빚진 사람들의 회상이기도 하다. 다행히 노무현의 사람들은 그 빚을 갚을 곳이 어디인지를 알고 있다.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의 말처럼 "노무현 대통령이 이루고자 하신 꿈을 이루는 것이 숙제"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아이들이 지금과는 다른 더 공평하고 바른 사회에서 사람답게 살게 하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했던 꿈은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말하는 모든 사람의 한결같은 바람과 각오이기도 하다.

저자 이창재 감독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노무현은 스스로 대지가 되었고, 그가 뿌려 놓은 씨앗은 그곳에서 자생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다. 그들은 꽃가루를 묻혀 나르는 나비처럼 자신이 잉태한 또 다른 씨앗을 세상 구석구석으로 퍼뜨리고 있다. 세상 어딘가에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따뜻함을 목격한다면 '아, 여기에도 씨앗이 자라고 있구나 생각해도 좋다.'

덧붙이는 글 | '노무현이라는 사람' / 지은이 이창재 / 펴낸곳 수오서재 / 2018년 5월 23일 / 값 16,000원



노무현이라는 사람 - 영화 <노무현입니다> 원작

이창재 지음, 수오서재(2018)


태그:#노무현이라는 사람,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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