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뒤흔든 스캔들이야 셀 수 없이 많을 것이지만, 2000년대 초의 논란을 꼽으라 한다면 '황우석 스캔들'이 반드시 포함되지 않을까? 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결국 논문은 조작되었으며 난자 중 일부는 연구실의 여자 연구원들로부터 채집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전까지 황우석은 국가적 영웅이었다. 난치병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주기도 했기에, 그의 연구조작 사건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국가적 인재를 망가뜨렸다며 도리어 조작 문제를 제기한 언론을 비난하기도 했다. 심지어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일부 사람들은 황우석이 부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 황우석 사건은 연구 윤리를 저버린 사건일 뿐만 아니라, 전문가적 권위 앞에 검증이라는 칼날이 무뎌질 때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25년 동안 했으니까 전문가'? 위험한 확증 편향

 <PD수첩> 방송 중 일부.

방송 중 일부. ⓒ MBC


당시 황우석 논란을 보도했던 < PD수첩 >은 12년가량이 흐른 지난 22일, '소리전문가'로 잘 알려진 배명진 숭실대 교수에 대한 의혹을 방송했다. 많은 미디어를 통해 공신력 있는 전문가로 인정받은 그의 행보 중 상당히 많은 부분에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사실 '의문이 제기된다'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도 부족한 일로 방송은 시작한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정유라로 의심된다며 인터넷에 올라온 대전터미널 욕설 영상을 배 교수가 정유라의 실제음성과 비교분석을 한 것. 당시 배 교수는 '90%가 넘으면 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분석 결과가) 이렇게 85%에서 90% 사이에 놓여있으니 적어도 형제자매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하지만 대전터미널 관계자는 정유라도 아니고 정유라와 닮지도 않았다고 했다.

또한 최순실이 지침을 내리는 전화 내용 중 발음이 불명확한 부분에서도 배 교수가 나타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녹취록은 틀렸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보수단체인 바른언론연대에서 녹취록이 조작되었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 PD수첩 >이 해당 단체의 대표를 만나 대화를 하는데 이 부분이 압권이다.

"전문가를 믿으세요. 우리 사회에서 말이죠, 가장 악랄한 사람들이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는 겁니다. 그게 우리 사회의 혼란의 주범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사건마다 미디어에 꾸준히 출연하는 이의 '전문가 소견'에 오류가 있다면 그의 전문성은 의심받기 마련이다. 바른언론연대 대표는 의혹 검증 요구가 전문가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PD수첩> 방송 중 일부.

방송 중 일부. ⓒ MBC


다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명진 교수가 지난 20여 년 동안 해온 작업들에 대해 검증이 필요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배 교수는 언론이 의견을 물어오면 늘 소리의 형태를 분석해놓는 두 개의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둘이 일치 혹은 유사할 경우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내놓는다. 위에서 말한 정유라의 경우도 한국 평균 나잇대의 목소리를 기준으로 목소리 주인의 나이를 추정하고 일치여부를 따진 것이다. 이것이 소리공학연구소가 소리를 분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음성학적으로 보편화된 방법이라기보다는 독자적인 방식이라는 주장이 복수의 음성학자로부터 나온다. 특히 '(이 목소리와 저 목소리가) 일치하는 것 같느냐'는 음성학자의 질문에 PD가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하니 '그게 정답이다. 학자적 양심을 걸고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게 맞는 거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과학의 영역에서 오류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이를 추정하고 그 유사성에 대해 알 수는 있지만, 한 개인의 목소리가 여러 맥락에서 다르게 들릴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명진 교수는 그래프만 보여주고 이게 어떤 과학적 원리에 따라 추정할 수 있는지 얘기하기 보다는 그래프가 유사하지 않느냐는 말만 할 뿐이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전옥엽 박사는 한 사람의 음성으로 세 개의 다른 그래프를 만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단지 그래프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인물이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PD수첩> 방송 중 일부.

방송 중 일부. ⓒ MBC


< PD수첩 >은 배명진 교수와 연락해 이런 의혹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전화와 대면을 통해 묻는다. 과학적인 방법을 쓴다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배 교수는 굉장히 분노한다.

"아니, 그거(의혹)를 왜 입증을 해야 하느냐고요. 그거는 결국엔 내 과학적인 수준을 테스트해보겠다, 그 얘기밖에 안 되는 거잖아요? (중략) 노벨상 받을 일도 하고 있어요. 그런 정도로 과학적으로 연구를 해서 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그런 입장인데, 응?"

"25년 전문가를 뭐? 의혹으로 나를 무시하겠다고? 당신 그럴 권한 있어?"

전문가라는 이름 앞에 침묵했던 언론들, 이제라도 검증해야 

지난 25년간 그를 가장 많이 찾은 것은 언론이고, 그의 말을 의심 없이 퍼나른 것도 언론이다. 12년 전 황우석 사태 때 전문가 타이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의혹 제기를 전면적으로 차단했던 일부 언론들의 태도와 얼마나 다를까.

< PD수첩 >과 인터뷰에서 배 교수의 흥미로운 발언을 발견했다. "인터넷에서 제 업적을 검색해보세요. 거기 보면 김정일에 대한 것도 있고 별의별 거 다 있어요." 포털에 '배명진 김정일'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목소리를 배명진 교수가 분석을 했다는 기사가 여러 개 뜬다.

당시 김정일 위원장의 목소리는 자신감 있었지만 7년 전의 회담에 비해 에너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7년 전보다 목소리의 힘은 46%, 말을 또렷이 전달하는 명료성은 25% 떨어졌다는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산출된 수치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이 정확한 것인지 알래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많은 언론들이 이를 받아 적었다.

이번 < PD수첩 > 방송에서 확신에 찬 말을 하는 사람은 배명진 교수뿐이다. 이 의혹들을 방송하는 < PD수첩 >마저도 배 교수가 새빨간 거짓말쟁이라거나, 사기꾼이라거나 하는 가치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전문가들도 이렇게 확언을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PD수첩> 방송 중 일부.

방송 중 일부. ⓒ MBC


배 교수는 2015년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마지막 인터뷰 음성을 분석해 '진실성이 62.7% 밖에 얻어지지 않는다'는 내용의 감정서를 작성했다. 이는 이완구 전 총리 재판의 증거로 제출됐다. 또, 2012년 당시 모 하사의 석연찮은 죽음에 대해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가해자로 몰기도 했다.

많은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배 교수의 분석이 이미 논란의 대상이었지만, 방송을 통해 얻은 신뢰를 바탕으로 그의 성문감정이 재판의 증거로 제출되고, 그의 발언은 신빙성 있는 전문가의 발언으로 포장돼 방송을 탔다.

의혹에 대한 검증을 거부하고, '25년 된 전문가'라는 권위로 반론을 차단하는 그의 태도는 굳은 확신에 차 있다. 배명진 교수가 그런 태도를 가지는 데에 언론도 한 몫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우리는 황우석 사태에서 무엇을 배웠던 걸까. 이제라도 물어야 할 일이다.

#PD수첩 #배명진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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